brunch

아빠가 로또를 사는 이유

by 새벽숨


최근 회사 송년회 경품을 사기 위해 복권을 처음 구매해봤다. 사실 같이 간 동료가 구매했으니 내가 샀다고 볼 수도 없다. 서른이 한참 넘는 동안 한 번도 복권을 내 손으로 직접 구매하지 않은 이유. 내가 노력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는 것이 왠지 불순하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남편이 1년에 두어 번 사오는 연금복권에는 그렇게 관심을 가진다.)


그러다 얼마 전 아주 끔찍한 꿈을 꿨다. 요새 한 달에 한 번 꼴로 새벽에 150bpm 상태로 깨는 일이 있다. 남편이 죽고, 어떤 이가 나를 포함해 단체로 죽이겠다고 어느 방에 집어넣는 등 다양한 악몽을 도장깨기 하듯 꾸고 있는데 이번엔 온 마을이 불타고 그 불길은 우리 집을 덮치려던 중이었다. 세탁실 창문에서 보니 용암이 정말 용처럼 널뛰고 있었다.


눈을 뜨니 붉은 액체가 마을을 삼키던 속도만큼 심장도 빠르게 뛰었다. 옆에 잠든 아이 손을 서둘러 찾았다. 안심이 필요했다.


잠을 설친 탓에 눈도 못 뜨고 거실로 나갔다. 주말부부에게 친정엄마는 그저 빛. 아침상이 차려져 있는데 눈을 감고 밥을 먹으니 엄마가 무슨 일인지 묻는다. 꿈 이야기를 하니 엄마 눈이 반짝였다.


"불이 꺼졌어?"


"어...? 아니, 눈 뜨기 직전까지 거의 용암이었어."


"로또 사!"


"로또는 무슨... 잠 한숨 못 잤다니까..."


"불이 안 꺼졌으면 좋은 꿈이야!"


"로또... 안 사봤는데... 그리고 로또가 된다 한들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며..."


"아니면! 아빠한테 팔아! 되면 나눠 ㅎㅎ"


생각해보니 초등학생쯤 되었을 때 친할아버지 집이 홀라당 타는 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봤던 꿈을 꾼 적이 있다. 이때도 악몽으로 여기고 아빠한테 말씀드리니 아빠가 돈을 쥐어주시면서 꿈을 사 가셨다. 결과야 뭐. 환갑을 한참 넘긴 아빠도, 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전력이 있음에도 아빠가 내 꿈 이야기를 듣더니 핸드폰 케이스에서 꼬깃꼬깃 접힌 지폐를 꺼내 내게 건네셨다.


"니 꿈 내가 산 기다! 되면 3 대 7로 나눌까?"


"누가 7이고?"


"..."


"잠깐. 만 원 한 장 줘놓고 너무한 거 아니가. 더 줘, 그럼."


아빠는 다음 날 20분을 걸어 로또를 샀다고 인증사진을 보냈다. 그리고 'Good Luck!'을 덧붙였다. 나는 로또 결과는 몇 시에 어디서 보는지, 보너스 번호의 의미는 무엇인지 초록 검색창을 한참 뒤져봤다. 결과는 토요일 오후 8시! 내일이군. 내심 기대했다.


토요일 20시. 3이라도 가져갈 준비를 마치고 결과를 확인했다. 번호 하나하나를 대조해가며.


아빠한테 문자를 남겼다.


'로또 확인 안 해?'


'내일.'


기대는. 내일 확인해도 똥인데. 키득거리며 문자를 닫았다. 기대하는 마음을 품을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복권은 가치가 있으니.


그러고 몇 주 뒤.


"내가 왜 로또 사는 줄 아나?"


아빠가 갑자기 로또 이야기를 꺼냈다.


"동생이, 그것도 만기전역 며칠 앞두고 군에서 죽을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노? 현충원에 동생이 누워있을 확률이 얼마겠노."


아빠에겐 동생이 있었다. 내게는 삼촌. 며칠 후면 전역하여 사회를 누빌 건장한 청년이셨던 삼촌이 군에서 돌아가셨다. 사인은 심장마비.


새벽에 집으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아빠는 새벽기도에 가 계셨던 할머니께 소식을 전하러 갔다. “집에 가입시다, 어무이.” 그 말 한마디에 할머니는 직감적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고 다리를 떨며 예배당을 나섰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아닌 며칠 후면 만날 아들이 떠났단 소식을 듣고 할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 앉으셨더랬다.


그때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목이 약간 잠긴. 아빠에겐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로또 맞을 확률이 나한테 있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로또를) 사는기라."


로또 당첨이 정말 필요한 사람. 적어도 나는 아니라 생각한다. 그래서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없는 나에겐 찾아오지 않을 운이라 생각하여 구매까지 이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빠는 종종 로또를 산다. 그 확률에 당첨되길 기대하면서. 이번엔 아프지 않은, 누가 봐도 행운이라 여길 운이 찾아오길 바라면서.




며칠 전 아는 동생으로부터 잘 지내냐는 연락이 왔다. 서로의 안부를 묻다 작년 한 해 힘들었던 일은 없었냐고 물었다. 이어진 문자에는 얼마 전 온 국민을 아픔과 슬픔에 잠기게 만든 사건 속 인물 중 하나가 자신의 지인이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악몽을 꿨을 때처럼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나에겐 현실같던 악몽이 누군가에겐 악몽 같은 현실일 수 있음을, 삶이 늘 평온할 수만은 없음을, 지루하리만치 무탈한 지금이 최고의 복임을 다시금 생각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또 꼬리를 달고 온다. 그저 안타까워하기엔, 나의 무사함을 복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그치기엔 아픔의 크기가 너무 크다고. 현실이 된 악몽을 나의 안정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비인간적인 짓이라고.


허나 결국, 금방 잊고 말겠지. 찝찝한 기분이 싫어 쏟아지는 기사를 외면하겠지. 나 하나 편안히 사는 데만 집중하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


따뜻하고 힘찬 기운을 누려야 할 연말에 닥친 비극을 안고 처절하게 뒹굴고 있는 마음의 한 조각이라도 가질 수 있을까. 악몽이 현실이 됐던 확률만큼의 행운에 5천 원을 거는 아빠의 마음을 헤아릴 날이 올까. 그래서 이따금씩 현실감 없는 악몽이 찾아오나보다. 너도 그들 중 하나일 수 있다고. 그러니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라고.


어지러운 세상에 몸담고 있는 동안만큼은 로또, 아니 그보다 훨씬 높은 확률로 평안한 해를 보낼 수 있길 기도해본다. 그대도, 나도.


* 표지 사진 출처 | Unslpash @Alejandro Gara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실패로 채운 올해, 어떻게 보수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