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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 채운 올해, 어떻게 보수할까

by 새벽숨


12월이면 어김없이 한 해를 돌아본다. 연말 결산하듯. 올해의 키워드를 찾으려 애써 본다. 단 한 개의 키워드를 찾는 것이 어려웠는데 올해는 단숨에 찾았다.


실패.


여러 것들에 실패했다. 첫째, 운전. 순간의 실수로 돈과 마음, 아이 정서에까지 손해가 막심했던 사고를 냈다. 이후 다시 운전대를 잡는 것이, 액셀에 발을 올리기가 두려워졌다. 둘째, 강의. 교회에서 진행하는 강의 중 줌(Zoom)으로 가능한 것이 있어 시도해봤으나 집에서 아이를 보면서 이어가기엔 내용이 너무 어려워 중도 포기했다. 셋째, 브런치 연재. 책임감이 강한 편이라 약속을 해두면 어떻게든 지키려던 과거의 나를 믿고 시작했으나 퇴근 후 집에서 온전한 나만의 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함을 깨닫고 나와의 약속을 성실히 어기는 중이다.


실패의 경험이 적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도의 데이터가 쌓일수록 알게 된다. 난 실패율이 제법 높은 사람이었음을. 그간 시도를 주저했기에 실패할 기회가 적었음을.


그렇다고 올해의 키워드를 ‘실패’라고 각인하기엔 2024년에 시도했던 거창한 시도와 두려움을 이기려 애썼던 내 노력이 아깝다. 자기 연민에 빠지기 전 기회의 장을 열어주는 단어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나의 2025년 또한 반갑게 맞을 수 있을 테니.


실패로 뭘 얻었을까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첫째, 실패에 대처해 볼 기회가 생겼다. 삶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결국 고난에 맞닥뜨려봐야 효율적으로 키워진다. 융통성이 제로에 가까운 내게는 속 쓰리지만 실패만큼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잘 알려주는 교육이 없다. 책과 미디어를 통해 내적 힘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고 실질적으로 행동하기까지의 마인드 세팅을 돕는다. 하지만 결국 해쳐나가야 하는 이는 자신이며, 어떤 선택을 하든 행동해야 한다.


운전. 어려운 결정을 마침내 내려 도전했고 한 달간 큰 무리 없이 나름 장거리 운전을 했다. 연수받을 때 선생님이 ‘이 정도 초보면 혼자 운전해도 큰 사고 안 날 거다’라고 용기를 주셨다. 기술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그러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상대 차에 당황했다는 이유로 그 짧은 시간에 잘못된 판단을 저질러 사고가 났다. 그렇다면 당황할 때의 대처 방식을 수정하면 될 테다.


구체적인 수정 방안은 순간적인 판단이 어려울 때는 우선 브레이크를 밟아 생각할 시간을 벌어보자는 것. 물론 이 또한 사고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 정리 전 엑셀을 밟는 것보다는 안전할 것이라 믿는다. 또한 사고가 나면 나의 과실이라도 일단 보험회사에 전화하고 상대방에게 함부로 개인 연락처를 줄 필요는 없다는 사실도 배웠다.


둘째, 실패 감내력이 향상됐다. 실패에 면역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한 번의 실패로도 마음과 정서에, 이윽고 몸에까지 타격을 입는다. 첫 쓰라림은 너무 고통스럽고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해내는 경험이 더해진다면 이전에 없던 무기가 생기는 것이다. 실패가 덜 무서워지면 이전보다 적은 용기로도 도전할 수 있고 이는 성공률을 높이는 발판이 된다. 실패에 어느 정도 무뎌져야 넘어져도 일어서는 능력도 다져지는 법이다.


‘이 정도 사고까지 나봤는데 이보다 더할 일은 없을 거야.’라는 대범함. ‘가벼운 접촉사고 정도는 잘 대처할 수 있겠지.’라는 여유. 사고날까봐 늘 졸였던 마음, 큰 사고 한 번에 오히려 얌전해졌다.


뒤돌아보니 어떻게 30년 넘게 살면서 이렇게 넘어진 상처가 적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안전하게만 살아왔다. 불안을 감지하는 능력이 대단하고 그럼 피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차 보닛이 찌그러지고, 조명이 박살나 뒹굴고, 지나가던 사람이 부서진 우리 번호판을 주워다 준 사고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자책만 했는데 가만 보니 손해 보는 건 결국 나뿐이었다. 가족들 무사하고 보험 처리도 잘 됐는데 내게는 정말 어렵게 결정내린 도전이 실패로 끝났다는 자괴감만 남은 것이다.


실패를 건강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엎질러진 일을 수습하는 것 뿐 아니라 이후 다치거나 방치된 스스로의 마음을 복구하는 데까지 이뤄져야 한다. 수습 방식이 결국 ‘상황을 피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오랜 상처로 남기진 않아야 겠다는 것이 결론.


운전대를 잡겠다던 결심과 경험, 어디 안 간다. 다시 시작해서 자신감을 쌓는 것이 내 자존감을 위해서는 더 유용하다.


셋째, 성공률이 높아지고 있다. 도전조차 하지 않았다면 다음은 없다. 도전해서 실패했지만 그래서 다음을 기약할 수 있고, 이로써 성공의 가능성이 또 열린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내년부터 다시 운전 연수를 받고 차를 몰고 다닐 것이다. 올해 제대로 수강하지 못한 강의로 놓친 지식은 출퇴근 짧은 시간에 볼 교육 콘텐츠로 채울 수 있다. 브런치 연재 약속은 아이에 국한된 콘텐츠만 올리려다보니 실패했지만 오히려 그렇게 생긴 부채감 덕에 이 글도 쓰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아닌 내 글을. 연재의 목적은 매주 하나의 글이라도 쓰기 위함이었지, 연재 시스템과 처음 설정한 글감에 집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 거짓이 아니다.


올해의 키워드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렇게 마무리하려 했다. 나는 시도를 피하는 사람이기에 실패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실패하지 않는다고 성공률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니 도전했고 실패한 올해의 키워드는 ‘성과 있는 시도’였다고.


그런데 글을 쓰는 도중 거짓말같이 찾아온 또 다른 글이 있었다.


실패할수록 성공 확률은 평균 14.285...%p씩 높아진다. 인류 역사와 통계는 사람이 평균 8번째 성공하는 결괏값을 가지고 있다. 1번 실패할 때마다 성공 확률이 14.285...%p 높아진다. 아무것도 안 하면 0이다. 그래서 고민하는 시간에 그냥 뭐라도 한 번 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내 한 해를 긍정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시도를 성공적으로 받쳐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2025년에는 부디 실패들이 열매를 맺는 한 해이길 기대해본다. 아니, 또 넘어져도 성공 확률이 조금씩 높아지는 것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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