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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을 초연함이라 착각하는 그대에게

by 새벽숨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는 의젓한 삶의 태도, 초연함.


겉으로 봤을 때 초연해 보이는 사람은 ¹⁾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대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일 수 있으나 사실은 ²⁾태생적으로 감정이 무딘 사람의 무관심함일지도 모른다. 혹은 ³⁾마음이 닳을 대로 닳아 세상에 애정을 가질 수 없는 마음 상태일지도. 내가 추구했던 초연함은 첫 번째였으나 그러지 못해 두 번째라도 갖고 싶었다. 그러나 예민한 기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란 체념이 날 세 번째로 이끈다. ‘될 대로 돼라’에서 패기를 뺀 상태. 이는 사실 무기력이라고 봐야 한다.


마음이 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매사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내게 누군가 ‘그건 소시오패스다’라고 말해줘서 그런 병에 걸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사사건건 찔리듯 아프고 타버리듯 열나는 마음에 과연 제 명에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사실 세상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물론 세상은 크고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상황과 사람도 많다. 그런 일들이 나에게도 닥칠까 염려될 때도 있지만 대체로 무관심한 편이다. 전공이 신방과임에도, 아니 그래서 매일 이 신문, 저 신문을 읽다 보니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내게 해롭다는 결론이 났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기사 하나하나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는다.


그러나 내 피부에 닿는 일들에 대해서는 털 한 올까지 곤두선다. 내 마음에 돌이 던져졌을 때, 그래서 평정을 잃었을 때 나의 습관은 지금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상황의 끝을 다양한 경로로 설계해보는 것이다. 최악을 간접으로 만나보면 지금 내 삶이 나쁘지 않으므로 ‘이 정도면 괜찮다’는 틈을 얻기 위한 나름의 방안인 셈이다. 최악에 다다르는 여정에 많은 경우의 수를 만나는데 이를 레벨업하듯 하나하나 깨부수다보면 삶의 티어가 올라가는 듯한 착각도 든다. 그러다보면 창의적인 방법으로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현실이라도 저 위에서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최악을 그리는 것 자체가 여운을 남기는 법. 실제가 아님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떤 사람이 아주 미워지기도 한다. 혼자서 만들어낸 마음 상태가 가상으로 끝나지 않아 상대는 영문도 모른 채 나의 미움을 받게 되는 난감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고민했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과장하지 않고, 최악을 상상하며 지금을 차악이라 여기며 위안하지 않고도 평온할 수 있는 방법. 그런데 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드러나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현상이 악화될 것이라 미리 헤아리는 계산을 멈추는 것. 그 방법으로 유체 이탈하여 나를 관찰하듯이 보는 시선이 효과적이었다. 이 시선은 상황에 집착하여 파고들지 않는다. 세부적인 방안을 따지고 들지 않는다. 앞날을 계산하는 것이 무용하다. 그 앞날이 내 불안의 깊이를 더한다면 더욱이.


초연함의 의미가 ‘어떤 현실 속에서 벗어나 그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하다.’이지만 나처럼 현실을 왜곡하고 부풀리는 사람에게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초연함에 가까워질 수 있다. 현실에 발 붙이고 살고 있으나 현실과 상관없이 마음을 지킬 수 있는 태도의 시작은 결국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스스로 예민한 성향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또 이런 고찰을 새삼스레 글로 옮기는 이유. 내일이면 다시 남편이 출장을 떠난다. 주말부부 단어만 떠올려도 치가 떨렸던 시기는 지났다 생각했는데 깊고 어두운 곳에서 또 다시 작은 스파크가 인다.


그런데 상황을 제대로 보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남편이 9개월을 나가 살았던 때도 있었는데 이번엔 50일이다. 막히지 않으면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장소이며, 종종 평일에도 집에 올 기회가 있다. 임산부이나 안정기가 어느 정도 지났고 정말 도움이 필요하면 친정 부모님이 도와주실 것이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부분. 친정 부모님이 이전처럼 짐 싸들고 우리 집에 오시진 않으실 것이란 사실. 그래서 각자 다른 삶의 방식 때문에 서로에게 부담 줄 것도, 눈치 볼 것도 없다는 점. 이제야 나름의 방식으로 아이와 나를 챙기는 방법을 배워갈 수 있을지도. 육아와 살림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는 게 없다는 나의 자괴감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어떻든 상관없다’는 초연함을 흉내 낸 무기력을 떨치고 이번 주말부부는 이전과 다른 마음으로 시작해보려 한다. 경험상 끝을 정해두지 않은 연기는 결국 스스로 끝을 내어 현실을 극대화시킬 뿐이었기에.


* 표지 사진 출처 | Unslpash @Carol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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