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민혜 Aug 01. 2022

돼지저금통의 배를 가르는 일

이웃 동네에 대형 키즈카페가 새로 생겼다. 

아이들은 지난 주부터 2주 째 방학 중이고, 이 때 엄마는 매일매일 아이들과 무엇을 하며 놀아주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다. 때마침 7월 중에 오픈한 키즈카페의 소식을 알게 되었고,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기에 일부러 지난 주말을 피해 오늘 그 곳을 찾아갔다. 


우리 앞에 52팀이 대기 중이었다. 대략 한 시간 반 정도의 대기 시간이 발생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또 고민을 해야 했다. 바로 옆에 무엇이든 다 파는 '다이소'가 있었던 건 신의 한 수 였다. 우리는 (아이들과 나, 친정 엄마) 본격적으로 쇼핑 플렉스를 시작했다. 


마음껏 고르거라. 


가장 먼저 우리의 발 길을 잡은 것은 바로 '돼지 저금통'이었다. 


이런 저런 연유로 아이들이 모아 놓은 현금이 꽤 되었는데, 돈의 의미와 가치를 아직 잘 모르는 아이들이 그것을 아무 데나 두고 잃어버리기 일쑤였고, 집 안에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동전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기도 한 참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 돼지 저금통을 추천했다. 


너네 지갑에 넣어 둔 비상금을 이제 이 돼지 저금통에 모으자. 


아이들은 별 거부감 없이 돼지 저금통 하나씩을 골랐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평범한 돼지 저금통이었다. 물론 입구만 있고 출구는 없는, 다시 말해, 돈을 쉽게 넣을 수는 있지만 그 돈을 다시 꺼내려면 돼지의 '배를 갈라야만 하는' 그런 저금통이었다. 대개는 그런 저금통이 일반적이다. 왜 일까. 왜 돼지 저금통은 일반적으로 '일회용'일까. 

  

어쨋든, 다이소에서 우리는 꽤나 큰 규모의 쇼핑을 했고, 각자 한 아름씩 물건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집에 오자마자 가장 열의를 보인 것은 당연히 돼지 저금통이었다. 자신들의 비밀 장소에 숨겨두었던 지갑 뭉치를 들고 나와서는 돼지 저금통의 입구를 열어달라고 졸랐다. (입구가 막혀 있어서 칼로 뚫어주어야 했다) 얼마 동안 아이들은 지갑을 탈탈 털어 동전과 지폐들을 하나씩 저금통에 옮겨 넣는 일에 몰두했다. 


작은 지갑 안에서는 꽤나 많아 보였던 돈들이 막상 돼지 저금통에 넣고 나니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 때 작은 아이가 물었다.


돈을 다시 꺼내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배를 갈라야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꺠달은 건 아이의 울음이 터지고 난 다음이었다. 


돼지의 배를 가른다. 그 행위를 나는 왜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을까. 그토록 잔인하고 폭력적인 일을 어쩌면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입에 올렸을까.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섬세하고 예민한 딸 앞에서. 


원래 할머니가 주었던 그 지갑이 나는 충분히 좋았는데 엄마는 왜 돼지 저금통을 사라고 했냐고.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돼지의 배를 가른다는 것은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아무리 설명을 하고 달래 보았지만 좀처럼 아이의 감정은 수그러들 줄을 몰랐다. 나는 서럽게 울어대는 아이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이게 이렇게 까지 울 일인가. 세상 끝날 것처럼 우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순간, 문득 생각 하나가 떠 올랐다. 



나의 돼지 저금통. 


내게도 돼지 저금통 하나가 있었다. 빨간색에 등에 금색으로 한자 '福'자가 쓰여진 것이었다. 크기가 커서 꽤 오랫 동안 돈을 모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만큼 오랫 동안 정이 들었을 것이다. 돈을 꼬박 꼬박 넣을 때는 몰랐다. 돈을 빼는 방법이 배를 가르는 것 뿐이라는 것을. 그 통통한 돼지가 돈으로 가득 차서 더 이상 아무 것도 넣을 수가 없게 되었을 때 엄마는 이제 그 돈을 가지고 은행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전에 돼지의 배를 가르는 일이 남아 있었다. 


울었다. 마음이 아팠다. 저금통에 있는 돈을 꺼내려면 배를 갈라야만 하고, 그러고 나면 더 이상 그 저금통은 저금통이 아니다. 더 이상 함께 나의 저금통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갈라진 배 틈으로 안에 있는 돈을 모두 내어주고 나면 그것은 이제 쓰레기일 뿐이다. 처음부터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입구는 있는데 왜 출구는 없는 것인가. 




아이는 한참을 더 울었다. 할 말을 잃은 나 대신 남편이 대신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방으로 돌아왔다. 내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의 돼지 저금통을 잃었던 때의 슬픔이 떠올랐고, 아이에게 너무나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 버린 스스로에 실망을 했다. 놀라움과 슬픔과 충격으로 그칠 줄 모르고 계속 흐느끼는 아이의 울음 소리가 계속 비수처럼 꽂혀들었다.


아이는 돼지 저금통을 품에 꼭 안고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창 밖으로 빗 소리가 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아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