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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상형과 결혼을 했나요?

by 옥민혜

결혼 전 내 이상형은 늘 '똑똑한 남자'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내가 아는 건 무조건 다 알아야 하고, 내가 모르는 것까지 아는 남자'가 내 이상형이었다.


삼촌 소개로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우리는 참 많은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각자가 꿈꾸는 가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생각하는 내 가정엔 반드시 아이가 있어요. 아이를 낳아 바르게 키워 이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만드는데 아주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을 만한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남편은 나의 바람을 진심으로 이해했고 공감했다. 그리고 함께 살면 우리는 반드시 함께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무려 첫 만남에 나는 우리의 결혼을 막연히 결정지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아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고, 남편이 아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궁금한 게 참 많은 사람이었고 궁금한 건 그때그때 곧바로 해결해야 직성이 풀렸다. 지금이야 네이버든 구글이든, 심지어 시리나 쳇 gpt 까지 궁금한 건 그 즉시 해결해 주지만 나의 어릴 적 궁금했던 그 많고 많았던 질문들은 어쩌면 나에게 여태 한으로 남아있는 지도 모른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던지. 둘이 함께 손을 잡고 걷다가 따사로운 해를 보면 나는 궁금하다.


"태양은 뭘 연료로 해서 저렇게 평생 타는 거야?"


그러면 남편은 태양에 대한 얘기를 해준다. 우리는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고, 행성과 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남편은 나의 감상평을 들어준다. 남편은 그 책을 읽지 않아도 이미 그 책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우리는 내가 읽은 책에 대해서도 한참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함께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좋아한다. 세계의 여러 다큐멘터리들은 우리가 몰랐고, 그래서 새로 알게 되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거리가 너무나 많아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되어준다.


그런데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우리에게 대화가 사라졌다. 먹고 자는 것만 간신히 가능한, 일종의 생존이 관건이 되어버린 시기에 대화는 사치였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혹은 책임감으로 묵묵히 아이들을 돌봤다. 우리가 서로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함께 할 때 행복했는지 자연스럽게 잊혀갔다. 우리는 그렇게 행복을 잠시 미루어두었다.


그렇게 고단했고 외로웠던 육아의 시간은 사실 인생 전체로 보면 그리 길지 않다. 아이들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라났고, 핏덩이에서 아기의 시간을 지나 어린이가 되는 모습을 우리는 함께 지켜보았다. 우리가 함께 해 내었다.


이제 우리는 넷이서 함께 다큐멘터리를 본다. 신기한 것이 아이들도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보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우리는 함께 대답해 준다. 둘이서 나누던 대화가 이제 넷의 일상이 되었다. 한창 궁금한 것이 많은 시기.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조잘대며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낸다. 가끔은, 아니 매우 자주, 그 질문들이 귀찮게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나누었던 가족에 대한 꿈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우리가 함께 만든 가정 안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자던 약속.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러 욕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둘이 앉아 과학정보 프로그램을 보았다. 양자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고, 나는 남편에게 질문들을 했다. 늘 그렇듯 남편은 내가 모르는 걸 알고 있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이 좋다.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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