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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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민혜

예전에는 여행 가기 전에 시간과 동선까지 고려해 완벽한 일정을 짰었다. 밥은 어디서 먹을 것인지, 식당까지 이동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까지 모두 계산했다. J에게 계획 없는 여행은 곧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아니면 나도 남편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우리는 이제 P에 가까운 여행자가 되어버렸다. 이번 여행이 특히 그랬다.


항공편은 유효기간이 다 되어버린 마일리지를 사용해야 하는 이슈로 작년 12월에 일찌감치 마쳤지만 아직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봄을 보냈다. 두세 달 전에 예약하면 넉넉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는데 휴양지는 생각보다 숙박 예약이 금방 완료되었다. 5월, 아직 여행까지는 5개월이나 남았는데 인기 있는 가성비 숙소들은 모두 풀부킹 상태였다. 특히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다 보니 생각보다 4명이 묵을 수 있는 호텔 찾기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은 아이동반 1인까지만 허용되었고 웬만한 곳은 방 2개를 케넥팅룸으로 연결하거나 가격이 두 배 이상 차이나는 패밀리룸을 선택해야 했다. 심지어 패밀리룸은 개수가 많이 없어서 예약이 더 어려웠다. 여러모로 아이동반 여행은 우리 둘이 다닐 때보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더 많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여행을 준비할 때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와 줄을 쳐가며 공부를 했다. 여행 작가들이 추천해 주는 관광 명소와 짧은 배경지식들을 보면서 막연히 상상을 하며 계획을 세워야 했기에 어쩌면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대비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카페 커뮤니티도 많고, 유튜브, 블로그 등 궁금한 건 최신 후기 등을 참고하며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정보가 너무 많아 참 편리하면서도, 뭐가 맞는 말인지 알 수 없으니 오히려 어려운 부분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크로아티아'를 갈 때 관련 책 세 권을 빌려 계획을 짜고, 아직 에어비앤비가 없던 시절 남편은 부킹닷컴으로 숙소를 예약했다. 지금은 '왓츠앱'이라는 메신저를 통해 전 세계 어디서든 편리하게 예약 관련 문의를 할 수 있다. 숙소 예약 후 각종 체험이나 교통서비스 예약 등은 '클룩(klook)'이나 '그랩(grab)' 등을 많이 사용하고, '고잭'이라는 앱으로 배달 음식도 자유롭게 시켜 먹을 수 있다. 은행에 가서 무조건 환전부터 하던 것과 달리 요즘은 주로 '트래블 카드'를 쓴다. 이 또한 참 편리한 부분이다.

비자발급이 필요한 여행은 중국 이후 처음인데 옛날에는 여행사나 대행사를 직접 방문해서 받아야 했던 것과 달리 전자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편리했다.(미국은 여전히 어렵겠지만)


여행 기간이 길다 보니 여행지를 여러 곳 옮겨 다녀야 해서 숙소 예약도 상당히 복잡했다. 여행 기간 동안 총 5 군데의 숙소를 예약했고 일일이 한 방에 4명 투숙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예약 전에 호텔 측과 주고받은 왓츠앱 내용


된다고 해서 취소 불가 숙소를 예약했다가 착각했다며 안 된다고 번복하는 바람에 싸움까지 해가며 결국 무료 취소를 해 낸 경우도 있었다. 덕분에 내 영어 실력이 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확실한 건 비싼 숙소일수록 응대도 빠르고 정확하며 친절하다.


여행 기간 동안 우리는 총 4번의 비행기를 타야 하고 이는 남편이 전담해서 예약했다. 숙소 만으로 너무 골치가 아픈 나는 항공 쪽은 일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여행 일정뿐 아니라 학령기 아이들과 학기 중에 여행을 가다 보니 이와 관련하여 챙겨야 할 것들도 많았다. 학교에 체험활동계획서를 두 아이 것 모두 내야 했고, 결석하는 동안 각종 수행평가나 단원평가 일정을 확인하고 재시험 일정도 잡아야 했다. 학원도 문제다. 보강이나 휴학이 불가능한 학원의 경우 패드를 들고 가 줌(zoom) 수업을 해야 한다. 돌아오자마자 학교 시험, 학원 시험을 모두 봐야 해서 여행지에서 공부와 숙제도 병행해야 하니, 이제 아이들과 이런 식의 장기간 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일 출발을 앞두고 어제부터 조금씩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오늘은 여행지에서 읽을 책을 몇 권 빌려왔다. 설렘과 긴장, 기대와 두려움, 이 모든 감정들이 뒤섞인 채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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