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mforter Dec 07. 2022

무의미함에 지지 않는 것

축알못의 월드컵 관람기

  브라질과의 16강전을 끝으로 대한민국 대표팀의 2022년 월드컵 여정은 막을 내렸다. 평소 스포츠에 딱히 관심도 없지만, 2002년 여름의 열기를 기억하거나, 약간의 애국심과 연대감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고픈 이들이라면, '월드컵'이라는 단어에 한 번쯤 마음이 동할 것이다. 그저 평범한 국민 1인으로서 대표팀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우루과이전과 가나전을 지켜보았고, 1무 1패의 시점에서 또 그놈의 '킹우의 수'를 따져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바라야 하는 상황에서는 피로감마저 느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운과 요행에 기대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 아닌가' 하는 냉소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무조건 이겨야만 16강 진출에 대한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는 포르투갈전의 시작 휘슬이 울리고, 불과 5분 만에 실점을 했다. 그 순간, 한국 선수들의 허탈한 표정, 축 처진 어깨를 지켜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갈 길은 너무나도 멀고, 상대의 기량은 누가 봐도 압도적이고, 질 것이 분명해 보이는 승부를 끝까지 치러내야 하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싶어서 서글픔이 밀려왔다. 하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그래도 끝까지 힘을 냈으면,  믿지도 않는 신의 가호가 지금 이 순간 한국 팀에 돌아오기를 바랐다. 전반전 동점골이 터지고,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자 기도는 더욱 간절해졌다. '제발 딱 한 골만!' 마지막까지 공격을 퍼붓는 선수들의 사투는 처절했고, 후반전이 끝나고 연장 타임 시작과 동시에 터진 황희찬의 골을 보고 절규했다. '으악! 이게 된다고?!' 남편과 얼싸안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 결과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16강행이 확정되자 얼싸안고 환호하는 선수들과 함께 환호했다.


  '그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우리도 힘을 내자'며 남편과 덕담을 주고받았다. 올해 남편과 나는 이직을 준비하며 숱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있다. 박사 학위를 마치고, 그래도 둘 중 하나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며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으나, 현실의 벽은 높다는 것을 매일 같이 깨닫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 시국에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교대로 돌보며 겨우 졸업을 하고, 턱없이 부족한 시간과 체력으로 논문 작업을 이어왔다. 하지만 그렇게 겨우 채운 연구 실적은 너무나 보잘 게 없어서, 지원서를 쓰면서 송구한 마음마저 들었다.


 좌절과 함께 찾아오는 후회도 예외 없었다. 일찍이 정신 차리고 유학을 갔더라면, 조금만 육아 서포트를 받을 수 있었다면, 빨리 회사를 때려치우고 논문에 올인했더라면... 등등. 하지만 나는 이미 지난 과거를 후회하는 걸 제일 자존심 상해하는 류의 인간이라서, '쯧쯧, 하나마나한 생각하고 있네. 다 내 선택이지 누굴 탓해'하며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이 좌절의 경험을 좀 생산적으로 치러내자는 다짐과 함께 호기롭게 엑셀 파일에 '좌절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 경험도 언젠가 피가 되고 살이 되겠지!' 이해하기 힘든(혹은 싫은) 대상이나 일을 맞닥뜨릴 때는 항상 주문을 외운다. 살다 보면 언젠가 이해되는 날이 올 것이고, 그때가 되면 그때 그 경험의 목적 의미를 알게 될 것이라고.

  이때까지는 그래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엑셀 파일에 '서류 탈락' 입력이 늘어갈수록 마음도 시들시들해졌다. 남편과의 자조적인 대화도 이어졌다.

 "신에게는 몇 척의 배가 남았소이까?"

 "다섯 척을 띄웠는데 감감무소식이오. 죄다 침몰했나 보오."

 "침몰하면 통이라도 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오."

 "패배자 주제에 바라는 것도 많소이다. 껄껄."

  우리가 있을 곳이 이 바다가 아닌 건 아닐까.


  추위를 무척 싫어하는 나는 날씨가 서늘해지고 한 해가 끝나가면 부쩍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허나 최근 몇 년간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 바쁜 날들을 보냈기 때문에, 가을 타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졸업을 하고 배가 불러서인지 올해 가을은 다시 침잠의 계절이 되었다. 나름 올해 몇 편의 논문을 투고하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상반기에 주구장창 달렸더니 방전이 된 것인지 좀처럼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다. '일단 쉬자'는 마음으로 꼭 해야 할 일들만 처리하며 두어 달 뒹굴거렸더니,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내 안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지혜로운 마음(wise mind: 변증법적 행동치료에서 이성적 마음과 감정적 마음, 직관적 앎이 통합된 마음의 평정 상태를 일컫는 용어)님께서 '이제 슬슬 해야 하지 않아?'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게 지난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 만난 후배에게 선언도 했다. 올해 내로 이 논문 끝내겠다고. 몇 달만에 다시 논문 파일을 열고 작업을 시작했고, 곧 기분은 시궁창이 되었다. 연구를 할 때마다 밀려오는 무의미함. 이렇게 시간을 들여 논문을 써봐도, 어차피 보는 사람은 나와 리뷰어뿐일 것이고, 탑저널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적 몇 개로 뭘 하겠단 것인지. 아카데미아의 주류에서 한참 멀리 있는 나의 연구는 그저 오물 투척 행위 같은 걸.  


  그렇게 다시 파일을 닫고 열흘이 훌쩍 흘러, 12월 3일 대망의 포르투갈전을 지켜본 것이다. 마침 포르투갈이 일찍이 16강을 확정 지어 힘을 빼고 경기에 임했고, 마침 대표팀 감독이 포르투갈 출신이라 상대 팀의 전략에 해박했을 것이며, 마침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에서 우루과이가 딱 2점 차로 가나를 이기는 기적 같은 운이 따라주었다. 그렇지만 그 어떤 운이 따라주었던들,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의 투지가 없었다면, 기적은 한국팀을 비껴갔을 것이다. '우리는 올라갈 자격이 있다'는 손흥민 선수의 말이 너무나 납득이 됐다.

  세계 최강의 브라질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16강전에서는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새벽 네 시 알람을 맞춰놓고 잠을 뒤척였다.  어차피 질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기록적인 점수 차로 패하지만 않았으면 좋겠고, 고생한 선수들이 너무 주눅 들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전반에서 네 골을 먹고 '역시 어쩔 수 없는 건가' 싶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한 골을 만회하며 더 이상의 점수 차는 벌어지지 않고 1:4로 경기가 끝났다. '그래, 한 골 넣었으니 됐다. 이 골을 봤으니 밤샌 보람이 있네. 포기하지 않은 게 어디야'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 보니 김민재 선수의 인터뷰가 눈에 띄었다.  솔직히 너무 공격적인 팀이라, 한숨만 나왔다고. 여태 상대해본  팀 중에서 가장 잘하는 팀이었다고. 그 거대한 벽을 마주한 선수들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경기가 끝난 후 눈물을 쏟는 선수들을 보니 울컥했다. 저들도 한국 최고의 선수들이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그 순간,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90분을 어떻게 견뎌낸 것인지. 나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이 패자의 정신승리 같아서 싫어하지만, 패자에게 돌아갈 숭고함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경기에는 패자가 있겠지만, 그들은 각자 자신과의 전투에서 나름의 선전을 펼쳤다. 거시적으로 보면 별 의미 없어 보이는 1패의 기록이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한 것은 없다.

  뭐가 됐든 압도적으로 뛰어나야만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내 안의 아주 비현실적이고, 가혹한 잣대는 삶의 여러 장면에서 얼굴을 내밀고, 무의미함의 수렁으로 나를 유혹한다. 앞으로의 생 동안 이 무의미함의 수렁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나의 작은 행복을 지키는 길일 것이다.  운동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름 쟁쟁한 선수들과 경쟁하며 해외에 진출했으나, 세계 무대에 놓고 보면 자신은 한참 부족하게 보일 것이고, 지금 시대를 주름잡는 세계적인 선수들도 역사를 통틀어 보면, 언제나 자기보다 위대한 영웅과 사투를 벌여야 하며, 언젠가 미래의 슈퍼 루키에게 지금의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최고가 아니면 부질없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부질없다. 이런 식의 상대적인 비교 기준으로 인생을 살면, '어차피 최고가 아닌데 무슨 의미가 있어?' 또는 '어차피 죽을 거 왜 사는데?'라는 결론밖에 나올 것이 없을 테니까.

   김민재 선수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온 커뮤니티에 댓글을 달았다.

  '그래도 감동적이었음. 축구 보면서 인생을 생각하게 됨. 질 것이 분명한, 나보다 엄청나게 뛰어난 대상과의 경쟁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무의미함에 지지 않는 것'


  댓글을 달고, 논문 파일을 열었다. 이 무의미해 보이는 논문을 완성하는 것이 지금 당장 나의 할 일이다. 이걸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할 일을 해. 거시적으로 보면 경포대 백사장에 모래 한 알 투척하는 정도의 행위겠지만, 포기하고 도망친 나와 할 일을 해냈을 때의 나는 다른 나일 테니까.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무의미한 논문을 열심히 쓰면서 간만에 충만한 오늘을 보냈다.



작가의 이전글 가스라이팅의 유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