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나는 도저히 심란해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들고 고민되는 일은 최고의 절친인 우리 남편에게 말해왔지만, 이번만은 말할 수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이면서 아이비에커도 아는 유진언니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무슬림을 이해하고, 남자를 이해하고, 나와 아이비에커 둘 다 아는 성제오빠 밖에는 답이 없었다. 나는 고민 끝에 호스텔의 마당에 홀로 나와 성제오빠한테 텔레그램으로 전화했다. 오빠 잠시 시간 되세요? 어 그래... 오빠에게 한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평소에는 조선의 선비처럼 진중하고 차분한 성제오빠가 여전히 진중한 목소리로 차분하고 느리게 발끈했다. "이거 미친놈 아니야!" 성제오빠는 내가 아이비에커의 차에서 거절한 메시지에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건 니 와이프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이 말은 내가 아이비에커랑 둘이 만나고 싶은데, 와이프 때문에 못 만난다는 것으로 들린다고 했다. 한국 여자들은 대부분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는데 습관이 되어서, 이런 일을 당했을 때에도 단호하지 못하다고 혀를 찼다. "너 너무 남자를 모른다. 니가 너무 순진하네. 친구들하고 이런 연애얘기를 해본 적 없지? 모르면 유튜브를 보든, 책을 보든 좀 찾아봐라. 그리고 너 아냐. 성폭력의 대부분은 아는 사람에게 당한다는 사실이야." 내가 직감으로만 느꼈던 위험이 성제오빠의 입으로 구체화되었다. 한 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미친놈, 성폭력의 주인공으로 묘사되는 걸 듣고 있자니, 아이비에커가 그 정도 인간은 아니지 않나요 오히려 두둔하고 싶어졌다. 과거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부정하는 건 내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혹은 과거에 내가 했던 사랑이 그 정도 인간하고 했던 것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옛사랑이 순식간에 잔혹동화가 되는 느낌이랄까.
타슈켄트 한의원 청연한방병원 다음날 나는 아이비에커에게 핑계댄 것처럼 엄마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영어 잘하는 호스텔 주인아저씨는 병원을 알아보는 나에게 Akfamedline이라는 대형병원을 추천해 줬지만, 거기 가서 러시아어도 못 하는 내가 천신만고 끝에 접수를 하고, 또 물어 물어 의사 진료실을 찾아가고, 구글번역기로 의사와 문진을 한 다음, 필요 없는 CT촬영까지 해서 하루를 버린 뒤, 결국에는 소염제나 진통제 같은 일반 약을 처방받을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다행히 타슈켄트에는 한국의사가 있는 한방청연병원이 있었다. 혹시 몰라 전화를 미리 해보니, 접수처부터 한국어가 통했다. 유창하지 않은 한국어발음을 보니 현지인직원 같았다.
키릴문자 자판을 추가하고, 청연(ЧонгЁн)을 치니 장소가 검색이 되었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의 정반대편에 위치한 곳이었지만, 타슈켄트가 생각보다 작은 도시다 보니 가는데 차로 13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얀색 바탕의 실내, 실내 정수기, 교민잡지, 자판기 옆에 배치된 사탕과 믹스커피... 전형적인 한국 의원이었다. 감기를 하루종일 하며 무표정이던 엄마도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마음이 놓이셨는지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청연한방병원 실내 내부
청연한방병원 타슈켄트 브로슈어
진료대기중인 환자가 아무도 없어,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엄마는 한국에서 온 여의사를 만나자마자 나에게 할 수 없었던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코에서 콧물이 어쩜 그렇게 흘러나와요. 기침할 때마다 여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어요. 그래도 사마르칸트에서 무슨 마사지를 받아서 좀 낫긴 했는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몸이 아파요 등... 엄마는 진료가 오래 걸릴 것 같다며 나와 주원이를 먼저 가라고 했다.
우즈베크 유심은 딱 하나 엄마에게만 있었다. 이럴 때는 허술하고, 통제가 덜 된 사회, 키르기스스탄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유심은 돈만 내면 바로 구할 수 있는 거였지만, 이곳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우즈텔레콤에서 신분증을 내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얻을 수 있는 거였다. 그것도 본사직영을 찾아가야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니, 여기서 얼마나 머무른다고 유심을 그 시간 기다려서 또 발급하나... "그럼, 엄마 내가 엄마핸드폰 가져가면 안 돼?" 엄마는 얄짤없었다.
"그럼 엄마는 어떻게 집에 가니?"
"엄마 병원 여기 접수대에 얀덱스(현지 택시앱) 불러달라고 하세요. 나야말로 인터넷도 안 되는데, 이 먼 곳에서 호스텔까지 유아차끌고 어떻게 찾아가."
그래도 아픈 엄마는 이 순간만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했다. 인터넷도 안 되는 이 환경에 나와 주원이를 내보내서 관광을 보낼 생각이라니... 심지어 병원에서 기다린다고 해도 우리가 있는게 부담이 되는지 가라고 했다. 엄마에게 현지 화폐를 조금드리고, 어쩔 수 없이 나와 주원이는 인터넷이 안 되는 내 핸드폰만 가지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엄마는 그곳에서 7만원짜리 진료를 받았다고 한다. 의사는 엄마의 맥을 짚어보더니, 전반적으로 맥이 약하고, 오랜 여행으로 인해 면역력이 많이 떨어지고, 피로가 누적된 상태라고 했다. 엄마는 탈의를 하고 등 전체와 이곳저곳에 침을 맞는 치료를 1시간 동안 받고, 2박 3일간 먹을 수 있는 한방약을 처방받았다. 의료보험이 안 되는 곳이라 한방치료가 이렇게 비쌀 수밖에 없었다. 한방치료만 생각하면 지금 당장에라도 키르기스스탄 비쉬케크의 북한 한의원에 엄마를 보내고 싶었으나, 엄마는 같이 가면 같이 갔지 혼자서는 비쉬케크에 가기 싫다고 하셨다. 청연한방병원에는 한의학을 전수받고 있는 듯 한 현지인들이 좀 있었고, 모두 엄마에게 친절하게 잘 대해주었다. 이곳에도 코로나가 강하게 스쳐지나간 모양인지,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 중 2명이 코로나로 가족을 잃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마스크프리가 된 지 오래되어 보이는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청연한방병원의 모든 직원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오랜만에 한국어를 쓸 수 있는 곳에 가니, 마음도 편하고, 엄마도 그나마 비상탈출구를 얻은 느낌이었다. 엄마는 청연한방병원의 진료로 인해 급속도로 감기가 낫진 않았지만, 그래도 진료를 받고 나서 기침이 많이 잦아들고, 콧물이 덜 나오기 시작했다. 서양의에게 받을 수 없는 전신적인 치료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