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때 5살 아들과 친정엄마를 동반해서 3개월째 중앙아시아를 배낭여행 중이었습니다. 해외여행 중인 걸 분명히 알 텐데...... 데이터 걱정에 로밍폰으로 받을까 말까 오랫동안 망설이는 데도, 그 보이스톡호출은 끊어질 줄 몰랐습니다. 그 끈질김에 직관적으로 은밀한 불길함이 스쳤습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고, 순간적으로 지금 로밍폰의 데이터사용량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보세요?"
"흐흐흐흑"
"......"
"주원이엄마, 어떻게 해. OO가 죽었대....."
함께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 친구의 엄마는, 또 다른 친구 OO의 소식을 어렵사리 전하고는 끄윽끄윽 울기 시작했습니다. 막 5살이 된 주원이 인생에 OO는 무려 3년이나 함께 보낸 이웃 단짝친구였습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도심 한복판에서 저는 굳어버렸습니다. 저 멀리 친정엄마와 5살 주원이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뭐 해!" 뒤돌아서 빨리 오라고 채근하는 친정엄마의 외침에 정신이 차려졌습니다. 뭐부터 해야 할까.
OO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일찍 퇴근했던 어느 오후였습니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아이의 가방을 받아 드는데, 어린이집 선생님이 저 멀리 내다보더니 저에게 말했습니다.
"OO가 또 주원이를 기다리네요."
뒤돌아보니 OO와 아이엄마가 어린이집 앞에서 주원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희를 기다린다고요?"
"네, 주원이 할머니가 말씀 안 해주셨나 보네요? 거의 매일 주원이를 기다려요. OO는 오전만 하고 집에 갔다가, 주원이 하원시간에 맞춰서 어린이집 앞에서 기다린답니다."
무심하기도 하지, OO는 심지어 주원이와 어린이집을 벌써 1년 넘게 같이 다니고 있던 친구라고 했습니다. 온 신경을 회사에 쓰느라고, 아이의 알림장을 허투루 보다 보니 OO의 존재를 처음 자각했던 겁니다.
그렇게 OO와 그의 엄마는 주원이와 저에게 먼저 다가와 주었습니다. 그 후로 종종 제가 하원을 하게 되는 날이면, OO엄마와 저는 아이들의 킥보드를 쫓아다니며 온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킥보드로 날쌘돌이가 된 그들은 좁은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엄마들을 강제 달리기 운동을 시켰습니다. OO의 손에는 늘 자동차 장난감이, 주원이의 손에는 기차 장난감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탈것에 유독 관심이 많은 두 친구는 막 한국어를 구사하기 시작하자 혀 짧은 소리로 수많은 수다를 떨기 시작했습니다. OO가 우리 집에 놀러 온 날에는,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도록 놀다가 주원이 집에서 더 놀고 싶다고 울었고, 주원이가 OO네 집에 놀러 간 날에는 온갖 장난감을 어지럽게 늘어놓으며 탈것 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여름 방학 즈음, 저는 13년 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고, 퇴사기념으로 5살 아이와 친정엄마와 함께 배낭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OO는 주원이를 여름 내내 못 본다는 걸 알고는 슬퍼했지만, 재회를 약속하며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2주 전만 해도, 어느 숙소에서 OO와 주원이는 영상통화를 하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었는데......
별안간 무슨 일인지 저에게 전화한 그 엄마도 전혀 모른다고 했습니다. 자기도 어떻게 하다 보니 OO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것만 알게 된 것이었고, 장례식이 어디서 열렸는지, 혹은 열리긴 했는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는 한참을 생각하다 OO엄마의 카카오톡을 찾았습니다. 그녀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온통 회색이었습니다. OO와 함께 만든 쿠키, OO가 찰흙으로 만들었던 자동차, 그리고 OO가 서툴게 네발 자전거를 타는 동영상으로 가득했던 카카오톡 프로필은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저도 숨이 이렇게 턱턱 막히는데, OO엄마가 밥이라도 먹고 있을지 걱정되었습니다.
[소식 들었어요.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요. 9월에 귀국해요. 그때 밥이라도 같이 먹어요.]
그날 저녁 OO엄마가 답을 해주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시면 직접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알게 해 드려 죄송해요.]
일상이 배려인 OO엄마는 그 상황에서도 배려를 하고 있었습니다.
3개월의 중앙아시아 여행이 끝나고 귀국했습니다. 그날 저에게 끈질긴 호출을 했던 그 엄마와 저는 조심스럽게 OO엄마에게 연락해, 납골당 위치를 물어보았습니다. 날이 화창한 어느 날, 우리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작은 편지를 적어 OO의 납골당으로 향했습니다. 정말로 OO는 납골당의 어느 항아리에 있었습니다. 스카치테이프로 우리가 적어온 편지와 꽃을 유리에 붙이는데, 그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OO엄마에게 우리가 꽃과 편지를 놓고 간다고 하자, 고맙다고 정중하게 답장이 왔습니다.
엄마 셋은 몇 개월 후 재회하였습니다. OO엄마는 큰 일을 겪은 것치고는 너무나도 담담했습니다. 혼잡한 상황 속에 사건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바람에 OO엄마는 애도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여러 수속과 절차, 각종 의사결정과 신고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모든 걸 덤덤히 털어놓는 OO엄마는 아마도 혼자 있을 수 있을 때 이불을 덮고 우는 것 같았습니다. 두 눈이 퉁퉁 부어있었고, 다래끼마저 오래 지속되고 있었거든요. 아이의 엄마로 남은 우리들과 만나는 게 OO엄마에게 도움이 될까 고민도 했지만 우리는 그냥 모든 걸 시간의 흐름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동네 이웃엄마에서 OO를 기억하는 연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 후 OO엄마는 아이의 짐을 정리했습니다. 아이의 체취가 남아있는 이불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다가 울기도 하였지만, OO의 짐을 정리해서 보내줘야 OO가 마음 편히 하늘나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짐이 모두 정리되자 이제는 OO엄마는 자신의 짐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출근한 어느 오후, OO엄마는 짐을 모두 챙겨 친정집으로 이사 갔고, 몇 개월 후 이혼했습니다.
세 명의 엄마들은 가끔 만났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OO엄마의 친정엄마였습니다. 너는 배알도 없니. 아이를 잃은 엄마가 그 엄마들을 만나면 뭐 하니. 너를 업신여길 거다...... 아마도 친정엄마는 자기 새끼가 무시당할까 봐 걱정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만났습니다. 각자의 아이는 가족에게 맡기고, 뜬금없이 그림 전시회를 보러 갔습니다. 호숫가를 걸으며 계절의 변화를 느꼈고, 벤치에 앉아 오리를 관찰했습니다. 그러다 코인노래방에 가서 유행한 지 20여 년도 더 된 옛 유행가를 불렀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 갈 일이 없었던 호프집에 가서 맥주를 시켰고, 호프집에 있는 스티커 사진기 앞에서 귀여운 포즈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막 나온 뜨끈한 스티커사진을 보며 이런 사진을 찍은 지 도대체 몇 년만이냐며 하하 호호 웃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한 엄마가 울기 시작했고, OO엄마도 울었습니다. 맥주집에는 역시나 철 지난 유행가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몇 개월 후, 저에게도 인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멀쩡한 척 숨겨왔지만 이제는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상황까지 온 것입니다. 장기 입원으로 한동안은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을 만날 수 없게 되자, 엄마 셋이 있는 단톡방에 그동안 숨겨왔던 저의 사정을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OO엄마는 그날 무작정 저희 집에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2시간을 내리 울었고, 무너진 저에게 OO엄마는 손을 내밀어주었습니다.
큰 위기를 겪고 몇 개월 만에 저는 기적처럼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 후 저는 더 이상 삶을 허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친정 경제사정 걱정하느라고, IMF트라우마를 극복하느라고, 돈돈돈 하느라고, 하기 싫은 일을 너무나도 오랫동안 해야 했습니다. 주말이고 저녁이고 명절이고 상관없이 아무 때나 울리는 회사 메신저에 이메일에 전화에 너무 오래 시달렸던 모양인지, 회사를 그만둔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맛이 간 교감신경은 회복되지 않았고, 영혼 같은 거는 '숨김'처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남을 위해 살지 않기로 하고 저의 버킷리스트를 돌아보았습니다. 2021년 출판사 등록만 하고 책도 한 권 내지 못했던 저는 그 목표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우선 첫 발이라도 떼어보기로 했습니다. '책 쓰기'가 아닌 '책 만들기'가 목표인 저에게 OO엄마는 첫 작가가 되어주었고, 저는 드디어 '전자책 전문 출판사'의 사장님이 될 수 있었습니다.
OO엄마는 OO를 하느님께 맡기고 '엄마'타이틀을 붙이기 전의 자기 자신, 정삼이로 돌아갔습니다. 하늘나라에 간 OO를 만나고 싶어서 꺼내든 건 바로 처녀시절 잠깐 배워본 기타. OO를 만나러 가기 전 남은 생의 여한이 없도록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이뤄야 했기에, 기타를 배워야만 했습니다. 정삼이 작가의 글은 좀 서툴기도 하고, 세련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꾸밈이 없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솔직합니다. 그리고 이번 책으로 OO는 더 이상 엄마 셋의 기억 속뿐만 아니라, 책에도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혹은 OO엄마처럼 인생에 큰 위기를 겪고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밀리의서재, 교보문고 SAM, YES24 CREMA를 구독하고 계신 모든 분들이 만날 수 있습니다. 정삼이 작가의 글이, 위기를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가닿아 조금이라도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습니다.
이번 글을 시작으로 조금씩 전자책 전문 출판사 박수소리의 출판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