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웹드라마 열풍
<진정령>, <경여년>으로 보는 중국 대중문화의 부상, 그리고 시사점.
중국 드라마 마니아라면 2019년의 메가 히트작 <진정령 陈情令>과 <경여년 庆余年>의 등장 이전부터 <보보경심 步步惊心>, <삼생삼세십리도화 三生三世十里桃花>, <랑야방 琅琊榜>, <위장자 伪装者>, <환락송 欢乐颂> 등과 같은 작품들이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진정령>과 <경여년>의 차이는 바로 TV 드라마가 아닌 웹드라마라는 점이다. 중국의 웹소설 작가 묵향동후의 BL소설 <마도조사>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진정령>은 2019년 여름 텐센트에서 방영된 50부작 웹드라마이다. <경여년> 또한 <장야>로 유명한 중국의 웹 작가 묘니의 원작을 각색하여 2019년 말부터 2020년 초까지 방영된 46부작 웹드라마이다.
아주경제의 2020년 1월 6일 자 기사에 따르면 2019년 중국에서 인기 드라마로 분류된 9편의 드라마 중 3편(진정령, 경여년 포함)이 웹드라마였다. 또한 중국산업발전연구망 통계에 따르면 2015년 약 6조 7900원에 불과했던 웹드라마 시장이 2019년에는 약 3배 이상 성장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플레이리스트가 제작한 <에이틴>이 엄청난 인기를 누린 후 급성장하며 이제는 TV에서도 방영되는 <라이브온> 등과 같은 드라마를 제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처럼 한국과 중국에서는 웹드라마가 무섭게 성장하며 점차 전통적인 TV 드라마와 웹드라마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웹드라마 성장의 요인으로는 우선 인터넷 기술의 발전, 모바일 기기의 보편화, 그리고 문화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오여월(2019, p. 15)에 의하면 중국 웹드라마의 성장에는 두 가지 독특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첫째, 중국광전총국의 심사 제도다. 중국에서 지상파 드라마의 방영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약 10가지 이상의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또 50일 이상 소요되는 심사를 거쳐야만 한다. 이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주제가 정부의 사회주의 이념이나 가치관과 부합하지 않으면 방영될 수 없다. 둘째, 저작권 문제다. 중국의 많은 드라마들은 게임이나 만화, 소설을 드라마화한 것이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가 존재한다. 따라서 저작권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방송국에서 판권을 구매, 방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기존 드라마 심사 및 방영 체제를 우회하기 위해 많은 제작사들이 인터넷이라는 플랫폼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점점 주요한 소비자층으로 떠오르면서 그들의 니즈가 드라마 시장에서 중요해진 것 또한 하나의 요인으로 꼽아볼 수 있겠다. 당분간은 웹드라마의 약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담을 살짝 덧붙이자면 <진정령>에서 남망기 역을 맡아 이제는 명실상부한 스타가 된 왕일박(王一博)은 위에화 엔터테인먼트 중국 본사와 YG 엔터테인먼트의 합작으로 출범했던 보이그룹 UNIQ(유니크)의 멤버다. 2016년 중반 한한령으로 인해 한국인 멤버가 2명 포함되어 있는 유니크는 중국 방송 출연이 불가능해졌고, 그 이후로 그룹 차원의 활동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놀라운 점은 유니크의 한국인 멤버 중 한 명이었던 조승연은 프로듀스 X 101에 출연하였고, 현재 솔로 가수 우즈(WOODZ)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프로듀스 X 101 출연 전에도 곡을 계속 내고 있긴 했다.)
둘이 같은 그룹으로 데뷔해 활동했던 것을 모른 채로 각자의 커리어를 팔로우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같은 그룹 소속이었다니, 새삼 세상이 참 좁다는 걸 알려준 두 사람이었다. 또 동시에 한국과 중국의 연예계가 생각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이종석과 정솽郑爽이 출연한 <비취연인 翡翠恋人>, 덩룬邓伦과 f(x)의 멤버 크리스탈이 출연한 <필업계 毕业季> 등 한중 합작 드라마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정솽은 양양과 함께 출연했던 <미미일소흔경성 微微一笑很倾城>으로, 그리고 덩룬은 양자, 라운희와 출연했던 <향밀침침신여상 香蜜沉沉烬如霜>으로 한국에서 알려져 있는 듯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중국 웹드라마의 부상으로 인한 중국 대중문화에 대한 한국 대중들의 태도와 인식 변화이다. 특히 <진정령>의 경우 2019년 아시아의 서브컬처를 강타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아시아 곳곳, 그리고 한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진정령의 원작인 <마도조사>는 2019년 7월 yes24 장르소설 베스트셀러 20위 안에도 그 이름을 올렸다. <경여년> 또한 한국에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유명 웹소설 플랫폼인 문피아에서도 공개한 바 있다. <진정령>이나 <경여년>을 본 후 다른 중국 웹드라마부터 시작해 예능, TV 드라마 등으로 관심사를 넓히는 팬들도 종종 있는 듯하다. 이처럼 중국 문화 콘텐츠의 존재감이 점차 커지며 중국 대중문화의 부상이라는 현상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나도 <랑야방>으로 처음 중국 드라마에 입문한 이후로 수없이 많은 중국 드라마를 시청했고, 소위 '중드 마니아'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한 명의 한국인으로서 중국 대중문화의 부상을 그저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의 증가로만 바라보기에는 최근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으로 인해 불거진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가 남아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의 대중문화 전반, 그리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연예인이나 중국 출신 아이돌 멤버들에 대한 거부감 또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주간조선의 스페셜 리포트에서는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지금 한국에서 산발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대중문화 분야의 반중 정서는 단지 타 문화에 대한 배타적인 자세가 아니라 중국의 이런 문화 전략[문화 동북공정]의 목적을 인지한 대중의 반감으로 해석하는 게 옳을 것이다. 대중문화 분야에서의 반일 정서와는 다르다. 반일 정서가 과거와 관련된 것이라면 반중 정서는 미래지향적이다."
많은 은원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 중, 일의 관계를 어떻게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난제이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참고 문헌
김효정. "BL 소설에도… 서브컬처계에 스며든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 「주간 조선」, 2020년 11월 9일.
곽예지. "中 웹드라마 열풍…“지난해 인기작 9편 중 3편이 웹드.” 「아주경제」, 2020년 1월 6일.
오여월. "중국 웹드라마의 현황 및 발전 전략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대학원, 2019.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