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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팽나무 Sep 26. 2020

의자, 이야기를 품다

나의 수필 쓰기- 두 번째 수필집 『의자, 이야기를 품다』출간


그 옛날, 샘의 정화는 고요함 속에서 이루어졌다. 비가 내리고, 눈보라가 치고, 폭풍이 몰아치면 샘은 뒤집어졌다. 바닥에 깔린 흙과 비바람에 쓸려 온 이물질이 섞여 혼돈을 이루었다. 그런 샘은 아무도 찾지 않았다. 며칠 동안 샘은 죽은 듯 엎드려 있었다. 호흡을 고르고 제자리를 찾는 데는 홀로의 시간이 필요했다. 세상이 잠잠해지고 이슬마저 잠든 새벽녘, 샘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여명 속에 오롯한 샘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오해와 편견이 이해와 배려로, 눈물과 분노가 깨달음과 포용으로 바뀌기까지 생각 샘은 아우르고 포용하는 법을 배워 갔다. 뒤죽박죽 섞인 감정을 정리하고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바닥에 쌓여 있는 묵은 생각과 갓 들어온 날것의 차이를 줄이기 위한 조율의 힘도 키워야 했다. 생각 샘에 바가지를 드리우는 건, 수필이라는 맑은 물이 출렁거릴 때였다. 그건 해석과 통찰의 힘이었다. 

나의 수필 쓰기는 그랬다. 탁한 생각을 정화해 글로 표현하는 일이었다. 소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문학의 옷을 입고 고개를 들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슬픔에 넋을 놓고 안타까움에 가슴 졸이고, 분노와 원망에 시퍼런 칼날을 세웠던 일이 바가지에 담기면 숙연해졌다. 출렁거리는 맑은 물이 목마른 이의 갈증을 풀어주듯 수필은 타들어 가는 목에 생명수가 되었다.

 

수필은 ‘인생학’이라고 했다. 치유의 힘이 있다는 걸 말함이다. 현실은 과거의 족적이고, 미래는 현실의 결과이기에 우리는 과거를 외면할 수도, 미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도 없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건 자연스럽다. 곪은 속살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열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상처 속에 웅크린 나를 직시하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니 애써 감추려 들기보다 담담하게 말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사색과 상상의 힘을 빌려 좀 더 살맛나는 세상을 노래하고 싶다. 

쇼펜하우어는 《문장론》에서 ‘스스로 사색하는 자가 되고 싶다면 소재를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라고 했다. 내가 추구하는 수필은 사람들과 삶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 속에는 내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새로울 것 없다. 이웃의 이야기, 뻔하다. 매일 마주치는 풍경과 사람들, 그 모습이고 그 얼굴들이다. 

하지만, 겉모습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초라한 이면은 감춰지게 마련이다. 나 또한 울고 싶을 때 애써 웃지만, 자본과 권력 앞에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사회적인 배경이나 위치에서 오는 열등감은 어깨를 축 처지게 만든다. 생계를 위협하는 거대한 힘 앞에 찌부러진다. 그런데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건 수필의 힘이다. 하찮고 남루한 일상에 눈길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춥고 배고픈 이들의 소리 없는 외침, 그 외침이 가끔은 내 안에서 들려오기도 한다. 그것들을 음지에서 끌어내 따뜻한 언어의 옷을 입히고 싶은 날. 생각 샘에 조용히 바가지를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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