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준다는 건
노부부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중이었다. 할아버지가 앞서고 할머니가 따랐다. 돌은 편편했으나 사이가 넓었다. 젊은 사람이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관절이 뻣뻣한 노인들에겐 쉬워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다리 중간쯤에서 할머니가 마저 건너오도록 손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조심스레 다리 하나씩을 건너갔다. 자신을 믿으라고 손을 내미는 할아버지와 믿고 있다며 손을 맡기는 할머니는 그들의 지난 시간을 가늠케 했다. 고된 삶처럼 뉘누리를 지나온 물이 징검다리 사이로 졸졸졸 흘렀다. 다리를 다 건넌 노부부는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할아버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밀 뚝 떼며 앞서 걸어갔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발밤발밤 아침 산책길을 걸었다.
나는 다리 근처에 쪼그리고 앉았다. 다리를 건너간 많은 사람의 그림자가 물빛에 어리는 듯했다. 자연이 아닌 인공으로 놓은 다리였다. 만약에 징검다리가 아닌 죽 이어진 시멘트다리였다면 어땠을까.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할머니 또한 할아버지의 손을 잡으려 했을까. 그랬을 것 같지 않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내밀 수 있다는 건 징검다리이기에 가능하다. 예전 아버지가 어린자식을, 자식이 늙은 부모를 등에 업고 서로의 시간을 묶어준 것도 징검다리였다. 언니나 오빠가 동생을 업고 그 동생이 또 동생을 업던 정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었지만 그 정서는 물처럼 흐르고 있다.
사라진 징검다리를 복원한 천변에서 인간관계를 생각한다. 징검다리는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는 게 아닌 서로를 마주 보게 한다. 멈춤과 돌아섬은 앞이 아닌 옆과 뒤도 바라보게 한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우러나는 포용의 길이다. 잘 닦인 매끈한 직선의 길은 질주가 미덕이다. 앞만 보고 걸어가는 현대인들의 삶처럼 삭막하고 냉정하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준다는 건 마음에 징검다리를 놓는 일이다. 그 다리에는 잔잔한 물소리가 있고 물에 비친 자신의 자아가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한데 섞여 물처럼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