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수선할 수 있다면
어릴 때 살던 이층 집으로 가
앉은키가 나보다 큰 미싱 앞에 서서
지나온 시간을 모두 벗은 뒤
영혼을 한 올 한 올 바늘에 걸어
새로 박음질하고 싶다
적개심을 도려내고
미움을 봉한 뒤
자존심을 잘라내고
구멍 난 마음과
허술한 사랑과
기울어진 존중을
수선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자면
나를 수선해 줄 사람부터 찾아야 할 텐데
솜씨 좋은 재봉사부터 만나야 할 텐데
나는 머뭇거리고
나는 머뭇거리고
물구나무 선 채 키와 몸무게를 재고
눈을 반대로 가린 채 숫자를 읽는다
왼손이었던가 오른손이었던가
내가 정말 바뀔 수 있는 인간이었던가
그해는 내 가장 행복한 하루가
한 장 한 장 쌓여 만들어진 편지와 같았고
먼지가 폴폴 날리는 가슴도 차분해질 만큼
멋진 하늘이 내내 눈을 가득 채우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어떤 공포를 보았고
유능한 낚시꾼처럼 미끼를 흔들며
불안과 우울을 채취하곤 했다
깨알 같은 행복 하나하나를 모아
싹 틔우고 꽃 피우던 너를
먼발치에서 기다리고 또 보내며
이렇게 좋은 친구를
이렇게 좋은 세상을
이렇게 좋은 하늘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한숨처럼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므로 나를 수선할 수 있다면
그 순간은 5월의 논처럼 눈부신 하루일 것이고
동시에 흐느낌을 참던 작은 손바닥일 것이고
옷가루 날리던 지하실일 것이고
네게 손을 흔들던 찬란한 하늘 아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