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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의 시점

에세이

by 작가 전우형

불길하거나 끔찍한 장면이 예상될 때 나는 생각을 멈춘다. 그럴 때 거울을 보면 내가 마네킹처럼 굳은 얼굴을 하고 있다. 마네킹에는 표정은 있지만 감정은 없다.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라면 보는 이는 분명 그의 속마음을 유추해 볼 것이다. 하지만 마네킹의 표정을 보며 속내를 짐작하는 경우는 없다. 당연하게도 마네킹에게는 마음 따위가 존재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어떤 식으로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을까. 때로 인간에게도 마음 같은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을 때가 있다. 이미 무언가로 가득 차 있을 때, 생각과 상상은 한정된 구름 속을 빙빙 돈다.


며칠 간의 맑은 날이 지났고 두꺼운 구름층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증막 같은 시간이었다. 가운데 달궈진 돌을 모아둔 화로가 있고 좁은 공간 주변엔 사람들이 앉거나 누워 땀을 흘리는 곳. 그 속에서 증발되어 하늘에 모이는 것은 땀방울일까, 아니면 생각들일까. 생각은 종종 증발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여름은 존재하는 것 같다. 불길함은 생각의 꼬리를 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의 맨 앞칸에는 그들 모두를 이끌고 가는 동력원이 존재한다. 그것은 하나의 끈끈하고도 위험한 감각. 감각이 물꼬를 트면 생각들이 거기로 모여든다. 흐름을 타고 모여드는 각양각색의 물고기들. 생각을 멈추려면 위험한 감각으로부터 눈을 돌려야 한다. 장소를 벗어나거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전략은 그래서 유효하다.


미래에 대해, 불확실성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종종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 때 결말을 미리 정해두는 것은 목적지를 정하는 것과 같다. 몇 개의 경로를 탐색하고 나면 밀담을 나눌 때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약속된 행동을 만들어내고 그 속에 숨겨진 동기를 담아둔다. 정교한 짜맞춤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 그것은 글쓴이 자신의 변덕이기도 하고 이야기 속 인물들의 성장이기도 하다. 몇 개의 학습과 사건을 거치다 보면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반응할 수 없는 지점이 온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까지 온 다음에도 이전의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은 어색하다. 커다란 돌이 물길을 막아버린 것처럼, 그런 길로는 이야기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시선은 관심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갖기도 한다. 의도를 갖고 드러낸 시선일수록 진의와는 다른 곳을 주시하기 마련이다. 단순히 감추거나 속이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행하는 이와 바라보는 이 사이의 간극쯤으로 보면 적절할까. 그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는 해석의 단계가 존재하고, 해석에는 오차가 따르기 마련이다. 글쓴이는 그 오차를 어떤 경우에는 0으로 만들고 어떤 경우에는 무한대로 늘릴 수 있다. 배경에는 그만한 위력이 있다. 배경에 휩쓸려가는 인물과 지독하달만큼 고집스러운 인물. 둘의 배합은 이야기의 외력으로 작용한다. 그 속에 녹아든 글쓴이의 의도 또한 스펙트럼의 형태를 띤다. 결말은 그래서 미래와 다르지만 여전히 불확실하다. 100% 적중하는 기상예보가 없는 것처럼,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들에는 도래하지 않은 것들만의 몫이 있다. 그 몫을 인정하는 것이 글쓴이에게는 중요한 품성이고 읽는 이에게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미지'나 '여지'로 남을 텐데. 여기서 품성은 달리 인내심이라고 바꿔 쓸 수도 있겠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내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든 것처럼.


(계속)


* 표지 : 7월 28일 저녁 7시 28분의 초승달(위치 : 안중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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