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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8월

에세이

by 작가 전우형

오랜 기다림 끝에 구름 사이로 빛이 내비쳤다. 얼음 결정에 푸른 기운이 일렁이듯 약간은 어둡던 구름의 뒷얼굴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지금과 같은 여름이라면 오히려 티 없이 맑은 하늘이 불청객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련만. 8월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사람이라면 밀가루 반죽 같은 하늘보다는 뻥 뚫린 하늘을 더 기다릴 거라는 믿음이 오후의 그림자처럼 자라났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이 오류투성이임을 알면서도 나는 더운 여름이라는 말에서 더운, 이라는 수식어를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은 역시 스스로를 이해하기엔 벅찬 존재일까.


날씨는 때로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붉은 하늘은 새로운 시작 같고 파르스름한 어둠은 달과 함께 차오르는 시린 물 잔 같았다. 그것을 기울이면 저녁 하늘이 혀를 적시며 갈증을 채워주었다. 펼친 채로 엎어둔 책 같은 시간. 너무 오래 눌려둔 탓에 다음 페이지로 넘기려 해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버리는 그런 마음. 혹은 그런 관계. 언제고 툭 떨어진 책이 자연스레 내어 보일 장면. 날씨는 그런 것들을 열고 또 닫는다. 나름대로의 하루를 정리하고 해석해 보려는 것처럼. 혹은 잊어도 보고 견뎌도 보려는 것처럼. 매년 반복되는 같은 날짜들에도 전혀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하지만 그 속에도 빛을 머금은 구름의 뒷면 같은 메모가 있고, 같은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버튼은 같은 날씨도 다르게 느끼게 만든다. 그러므로 날씨가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과 감정이 어떤 날씨를 느끼게 하는 것은 반대의 작용 같지만 실은 같은 작용이다.


마른 모래 같은 하루가 이제 잠들어 가고 있다. 고요함은 때로 다른 색의 소리를 내고 잠든 이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차분하지만 분명하게 반복된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하루에 대하여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 하루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증명할 수 없고, 이미 지나가버렸기에 기다릴 수 없다. 때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표현하고 싶지 않은 것이고, 꿈은 내게 늘 그랬다. 꿈에서 나는 다퉜고 곤경에 처했고 난감했고 수치심을 느꼈다. 자정이 1분 남았다. 하루가 지나기 전에 마무리지으려던 계획은 어긋났다. 그렇지만 늘 어긋난다 여겼던 그 계획들도 내겐 잠든 이의 숨소리 같다. 들리지 않는 듯하다가도 귀 기울이면 분명히 존재하는 그런 어긋남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 사람. 관계. 마음. 설정. 결말. 사랑. 그리고 글... 이틀 전은 중복이었고 나는 능이백숙 가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한 학생의 말을 전하며 오늘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나는 백숙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요!"


* 표지 : 7월 31일. 해질녘. 아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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