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고양이는 죽을 때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외로워하지도 않고 고통을 알아봐 달라고 칭얼거리지도 않는다. 고요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 가만히 숨을 거둔다. 아플수록 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죽음은 고양이에게도 두렵다. 두려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때 우리는 그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단정 짓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생명체는 있을 리 없다. 자신이 감각하는 어떤 상태를 두려움이라 이름 짓지 못한 생명체는 있을지 몰라도.
슬픔은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덜 위선처럼 느껴진다. 이대로 사라질까 하는 두려움에 미친 듯이 달려가게 만드는 연보랏빛 노을처럼. 블루베리 잼을 은가루에 풀어놓은 듯 한 구름들이 파도치듯 밀려나는 것과 멀리서 모래알처럼 반짝이는 빛의 알갱이들. 어서 담고 싶어 달려갔을 때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딱 하나, 그렇지 않은 게 있었다. 그 순간의 하늘은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어쩌면 지금 그의 눈동자에 비친 하늘이 해진 벽지처럼 군데군데 얼룩지고 색이 변해 있었던 것처럼. 지나고 나면 다시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나는 자주 망각했고, 함부로 놓쳤다. 그 순간을 붙잡을 수 없더라도 미련 없이 거기에만 머물 수 있었더라면 조금은 덜 슬퍼할 수 있었을까.
겨울을 여름 한가운데 가져다 두어도 세상은 하얗게 덮을 방법은 없겠지. 빗물을 팝콘 기계에 튀겨도 눈처럼 곱게 부풀어 오르진 않겠지. 불가능한 상상을 하나 둘 눈앞에 가져다 둔다. 불가능에도 서열은 존재하고 작은 고통은 더 큰 고통이 잦아들기 전까지는 느낄 수 없다. 낮과 밤이 공존할 수 없고, 삶과 죽음이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여정은 시작되었으나 목적지는 없고, 무엇을 위한 여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정의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의미나 목적 없이도 점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노란 바나나는 맛이 없고 식은 커피는 한참 동안 바라만 보게 된다는 식의 가루약 같은 이야기들. 그것을 물 담은 밥숟가락에 곱게 풀면 코를 막고 할 수 있는 가장 험악한 인상을 쓰며 받아먹던 내가 떠오른다. 통증을 가라앉힌 건 밀가루처럼 고운 가루약이 아니라 엄마 무릎을 베고 누우면 들려주던 이야기였고, 잠든 후 꿈자리를 사납게 한 건 입술을 핥을 때마다 느껴지던 쓴 맛이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만 털어놓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믿어지지 않지만 우린 오늘 처음 만났다고. 그리고 이제 곧 어디선가 다시 만나면 똑같은 말을 할 사이가 될 거라고. 아주 오랫동안 멈춰 있던 시계가 있다. 그 시계는 언제나 12시 19분을 가리킨다. 건전지만 바꾸면 다시 움직일 걸 알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12시 19분을 기다릴 거고, 시계는 움직이는 순간부터 느려진다. 별의 과거만 바라보고 싶다. 영원히 거기 존재하는 것처럼, 아주 오래전의 빛이 지금 도달할 뿐이더라도 단 하루의 사랑했던 순간에 머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