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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손 같아서

오늘도 풍덩

by 작가 전우형

단풍잎을 보면 때로 아이손인가 하다가도 금세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잎을 하나하나 세어보다 보면 어떤 것은 여섯 개, 어떤 것은 일곱 개, 또 어떤 것은 여덟 개라서 왜 아이손처럼 보였을까 고개를 갸우뚱하고 또 걷다 보면 흩어진 단풍잎들이 또 아이손처럼 보여서 걸음을 멈춰 세우게 된다. 지나치는 마음으로 보게 되는 것들이 대개 그러한가. 남의 삶을 바라보듯 하나하나 헤아리지 않고 그저 쓱 지나쳐가는 것들이. 어쩌면 살면서 많은 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러나 또 어떤 것들은 지나치듯 보아야 거기 매몰되지 않고 차분히 하던 일을, 혹은 가던 길을 마무리지을 수 있어서. 내가 볼 수 있는, 알아차릴 수 있는 세상이란 어색하게나마, 대강이나마, 단풍잎이 아이손처럼 예쁘구나 하는 거기까지였구나. 그러니 다 정확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다 알아차릴 수 있는 것처럼 오만하지 말자, 교만 떨지 말자, 잘난 체하지 말자. 그런 생각들을 하며 걷는데 문득 아침, 차에 타서 출발했을 때 내리던 가을비는, 불던 가을바람은, 그래서 몇 안 남은 잎새들이 후드득 떨어져 흩날리던 날에는 남은 미련까지 모두 떨쳐버리란 건가 싶고. 녹슨 고드름처럼 아래로 뻗은 송곳니로 으르렁거리던 들개의 아가리인가도 싶고. 늘 그렇듯 앞차의 꽁무니만 보고 달리다 어젯밤 안개는 그마저도 희미했음을, 그래서 점괘를 살피듯 실눈을 뜨고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양손으로 힘주어 잡은 핸들에는 차가운 날씨에도 땀이 묻어났음을. 볼 수 있는 것이 이토록 작고 보잘것없는데 현재도 아니라 먼 미래를 보려고 하니 힘들고 불안할밖에. 해야 하는 일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야 한다고, 불가능에 대해 핏발 선 눈으로 쏘아보다가 칼날 같은 바닷바람 앞에서 몸의 떨림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느닷없이 찾아오던 자유. 이런 날씨라면. 이런 바람이라면. 이런 조건이라면. 해내지 못했다고 비난할 수 없지 않을까. 정말 할 수 없었냐고 되물을 수 없지 않을까. 그때 나를 향해 흔들던 수많은 단풍잎들이, 아이손 같아서. 눈치와 착각의 퍼레이드 같아서. 하지만 또 거기가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 같아서. 오늘도 풍덩. 아무렇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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