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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은정 Jul 09. 2020

팬덤을 가질 (브랜드의) 자격

아이돌 팬덤에서 배우는 브랜드 팬덤

“아직도 철이 없구나, 연예인 팬질은 10대때 끝내는거 아냐?”


이십대 중후반에 시작해 사십대를 지나서까지 팬질로 바쁜 나를 보며, 사람들은 신기해하거나 혀를 끌끌 찼다. 우습고 실없이 보이니, 티내지 말고 마음속으로만 좋아하라는 말도 들어봤다.


모두 나를 위해서 해주는 말이었으리라. 다만, ‘수퍼 솔직’한 나는 도저히 팬심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가 얼마나 훌륭한 가수인지 세상에 알리는 것이 내 삶의 이유 중 하나라고까지 여겼다.


그런데, 이제 나는 더 이상 별종이 아니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이후, 나보다 훨씬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마음 속에 한 명씩 연예인을 품고 사는 세상이 도래했다. 자식에게 콘서트 티켓팅을 요구하는 것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세상.


인기가 있기에 팬덤이 생기는 시대를 넘어, 팬덤이 있기에 인기가 유지되는 시대다. 아무리 인지도가 높아도 팬덤이 작다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 팬덤문화는 브랜드로 확장됐다.

특정한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연대. 연대는 곧 힘이기에, 연대가 커질수록 힘도 커진다. 그래서 이 시대 핫한 브랜드라 자부하기 위해서는 꼭 팬덤이 있어야 한다. 모든 브랜드가 나이키처럼, 애플처럼, 룰루레몬처럼 충성심 높은 팬덤을 꿈꾼다.


그렇지만, 노력하면 모든 브랜드들이 팬덤을 가질 수 있는걸까? 팬덤이 없는 브랜드는 노력이 부족한 걸까?


수많은 브랜드 팬덤들과 그들의 활동을 기준으로 감히 단언하건데, 브랜드 중에는 팬덤을 가질 수 없게 태어난 것들도 많다. 노력 정도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근원적인 조건 때문에.


그렇다면, 팬덤을 가질 수 있는 브랜드의 자격이란 과연 무엇일까?


첫째, 선택의 설렘과 기쁨

나는 지금 마이크로워드의 프로그램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팩트체크를 위해 네이버를 켜 놓았다. SK텔레콤이 나를 세상과 연결해준다. 의식하지도 못한 채 마이크로소프트, 네이버, SK텔레콤이라는 파워브랜드들과 함께 한다. 내 의지로 선택했지만 딱히 이 브랜드로 인해 기쁘거나 설렜던 기억은 없다.


이런 것들은 소금 같은 브랜드들이다. 일상 속에 완전히 녹아 들어 우리 삶을 움직이는 위대한 브랜드들이지만, 함께한다고 의식하지 못하는 브랜드들. 이런 브랜드들에게 팬덤이 만들어지기 힘들다.


소금은 어느 음식에나 꼭 필요한 식재료지만, 일생에 몇 번 먹기 힘든 푸아그라보다도 매니아가 없다. 누가 음식을 먹으면서 소금맛을 음미하겠는가? 갖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고, 손에 넣었을 때 설렘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첫번째 조건이다.


둘째, 그들만의 결

놀면뭐하니에 싹쓰리(유두레곤, 린다지, 비룡)가 혼성그룹을 결성하고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동안의 혼성그룹 역사를 들추며 누구누구 이후 오랜만에 힛트한 혼성그룹이라고 야단이다. 그동안 왜 혼성그룹들은 성공하지 못했었는가?


드림콘서트나 공개방송에 가면 같은 팬덤들끼리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슬로건을 손에 들고 있지 않아도 어느 팬덤인지 대충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고, 함께 하다보면 그 결이 더욱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결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팬덤을 이루어야 오래갈 수 있다. (혼성그룹의 팬덤이 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취향이든, 철학이든, 스타일이든, 퍼스널리티든…. 뭔가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그들만의 결’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이 남들에게 드러내기 매력적이어야 한다.


왜 이솝은 팬덤이 있는데 올레이는 팬덤이 없는가? 올레이는 전세계 사람들이 모두 사용하는 브랜드다. 모두를 위한 ‘결’이라는 것은, ‘결’이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왜 초바니에는 팬덤이 있는데 요플레에는 팬덤이 없는가? 초바니는 ‘진정성’이라는 결이 있지만, 요플레는 요거트외에 아무런 결이 없기 때문이다. ‘진정성’이라는 결로는 묶일 수 있지만 ‘요거트’라는 결로 누가 묶이고 싶겠는가?


왜 무지에는 팬덤이 있는데 다이소에는 팬덤이 없는가? ‘미니멀리즘’이라는 결로는 묶일 수 있지만, ‘저렴한 가격’이라는 결로는 묶일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브랜드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Brand has the Power to Change the World’.

내가 입사할 당시 우리 회사의 브랜드 미션이었다. 멋진 말이기는한데, 브랜드가 세상을 바꾼다는 게 무슨 뜻이지? 당시에는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후 20년, 구글, 아마존, 우버 등의 브랜드들은 스스로 세상의 룰을 바꾸고, 자신들이 바꾼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린 브랜드들, 안타깝지만 이런 지배자 브랜드들에게도 팬덤이 생기기 어렵다.


우리가 연대감을 느끼는 대상은 세상의 변화를 이끈 브랜드가 아닌, 개인적 삶의 변화를 이끈 브랜드들이다. 새로운 생활 방식이나 가치관을 소개하고 함께 해주는, 친구같은 브랜드들 말이다.


양장판 책들의 시대에 문고판 책의 시대를 연 펭귄덕에 사람들은 간편하게 독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레고는 노는 방법을 바꾸었다. 임파서블 버거는 채식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몰스킨덕에 디지털디바이스 시대에 일기 한 줄이라도 손으로 쓰게 되었다. 테슬라는 지구를 지키는 방법을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선택할 때의 설렘과 기쁨, 그들만의 결,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이 세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브랜드만이 팬덤을 보유할 자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4만명이 넘는 팬덤을 거느린 브롬톤은 딱 그런 브랜드들 중 하나다.


개인적 삶의 변화를 이끄는 브랜드, 브롬톤.


‘어떤 자전거를 사야 되는지를 따지기 전에,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미니벨로를 알았고,
브롬톰을 배우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브롬톤 라이프 스타일을 보고 듣습니다.
BWCK 영상을 보고 애들처럼 설렜습니다.
브롬톤을 샀을 뿐인데,
난데없이 70리터 이상의 배낭과
2Kg 이하의 텐트를 알아봅니다.
수도권 밖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제가
생소한 섬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제가 산 건 자전거가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브롬톤 잡지가 배송 왔네요.’
브롬톤 한국 커뮤니티 회원

가장 우아하게 접히는 자전거, 그래서 도시 생활에 최적화된 자전거인 브롬톤을 소유하게 되는 삼단계가 있다.


1단계. 욕망.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변하지 않은 완벽한 프레임, 완벽한 디자인의 브롬톤. 돈도 없으면서 사고 싶은 브롬톤 칼라를 검색한다. 접는 방법을 알려주는 유튜브도 찾아본다. 보면 볼수록 갖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다. 가성비 따위, 갖고 싶다는 마음 앞에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2단계. 감성 영접.

그리하여 기어코 브롬톤을 손에 넣고 만다. 그런데 이것은 또다른 시작일 뿐이다. 더럽게 비싼 안장, 핸들, 가방, 헬멧 등을 하나씩 장착하면서 브롬톤 감성으로 나 자신을 셋팅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브롬톤만의 감성, 즉 결은 분명히 있다. 브롬톤 커뮤니티의 글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도 ‘감성’이다.

심지어 브롬톤의 CEO 윌 버틀런 애덤스(Will Burtler-Adams)마저 ‘한국 사람들은 브롬톤을 너무 아껴요. 맨날 닦고 기름치고 하더군요.’라고 말할 정도다.


3단계.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브롬톤 커뮤니티에는 브롬톤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어떤 여행을 했는지에 대한 경험이 끊임없이 공유된다. 얼마나 튼튼하냐, 얼마나 빠르냐가 아니라 브롬톤으로 어떻게 생활이 달라졌는지를 이야기한다.


윌 버틀런 애덤스 (Will Butler-Adams)는 ‘사람들이 브롬톤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활 방식에 꼭 맞기 때문이다. 런던, 도쿄, 암스테르담 등의 도시에 살면서 자신의 작은 아파트나 식당, 버스 안에 갖고 들어갈 수 있는 자전거를 원하는 사람이 우리의 고객이다’라고 말한다.


‘브롬톤 구매’는, ‘브롬톤의 결에 매력을 느끼고 그 감성을 소유함’이다. 그리고 ‘브롬톤이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결의다. 그것이 가성비가 높지 않은 브롬톤의 거대한 팬덤을 만드는 힘이다.


이런 종족들이 모여서 여는 축제가 그 유명한 BWCK다. 이 축제의 참가자들은 정장 상의와 파자마 하의를 입고 브롬톤을 끌고 온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이 드레스코드에는 ‘브롬톤이 변화시키는 도시의 일상’이라는 메타포가 숨겨 있다. 정장 상의는 도시의 포멀한 일상, 편안한 하의는 브롬톤이 선사한 캐주얼한 일상을 상징한다.


브롬톤은 무엇인가? 자전거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브론톰 팬들이 열광하는 것은 브롬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다.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연대, 이것이 브롬톤이라는 팬덤의 핵심이다.


브랜드의 궁극적 목적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다.
물건을 사게하지 마라.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켜라.

Seth Go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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