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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은정 Jun 16. 2020

브랜드가 꾸는 꿈. 브랜드 세계관

아이돌 팬덤에서 브랜드 팬덤을 배우다

"태양계 외행성에서 지구로 날아온 초능력인들."


세계관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아이돌 그룹에 이식한 엑소의 이야기다. 엑소의 세계관은 하나의 단편소설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길고 정교하다. 그 소설의 주인공들은 당연히 엑소 멤버들이다. 엑소는 해와 달의 주기를 고려하여 신곡 발표 날짜를 결정할 정도로 세계관을 중시했다.


엑소의 세계관 이후, 데뷔하는 아이돌 그룹에게 세계관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되었다. 세계관을 알지 못하면 그 그룹을 충분히 이해하기가 어려워졌다.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일반인들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세계관에 기초한 온갖 상징들이 뮤직비디오를 채운다.


아이돌 그룹에게 세계관이라는 것이 왜 필요할까?


아이돌 그룹은 본질적으로 차별화되기 어렵다. 다섯 명에서 열명 정도의 꽃 같은 멤버들이,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춤을 추고 비슷한 노래를 한다. 보이그룹들은 보이그룹들대로, 걸그룹 들은 걸그룹대로 머글들의 눈에는 다 똑같다.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인 아이돌 그룹. 모든 브랜드는 존재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아이돌 그룹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아이돌에게 있어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는 방법은 그들만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그 매력은 다른 그룹들과 달라야 할 뿐 아니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아이돌 그룹에게 세계관이 필요한 이유다. 그저 다른 그룹들보다 미모가 뛰어나고,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차별화된 매력과 일관된 정체성을 어필할 수가 없다.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은 그 아이돌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각각 멤버들의 설정값이 어떠한지, 어떻게 발전되어 갈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들의 음악활동은 이러한 세계관을 발전시켜 가는 과정이다. 발전되고 확장되지 않는 세계관은 실패한 세계관이다.


아이돌이란 기본적으로 엔터테인먼트이기에 그 세계관도 팬타지에 기초했다.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이지만 그들은 판타지 안에서 천사나 외계인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관을 팬들은 엔터테인먼트라는 범주안에서 수용했다.


그러나 BTS의 성공은 이제 판타지스러운 세계관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우친다. BTS의 세계관은 확장과 발전을 거듭했기 때문에 한마디로 분명하게 규정하기 어렵다. 아미들이 BTS의 세계관을 교육하는 콘텐츠까지 제작할 정도다. 그래도 그들의 세계관을 가장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은 ‘화양연화’와 ‘Love Yourself’라는 메시지일 게다.


BTS 세계관에 등장하는 7명의 멤버들은 모두 어려움과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한 단면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처럼 아름다운 너 자신을 사랑해라라는 메시지는 국경을 넘어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다른 아이돌들의 세계관이 판타지에 기반해 스토리를 확장해 나가는 역할이었다면, 드디어 BTS의 세계관은 팬들이 그들을 지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제 브랜딩의 세계에도 세계관이 접목되었다. 원래 세계관이라는 말은 게임 또는 마블 영화에서 유래한 것. 이러한 세계관에 영향을 받아 약간은 판타지적인 세계관을 만든 브랜드들도 있었다.


그러나 진짜가 아닌 것은 모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이 바랜다.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고 그 가치가 더해지는 것은 진짜 뿐이다. 판타지에 기초한 세계관을 가진 아이돌들이 스타가 된 후 자신들의 세계관을 부끄러워하는 이유도 진짜가 섞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브랜드에게 있어 세계관은 무엇인가?


내가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는 무엇인가? 나는 그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이 것이 브랜드의 세계관이다. 브랜딩이란 이상적인 세계를 향해 변화를 만들어가는 이야기, 즉 자신의 꿈을 완성해가는 이야기다.


브랜드의 역할이 중심이 되던 시대와 브랜드의 철학이 중심이 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브랜드의 꿈이 브랜드의 중심이 된다. 온 세상이 5G로 엮이는 지금, 어디까지가 콘셉트이고 어디부터가 실재인지 구분할 수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므로, 가장 힙한 브랜드는 가장 힙한 꿈을 꾸는 브랜드다. 가장 멋진 브랜드는 가장 멋진 꿈을 꾸는 브랜드다.


나는 이에 대한 예시로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만큼 훌륭한 브랜드를 아직 찾지 못했다.


전기자동차, 유인우주선, 솔라시티, 하이퍼루프(도시 간 초고속 운송 시스템). 기존 자동차 회사들의 관점에서 이 사업들을 보면 그 연결점을 찾기 쉽지 않다. 그러나 테슬라의 관점으로 보면 결국 그 모든 사업들은 한 가지 꿈으로 연결된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세계의 전환을 가속시키겠다는 것’, 그들의 비전이다.


일론 머스크에게는 25년 전부터 늘 생각해온 5개의 아젠다가 있었다. 다중 행성(Multi-planetary),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 인터넷을 통한 광역 커뮤니케이션, 유전학, AI가 그것이다. 그래서, 테슬라에게 전기차는 가솔린차의 반대가 아니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광역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AI 사이보그다. 또한 스페이스 X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화성 식민지의 에너지원이다. 5개 아젠다를 실현하기 위한 플랫폼이다. ‘어떻게 자동차를 만들까?’가 아닌 ‘어떻게 5개의 아젠다를 구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테슬라의 시작이었다.


일론 머스크를 미디어에 능한 괴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는 이를 오해라고 해명한다. 사람들은 기술이 저절로 진보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똑똑한 사람들이 미친 듯이 노력해야 한다고, 그리고 자신 역시 그런 기술자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의 성공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았다. 스페이스 X가 성공할 확률은 10% 미만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이 일을 하는가?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공을 앞으로 옮겨놓으면 그 뒤를 이어 누군가가 또 그 공을 앞으로 옮기겠죠. 이것이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입니다.’


테슬라의 존재 이유는 전기 자동차의 대중화가 아니다. 2050년에 100만 명의 사람들을 화성에 입주시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 변환으로 세상을 더 유용(useful)하게 하는 것. 이것이 테슬라의 꿈이며, 세계관이다. 테슬라의 모든 비즈니스는 그 꿈, 그가 믿는 이상적 세계를 만들어가 가는 과정이다. 전기자동차도, 유인 왕복우주선도.


“세상을 바꿀 필요는 없다. 단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세상이 더 유익(useful) 해지는 거다. 이 목적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테슬라, 이 이름은 에디슨과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전기 과학자 테슬라에서 따왔다. 과학자 테슬라는 모든 인류가 에너지의 가치를 함께 누려야 한다고 믿었기에 자신의 발명품에 특허를 내지 않았다. 전 세계에 무료로 전기를 공급할 프로젝트인 워든 클리프도 실행에 옮겼었다.


테슬라는 과학자 테슬라로부터 단지 이름만을 따온 것이 아니다. 기술의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테슬라가 가진 모든 특허기술들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왜? 테슬라가 꿈꾸는 세계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전환된 세계고, 기존 산업계를 포함한 많은 기술자들이 그 꿈에 동참하기를 원하니까. 그래서 그 세계가 조금이라도 빨리 구현되기를 원하니까.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브랜드가 꾸는 꿈, 브랜드 세계관.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 과정, 브랜딩. 왜 브랜드의 세계관이 이 시대의 브랜드에게 필요한지 테슬라는 너무나도 멋지게 그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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