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기자의 연예수첩 69
얼마 전 설 연휴 특집으로 TV에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방송됐다. 전설의 남성 4인조 록밴드 퀸, 그중에서도 팀의 프런트맨이자 보컬이었던 고(故) 프레디 머큐리의 굵고 짧은 생애를 다룬 이 영화는 3년 전 국내 극장 개봉 당시 1000만 관객 가까이 동원했다. 한국에서의 흥행 성공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드러머 로저 테일러가 감사 인사를 보내왔을 정도다.
메가 히트작답게 안방극장에서의 시청 열기도 무척 뜨거웠다. 여러 설 특선 영화들 가운데 유일하게 시청률 4%를 돌파하며 이름값을 과시했다.
그런데 문제는 예상하지 못했던 대목에서, 아니 어쩌면 충분히 예상했던 대목에서 터졌다. 방송사인 SBS가 극 중 머큐리와 매니저의 동성 키스신을 삭제한 걸 두고 이런저런 잡음이 불거진 것이다.
퀸의 객원보컬이자 머큐리처럼 동성애자인 애덤 램버트를 비롯해 국내외 성 소수자 인권 단체가 SBS의 삭제 조치를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SBS는 "동성애를 반대할 의도는 아니었다"면서도 "지상파로서 심의 규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또 방송 시간대가 가족 동반 시청률이 높아 15세 관람가였다"라고 편집의 불가피성을 호소했다.
이 소동을 지켜보면서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일 년 늦게 공개됐던 '로켓맨'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퀸에 버금가는 거물 아티스트 엘튼 존의 삶을 그린 영화인데, 여러모로 '보헤미안 랩소디'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아 2019년 6월 칼럼으로 두 편을 비교한 적이 있다.
영화 '로켓맨'과 '보헤미안 랩소디'는 1970년대 전 세계 대중음악계를 호령했던 두 천재 아티스트 엘튼 존과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각각 그렸다는 점에서 일견 비슷하다.
주인공들 모두 영국 출신으로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 개명해 혈연의 울타리를 벗어나 살았거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로선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성(性) 소수자였고, 사치스럽고 방탕했던 사생활 탓에 같은 시대 활동했던 펑크(Punk) 뮤지션들의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는 점이 흡사하다.
그러므로 영화를 관람하고 난 느낌 혹은 잔상도 비슷할 듯싶지만 그건 아니다. '왜 그렇지...' 궁금증이 일 수밖에 없다.
우선 인물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가 다르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제삼자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약간의 드라마적 허구를 가미해 머큐리의 삶을 재현하려 애썼다면, '로켓맨'은 엘튼 존이 본인의 입으로 본인의 인생을 투덜투덜 때로는 위악적으로 되돌아보는 방백에 가깝다.
이야기를 담아내는 '틀', 즉 형식도 판이하다. '로켓맨'은 뮤지컬이다. 그것도 판타지적 요소를 듬뿍 가미한 뮤지컬이다. '킹스맨' 시리즈의 태런 애저튼이 엘튼 존으로 변신했으나,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남겨둔 외모와 음색으로 엘튼 존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해석한다.
반면, '보헤미안 랩소디'는 전형적인 한 인물의 연대기다. 머큐리의 그 시절 그 모습 그 목소리를 고스란히 되살려내는데 열중한다. 머큐리를 열연해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라미 말렉은 실제로 노래하지 않는다. 판박이처럼 똑같은 얼굴과 체형으로 립싱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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