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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Feb 25. 2021

닮은 듯 전혀 다른 '로켓맨'과 '보헤미안 랩소디'2

조 기자의 연예수첩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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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다른 점 때문일까. '보헤미안 랩소디'는 추억을 소환하지만, '로켓맨'은 추억을 만들어주려 한다. 

또 '보헤미안 랩소디'는 극장 안을 공연장으로 바꿔놓는 집단 경험의 쾌감을 안겨주는데 반해, '로켓맨'은 그렇지 않다.


왜? '보헤미안 랩소디'만큼 귀에 익은 삽입곡이 많지 않아서? 천만의 말씀! 퀸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따라 불렀던 40~50대라면 전주만 듣고도 흥얼거릴 노래가 '유어 송'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 '소리 심스 투 비 하디스트 워드' 등 '로켓맨'에도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로켓맨'은 관객을 확 끌어당기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주인공에 대한 내재적 접근이 다소 과해 스크린 바깥의 이들을 지나치게 타자화시키는 경향이 강해서다.


다시 말해 '보헤미안 랩소디'는 소박한 기교와 극 중 인물과의 적당한 거리 두기로 관객들의 몰입을 오히려 유도한다면, '로켓맨'은 비교적 뛰어난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내면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려 한 바람에 관객과의 합일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족으로 하나 더. "갖은 역경을 딛고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는 식의 에필로그가 안 그래도 뭔가 허전한 마음을 더욱 허전하게 만든다.


이처럼 '로켓맨'은 매끈한 완성도가 흥행 성공을 반드시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관객들의 가슴을 때리는 '킥' 없이는 제 아무리 화려한 기교도 무용지물이란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위의 칼럼은 비슷한 구석이 많은 두 편의 영화가 왜 전혀 다른 흥행 성적을 거뒀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한 마디로 훌륭한 완성도가 흥행 성공을 반드시 보장하진 않는다는 걸 '로켓맨'을 통해 말하려 했다.


물론 그렇다고 '보헤미안 랩소디'의 만듦새가 그저 그렇다는 건 절대 아니므로 오해 마시길. '유주얼 서스펙트'와 '엑스맨' 시리즈로 잘 알려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무난한(?) 세공술이 돋보이는데, 다양한 연령대의 대중이 두루 무난하게 좋아할 만한 수준으로 연출하는 것도 대단한 재주인 만큼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어가야 한다.


참고로 싱어 감독은 미성년자 소년들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보헤미안 랩소디' 촬영 종료를 2주 남기고 투자 배급사인 20세기 폭스로부터 해고당했다. 덱스터 플레처 감독이 대신 지휘봉을 잡아 마무리를 주도했다. 원칙대로라면 플레처 감독은 연출자로 올라가야 하지만, 제작자의 고집으로 싱어 감독이 계속 남아있게 됐다. 덕분에 싱어 감독은 흥행 대박에 따른 어마 무시한 액수의 보너스를 모두 챙겼다는 후문이다.


재미난 점은 플레처 감독이 '보헤미안 랩소디'의 성공을 재현할 것으로 여겨졌던 '로켓맨'의 메가폰까지 연이어 잡아 전작에서 놓쳤던 보너스를 챙길 줄 알았지만, 흥행 실패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참, 사람 일이란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다.


어찌 됐든 둘 다 영국 출신에 머큐리는 1946년생, 엘튼 존은 47년생으로 나이도 동년배이고 무엇보다 성적(性的) 지향마저도 같은 이들의 생애를 그렸음에도 두 편의 흥행 결과는 전혀 달랐다. 이 같은 결과는 관객들의 선택이 미묘한 지점에서 엇갈렸다는 걸 뜻하는데, 참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게 바로 대중의 속내란 오랜 진리를 잘 설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 글의 도입부에서 얘기했던 대로 '보헤미안 랩소디'의 동성 키스 장면 삭제를 둘러싼 논란도, 퀴어 축제를 바라보는 몇몇 서울시장 예비 후보들의 정반대 시각도 비슷한 맥락이다. 좋다 싫다의 취향으로 혹은 옳다 그르다의 판단 여부로 접근해야 할지 너무 많은 말들이 쏟아지고 있어 정신이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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