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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Mar 05. 2021

닮은 듯 전혀 다른 '로켓맨'과 '보헤미안 랩소디'3

조 기자의 연예수첩 71


굳이 두 서울시장 예비후보의 이름과 소속 정당은 밝히지 않겠다. 꽤 여러 해전부터 꾸준히 '퀴어 축제'를 찾아 '열린 사고'의 소유자란 걸 수시로 강조하고 있는 한쪽이 TV 토론에서 다른 한쪽에게 "퀴어 축제에 가 볼 생각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다른 한쪽은 "그 같은 축제를 거부할 권리도 인정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뒤, 세계 각국의 퀴어 축제를 사례로 설명하던 중 사실과 다른 내용을 주장해 약간의 논란을 일으켰다. 자신의 지지층을 겨냥한 질문과 대답이었는데, 이들 모두 진심을 담아내기보다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계산 결과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보기에 다소 불편했다.

20년도 더 된 일이다. 언론사 입사 스터디 모임으로 알게 된 A가 얼굴이나 보자며 연락해 왔다. 서너 살 아래의 미국 유학생이었던 A는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한국의 언론사 입사 준비 과정이 궁금해 스터디 모임에 지원했다. 멤버들의 취직으로 스터디 모임이 자연스럽게 해산된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학업을 재개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방학을 맞아 돌아온 것이었다.


당시 초년병 기자로 정신없이 바빴지만 흔쾌히 날을 잡았다. 반가움이 우선이었겠으나, 실은 기자가 됐다는 걸 은근히 뽐내고 싶은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먼저 사회인이 된 선배가 아직 학생인 후배 앞에서 거들먹거리고 싶은, 뭐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술을 먹을지도 모르는 자리였음에도 월급으로 장만한 차까지 몰고 나갔다. 역시 자랑하고 싶은 속내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다행히 술 대신 커피로 2차를 즐기는 자리였다. A는 자신이 살고 있는 뉴욕으로의 여름휴가를 제안했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미국, 그중에서도 뉴욕! 뉴욕을 뉴요커의 안내로 샅샅이 돌아볼 수 있다니 고민하고 말고가 없었다. 냉큼 제안을 받아들이자 "형이 당연히 허락할 줄 알고, 미리 짜 봤다"며 이를테면 둘째 날 아침은 허드슨강 유역의 어느 어느 카페에서 먹고 식의 아주 자세한 일정을 들려줬다. 


자리를 마치고 나와서도 여전히 대견스러웠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연신 A의 어깨를 토닥이며 "너 덕분에 촌놈이 뉴욕 구경 제대로 하게 생겼다"를 연발했다. 그때마다 A는 "형, 제 마음 아시죠?"로 화답했는데, 어느 순간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 가던 길을 멈췄다.


상대와 눈이 마주쳤을 때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등에 소름이 돋았다. 벤치에 잠깐 앉자고 한 뒤 심호흡부터 하고 조용히 물었다. "형한테 솔직히 얘기해볼래. 너 바이냐? 게이냐?" 여기서 바이는 바이섹슈얼(bisexual)로 양성애자를, 게이(gay)는 남성 동성애자를 각각 의미한다.


A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바이입니다"라고 들릴 듯 말 듯 답했다. 당혹스러운 감정에 왠지 모를 화마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결론부터 밝히면 형은 바이도, 게이도 아니야. 여자를 좋아해도 너~~무 좋아해"라며 못을 박은 뒤 "너희 쪽은 비슷한 성향한테만 커밍아웃하지 않니? 나도 그렇게 보인 거야?"라고 조금은 다그치듯 말했다. 그러자 A는 "형이 여자친구도 없고... 또 (제게) 너무 잘해주셔서... 무엇보다 저와 비슷하길 원해서 말씀드렸어요"라며 울먹였다. 


다 큰 남자 둘이 벤치에 앉아, 한 명은 담배만 뻑뻑 피고 다른 한 명은 훌쩍이던 모습을 지나가던 누가 봤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연신 고개를 숙이며 "형 미안해요"를 반복하는 A에게 "무슨 죄도 아닌데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며 달래기 바빴다. 그렇게 그날의 소동 아닌 소동은 비교적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정작 웃기는 일은 나중에 벌어졌다. 집에 들어와 거실에 앉아있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오늘 프러포즈를 받았다. 남자한테!"라고 자랑삼아 너스레를 떨자, 도끼눈을 한 아버지로부터 "저 X의 XX가 하다 하다 이젠 별 짓을 다한다"는 꾸지람과 함께 슬리퍼 한 짝이 시속 100km로 날아왔다. 참고로 아버지는 그때 당신의 막내아들이 진짜로 남자한테 사랑 고백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3년 전 돌아가셨다.


그날 이후 '정치적 올바름'에 자신이 없어졌다. 머리로는 받아들이는 척하고 있었지만, 가슴으론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후배의 커밍 아웃을 접하고도 이 정도였는데, 당사자가 만약 가족 가운데 한 명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배운(?) 사람답게 겉으론 "틀린 게 아냐. 다른 거지"라며 덤덤하게 받아들이면서도, '하필 왜?'라는 생각에 매우 힘들어했을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로부터 '성적 소수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십니까?' 등과 같은 질문을 받으면 '그렇다'라고 선뜻 답하기 힘들다. 그들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고 단언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많아서다. 대신 '그렇게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중'이라고 답할 듯싶다.


타인을 100% 이해하기란 정말 어렵다. 아니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진심을 다해 이해하려 애쓸 뿐이다.

문제는 진심이다. 당장 이해하고 말고 또 공감하고 말고는 정작 중요하지 않다. 진심의 유무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따라서  "퀴어 축제에 가보셨느냐"는 질문과 "퀴어 축제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답변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만약 진심이 느껴졌다면 후자의 답변은 오히려 크게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반대로 느껴지지 않았다면 전자의 질문은 정략적 판단에 바탕을 둔, 정치적 올바름을 세련되게 과시하기 위한 포장으로 지적받아 마땅하다. 그 진심이 구체적으로 콕 집어 뭐냐고 따져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모두가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외면하거나 이해하고 있는 시늉만 내고 있는 와중에, 얼마 전 또 한 명의 성적 소수자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타고 난 성(性)은 수술로 달라졌지만, 군복은 계속 입고 싶어 했던 전직 하사관이었다. 


애도는 하면서도 "성 소수자들의 복무 여부에 대해 (여전히) 논의는 없다"라며 딱 잘라 선을 그은 군 당국자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고인의 손을 잡고 "너와 너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들의 주장을 아직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앞으론 이해하려 정말 노력하겠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라고 진심을 전했다면 어땠을까.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겨있는 언행이 갈수록 소중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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