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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Mar 08. 2021

칸은 왜? 완고한 그들, 변화에 동참할까1

조 기자의 연예수첩 72

홍상수 감독이 조용히, 또 일을 냈다. 지난주 막 내린 제7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이하 베를린)에서 '인트로덕션'으로 장편 경쟁 부문 각본상(은곰상)을 거머쥐었다. 지난해 '도망친 여자'로 감독상을 받은 데 이어, 2년 연속 주요 부문 수상이다.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일과 사랑의 동반자인 김민희가 챙긴 여우주연상까지 포함하면 트로피는 3개로 늘어난다. 2008년 '밤과 낮'부터 '인트로덕션'까지 장편 경쟁 부문에 모두 5차례 초청받았으므로, 무려 60%라는 놀라운 수상 확률을 기록한 셈이다. 


홍 감독은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영화계가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아시아의 영화작가들 가운데 한 명이다. 한국에서 연배상 위로는 임권택 감독과 이창동 감독이, 또래로는 박찬욱 감독과 고(故) 김기덕 감독이 각각 비슷한 대접을 받고 있다. 


또 아래로는 봉준호 감독과 나홍진 감독 등이 대표적인데, '기생충'으로 칸 국제영화제(이하 칸)와 아카데미를 내리 석권하며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거장으로 우뚝 선 봉 감독은 이 대열에서 슬그머니(?) 제외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고령의 임 감독과 지난해 사망한 김 감독을 제외하고 이들 대부분은 짧아도 2년, 길면 5~6년에 한 편씩 장편을 내놓고 있다. 반면 홍 감독은 2000년대 중반부터 매해 1~2편씩, 많게는 3편까지 쉬지 않고 선보이고 있다. 작품 거의 모두가 초 저예산인 점을 감안해도 놀라운 수준의 다작이다.


사생활로 인한 논란과 흥행 수입을 기대할 수 없는 국내 상영 여건에도 홍 감독이 이처럼 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이유는 앞서 밝힌 대로 칸과 베를린 그리고 이탈리아의 베니스 국제영화제를 묶어 '세계 3대 영화제'로 상징되는 유럽 영화계의 융숭한 대접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 3대 영화제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홍 감독처럼 자신들이 아끼고 발굴한 작가일수록 신작을 가장 먼저 공개하고 마켓 판매를 통해 제작비 마련을 주선하는 등의 방법으로 물심양면 작품 활동을 돕는다는 점이 비슷하다. OTT의 득세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조금씩 달라지곤 있지만, 변화 대신 전통을 중시하는 것도 똑같다.


2018년 5월 '칸은 왜?'라는 제목으로 4회에 걸쳐 칸의 오랜 특징 및 칸과 한국영화의 향후 갈 길을 주마간산 식으로 다뤘다. 칸과 베를린을 취재진과 영화 수입사 직원 자격으로 서너 차례 오가며 느낀 점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칸을 주로 얘기했지만, 세계 3대 영화제에 두루 해당되는 내용이다.


칸 국제영화제를 처음 취재하러 출장 가는 동료 또는 후배들에게 몇 번 다녀왔답시고 건네는 조언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생각하지 마라. 그들에게 친절을 기대하지 마라"다.


먼저 "부산국제영화제를 생각하지 마라"는 얘기는 일반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프레스 프렌들리'를 중시 여기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전혀 다르다는 걸 의미한다.


칸은 오로지 영화인, 그것도 자신들이 선택한 소수의 영화인만을 위한 축제다. 영화제 기간 중 일반 관객들이 초청작을 감상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입장권을 구할 수 없는 일반 관객들은 레드카펫 위 고고한 자태의 영화인들을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봐야만 한다.


취재진에게도 친절하지도 않다. 일례로 턱시도와 드레스로 상징되는 공식 스크리닝(시사회)의 드레스 코드는 기자들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행사가 열리기 직전 사진기자들이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화장실로 뛰어가 허겁지겁 정장으로 갈아입는 모습은 기자들이라고 절대로 봐주지 않는 주최 측의 예외 없는 원칙을 잘 설명한다.


칸의 완고한 '성품'은 올해 더 심해졌다. 레드카펫 위에서 셀카 촬영을 금지하고, 프레스 스크리닝을 폐지했다. 셀카 촬영이 레드카펫 행상의 엄숙한 분위기를 해치고, 공식 스크리닝에 앞서 마련되는 프레스 스크리닝으로 인해 관람 평이 미리 새어나가는 걸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미투 운동과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지금,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수 십 년째 유럽을 떠 돌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몇 년 전 나치 찬양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을 각각 지난해와 올해 초청한 것도 시대의 흐름과 정 반대다.


또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장편 경쟁 부문에 올랐던 지난해와 달리, 자국 극장 산업을 의식해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들의 출품을 금지한 결정 역시 변화의 물결에 선뜻 동참하기 꺼려하는 그들의 속내를 드러낸다.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칸의 이 같은 '고집'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다음 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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