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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Mar 11. 2021

칸은 왜? 라스 폰 트리에를 끔찍하게 챙기는이유2

조 기자의 연예수첩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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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예술로서의 영화' 주도권만큼은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절박한 심정일 것이다. '산업으로서의 영화' 주도권은 할리우드에 내 준지 오래됐으나,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으로 상징되는 영화 종주국의 자존심은 지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미지수다. 당장 지난해부터 칸을 찾은 영화인들의 화두는 할리우드의 신(新) 메이저 스튜디오로 떠 오른 넷플릭스 아마존과 어떻게 손잡을 것인가였다. 영화인들 대부분은 온라인에 기반을 둔 이들의 무차별적 자본 공세에 칸도 결국 백기 투항할 것으로 내다봤다.


장편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인 케이트 블란쳇을 비롯한 82명의 전 세계 여성 영화인이 영화제 주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 계단에 모여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더 많은 여성 영화인들의 합류를 응원하는 움직임을 보인 광경 역시 칸의 '자의 반 타의 반' 변화를 감지하게 한다.


여기서 82명이란 지난해 열린 70회까지 뤼미에르 극장 계단을 밟았던 여성 영화인의 숫자, 그 정도로 칸이 여성 영화인들을 푸대접했다는 걸 의미한다.


산업이 아닌 예술로서의 영화를 고집하고, 자신들의 '죄 많은' 적자를 감싸 안으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듯한 칸의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 낡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전통과 가치, 가까이하고 싶지 않지만 결코 멀리할 수 없는 미래 사이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장편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던 2017년이 마지막으로 칸을 찾았던 해다. 그해 칸에서는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같은 OTT 업체를 자신들의 동반자로 받아들일지가 주된 얘깃거리였다.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을 댄 '옥자'와 또 다른 장편 경쟁 부문 초청작 '더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가 발단이었다. OTT용 영화를 달가워하지 않은 현지 극장협회가 거세게 반발하자, 티에리 프리모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앞으론 OTT용 영화를 경쟁 부문에 초청하지 않겠다"며 달랬다. 결과는 어땠을까? 


칸은 OTT용 영화의 장편 경쟁 부문 배제 방침을 여전히 고수 중이다. 넷플릭스 역시 "들러리는 되지 않겠다"며 보이콧 방침을 밝혔으므로 냉전이라 보는 게 맞겠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넷플릭스에 문호를 활짝 연 베니스를 시작으로 칸과 베를린도 OTT에 백기를 들 날이 멀지 않은 모양새다. 영화제의 부대행사로 돈줄이나 다름없는 마켓에서 OTT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례로 넷플릭스는 올해 제7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부대행사인 유럽필름마켓에서 달랑(?) 영화 3편의 상영 판권을 구입하는데 무려 1000억여 원의 돈보따리를 풀었다. 이 같은 움직임은 5~6년 전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는데, 그때 이미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이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마켓의 영화들을 모두 쓸어가는 통에 군소 바이어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했다. 따라서 행사 수익의 상당 부분을 마켓에서 충당하는 영화제 특성상, 칸이 앞으로도 계속 경쟁 부문에서 OTT 업체를 배제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칸으로 상징되는 유럽 영화계가 자신들의 명성을 유지하고 변화의 흐름에 맞서는 또 다른 방법으로 얼마나 특정 감독을 편애하는지 알아보겠다.


가장 사랑하는 자식인데, 가끔 집에 올 때마다 어김없이 사고를 친다. 그것도 대형사고!


덴마크 출신 '문제적 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그의 신작 '더 하우스 댓 잭 빌트'가 15일(현지시간) 프레스 스크리닝에서 관객 100여 명이 상영 도중 퇴장하는 소동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주인공 잭(맷 딜런)이 연쇄살인마로 변하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유지태의 카메오 출연으로도 제작 전 화제를 모았다.


칸 시사회에서 관객들이 야유하고 중간에 자리를 자리를 일어서는 광경은 우리나라와 달리 흔한 편이다. 시간을 쪼개가며 많은 영화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후지다' 싶은 작품은 과감하게 외면한다.


그럼에도 100여 명이 집단으로 퇴장한 것은 비교적 이례적이다. '표현 수위가 얼마나 높았으면 그랬을까'란 호기심마저 든다.


상영 후 현지 외신은 입을 모아 "토할 것 같고 한심하다" "아동을 살해하는 장면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런 영화는 만들어져선 안된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그가 2011년 '멜랑콜리아'로 초청됐을 당시, 거의 횡설수설에 가까웠던 나치 옹호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킨 지 7년 만에 다시 온다고 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기도 하다.


또 지난해에는 '어둠속의 댄서' 주연이었던 가수 겸 배우 뷔요크가 촬영 당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폭로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라고 이 와중에 그가 갑자기 얌전한 감독으로 바뀌어 돌아올 것이라곤 누구도 믿지 않았다.


이처럼 부르기만 하면 사고를 치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을 칸은 왜 애지중지할까.


다음 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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