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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Mar 15. 2021

칸은 왜? 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니다3

조 기자의 연예수첩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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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마디로 칸이 발굴하고 키운 적자 중의 적자, 성골 중의 성골이다. 가끔 부름을 받는 6두품과는 격이 다른 신분이다.


그래서인지 장편 경쟁 부문에 진출하면 빈 손으로 돌아가는 법이 거의 없다. 1996년 '브레이킹 더 웨이브'로 심사위원 대상을, 2000년 '어둠속의 댄서'로 황금종려상을 차례로 거머쥐는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이처럼 신분(?)도 남다른데, 연극과 영화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도그빌') 파격적인 표현 방식과 사회적 금기('브레이킹 더 웨이브' '안티크라이스트')를 가뿐하게 뛰어넘는 도발적 스토리 전개로 새로운 영화 조류를 선도하고 이슈 메이커로서의 역할까지 톡톡히 한다.


산업이 아닌 '예술로서의 영화'를 주창하고 지향하는 칸으로선 그가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자식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칸의 이 같은 '자식 사랑'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작품 본연의 완성도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작품을 대하는 창작자의 윤리적 태도를 중시 여기는 요즘 추세로 볼 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칸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계속해서 이끌어낼지는 미지수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신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배제 및 여성 영화인들에 대한 무관심 등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에 직면한 칸의 골칫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영화 만들기의 신(神)이 아닌 이상, 손대는 작품마다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제 아무리 잘난 영화감독일지라도 필모그래피의 '높낮이'는 있기 마련이다. 여기에 언제나 새로운 걸 찾는 대중의 변화무쌍한 취향까지 더해지면, 거장으로 추앙받던 영화감독이 한순간에 그저 그런 영화 기술자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대표적인 예다.


그의 신작 '더 하우스 댓 잭 빌트'가 제71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외신을 접하고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이듬해 '살인마 잭의 집'이란 제목으로 다행히(?) 국내에서 개봉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상영이 끝나고 든 생각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극 중 인질 역으로 카메오 출연한 유지태의 손을 꼭 붙잡고 "왜 출연했어..."라며 위로라도 건네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마디로 감상평 소개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큼, 명성만 남은 영화감독이 무너져가는 커리어를 붙잡기 위해 몸부림친 괴작(怪作)이자 졸작이었다. 칸이 도대체 왜 이 영화를 초청했는지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돌아서면 모를 수준이었다. 


아마도 칸으로서는 자신들의 오래전 선택이 옳았다는 걸 끝까지 증명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덴마크의 괴짜 천재 감독이 이대로 추락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면, 그건 지나치게 순수한 해석일 것이다. 돌아온 탕아의 복귀작으로 약간의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노렸던 건 아니었을까?


어찌 됐든 당시 라스 폰 트리에의 칸 귀환은 그의 예전 작품들을 좋아했던 평단과 관객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특정 영화작가에 대한 칸의 변함없는 지지가 역사와 전통을 사수하는 방식이 아닌, 명성 유지의 한 방편 내지는 소통불가의 고집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다는 걸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이쯤 되면 칸과 베를린 그리고 아카데미 같은 세계 유수의 영화 축제 혹은 영화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속마음이 궁금해진다. '기생충'이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연이어 받으면서 많이 느긋해졌지만, 수상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 이를테면 칸에서 그랑프리에 해당되는 황금종려상이면 올림픽의 금메달, 심사위원 대상이면 은메달 정도로 각각 바라보는 시각 말이다.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장편 경쟁 부문에서 '버닝'의 황금종려상 수상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현지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공식 스크리닝을 통해 공개되고 난 뒤 현지 평론가와 소식지의 격찬이 잇따르고 있어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에 성큼 다가섰다는 게 국내 매체 보도의 주 내용이다.


이 같은 현지 보도에 잔뜩(?) 고무됐는지 한 지상파 방송은 한 줄 자막 뉴스로 "'버닝' 칸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라"를 내보내기도 했다.


참고로 칸은 수상작(자)을 결정하기에 앞서 따로 후보를 추리지 않는다. 따라서 "후보로 평론가와 소식지에서 거론되고 있다"는 표현은 옳지만, "후보에 올랐다"는 표현은 원칙적으로 틀리다.


물론 여태까지 칸의 상 선정 방식을 봐도 '버닝'의 수상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있어 보인다.


연출자인 이창동 감독은 2007년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전도연)을, 2010년 '시'로 각본상을 각각 챙겼다.


단편 혹은 비경쟁 부문 초청으로 시작해 감독의 성장 여부를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확인한 뒤 괜찮다 싶으면 장편 경쟁 부문의 주요 상을 건네는 게 지금까지 칸이 대체로 지켜오던 방식이다.


감독 주간(2000년 '박하사탕')과 비평가 주간(2003년 '오아시스') 초청으로 출발했던 이 감독이 여우주연상과 각본상을 거쳤으므로, 이제는 황금종려상을 받을 차례라는 관측도 나름 설득력이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국내 영화팬들의 기대와 달리 현지 평론가와 소식지의 반응은 수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떤 영화에 혹은 누구에게 상을 주고 안 주고는 전적으로 심사위원단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음 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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