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기자의 연예수첩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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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일수록 영화 보는 눈은 비슷한 법. 그래서 심사위원단과 현지 평론가 및 소식지의 시각이 일치할 순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현지 평론가와 소식지의 낮은 평점을 받고서도, 보란 듯이 주요 부문의 상을 거머쥐고 훗날 명작으로 인정받는 사례는 허다하다
2003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을 때도 일부 현지 평론가와 소식지는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개인적 취향이 짙게 반영된 결과일 뿐이라고 입을 삐쭉댔지만, 시간이 흐른 뒤 '올드보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작으로 평가받게 됐다.
우리 영화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영화 축제에서 가장 큰 상을 최초로 받는다는 건, 아니 받을지도 모른다는 건 흐뭇한 일이다.
그러나 수상 여부를 점치는 데만 급급해 올림픽 메달 따기 식으로 현지 보도가 이뤄지는 건 어쩐지 촌스러워 보인다. 순위를 중시하는 스포츠에서도 요즘은 아름다운 참가에 의미를 두는 쪽으로 보는 시선이 바뀌고 있는데, 하물며 출품작 모두가 수상작이나 다름없는 축제의 한마당에서 우열을 따지는 모습은 세련돼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제2의 이창동' '제2의 박찬욱'이 나올 수 있도록 관객과 매체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 아닐까.
정말 다행인 건 세계적인 대중문화 축제에서의 수상 여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위의 글을 썼을 때와 비교해 또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받으면 좋지만 안 받아도 좋고' 식의 쿨한 태도로 달라진 듯하다. '라면 먹고 달렸더니 아시아 제패' 식의 인간 승리 내진 '지구촌 하늘에 태극기가 펄럭인다' 식의 국위 선양으로 접근하는 모양새는 이젠 정말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방탄소년단으로 대표되는 K팝 뮤지션들의 국경을 초월한 인기와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주요 4개 부문 석권으로 상징되는 한국영화의 세계적인 위상 강화가 한국 대중이 요즘처럼 바뀌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고 본다. 상을 쫓던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처지가 격상되면서, '빨리빨리!'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를 외치던 마음가짐도 여유로워지고 과정의 올바름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성과지상주의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를 고수하던 기성세대도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하는 듯한 모양새다. 칠십 대 중반인 윤여정이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연기상(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 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시상식은 별 의미가 없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성격의 내게 가장 큰 보상은 새로운 일과 프로젝트"라고 밝힌 게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스포츠로 비유하면, 국가대표 선발 및 육성과 국제대회 메달 획득에만 온 힘을 기울이던 '엘리트 체육'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심신을 단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 체육'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것과 같다. 정작 관객들은 시큰둥한데, 늘 같은 감독들이 늘 같은 영화제에서 늘 같은 상을 타고 늘 같은 영화계 관계자들만 축하하는 장면은 이젠 식상하다는 얘기다.
코트다쥐르(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의 대표적 휴양도시 칸을 뜨겁게 달군 영화 축제가 올해도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 19일(현지시간) 폐막된 제71회 칸 국제영화제는 여느 해처럼 화젯거리가 차고 넘쳤다.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전 세계 여성 영화인들의 공개적인 연대와 '사고뭉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신작 '더 하우스 댓 잭 빌트'가 시사회 도중 일으켰던 관객 집단 퇴장 소동 등이 취재진을 바쁘게 했다.
무엇보다도 한국 취재진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던 것은 '버닝'의 황금종려상 수상 여부였을 게다.
평론가와 소식지 등 현지 반응이 워낙 좋았던 덕분에 한국 취재진으로선 폐막식 당일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수상 확정시를 대비한 기사 작성 준비에 정신이 없었을 테고, 그래서 본상 수상 불발의 아쉬움이 '버닝' 관계자들 이상으로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왜 수상에 실패했는가를 두고 심사위원단의 성향 등 그 이유를 꼼꼼하게 분석하는 결산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지나치게 매달릴 필요는 없다.
올해 만난 심사위원단을 내년 다시 만날 리 없고, 만난다 하더라도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쓰는 수험생처럼 그들의 성향을 주도면밀하게(?) 반영해가며 영화를 만들 순 없기 때문이다.
황금종려상 수상 실패의 아쉬움은 뒤로 하고 이제는 '버닝'의 이창동 감독과 박찬욱 감독, 홍상수 감독 등을 이을 우리 영화인들의 발굴 및 육성 그리고 소개에 힘쓸 때다.
제도권 바깥 '흙 속의 진주'들을 캐내고, 제도권에 진입했지만 저평가된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 해외 영화계에 알리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이들의 등용문인 단편영화 진흥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과 다양한 장르의 크고 작은 영화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폭넓은 지지가 가장 절실하다.
또 임권택 감독부터 이창동 감독까지 여러 한국 감독들의 후원자로 활동해오다 얼마 전 타계한 프랑스 영화인 피에르 뤼시앙 같은 해외 인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타고 안 타고는 중요하지 않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 명을 배출하는 것보다 양질의 책을 널리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들이 얼마나 많은지가 훨씬 소중한 것처럼, 우리 영화 혹은 우리 영화인의 대외적 위상을 끌어올리는 데는 우리 관객들의 적극적이고 꾸준한 사랑이 최우선이다.
나름 열변을 토하다 보니, 글이 갈지(之) 자로 오락가락했다. 이창동 박찬욱 홍상수 등의 뒤를 잇는 차세대 국가대표급 감독들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열을 올리다가, '(해외에서 한국 작가주의 영화의 위상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당신들의 꾸준한 관심이 절실하다'며 돌연(?) 관객들로 초점을 옮겼다. 글 쓸 때 자주 되풀이하는 실수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가'를 까먹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본론으로 돌아와, 노래 영화 드라마 등 한국 대중문화 상품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완성도와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지난 몇 년간 지구촌 곳곳에서 거둬들인 일련의 빛나는 성과들이 현재의 이 같은 위치를 잘 확인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국뽕'에 취해 '우리 것이 최고여!'만 외치고 있어야 할까? 내수시장으로 만족하다 성장 동력을 잃어버린 이웃나라 일본처럼 말이다.
이전과 달리 당당하면서도 열린 자세를 목표로 삼으면 어떨까. 외부 평가에 쩔쩔매며 연연하기보다는, 'So What?(그래서 뭐?)' 정신과 도전하는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시하는데 주력해야 할 시기가 온 듯싶다. 하지만 우리끼리 자화자찬하며 사부작대기엔 다소 이르다. 좋은 게 있으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고, 흉내 낼 게 있으면 밤새도록 따라 해 내 걸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빌보드도 아카데미도 칸도, 그들의 영향력은 여전히 대단하다. 상 몇 개 받았다고 또 차트 1위 몇 번 했다고 별 거 아닌 걸로 무시하면, 오만하고 무식하기까지 한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해외 유명 시상식의 권위는 인정하고 존중하되,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주눅 들지 말고 즐기며 소통하는 태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 대중문화 각 분야에서 '흙 속의 진주'를 미리 알아보고 캐낼 줄 아는 혜안과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당장 다음 달 하순이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타든 못 타든, 축제를 즐기는 마음으로 즐겁게 시상식을 지켜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