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다듬기
바로 옆, 학교에서 학생들의 등교와 함께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음악과 남자 선생님의 우렁찬 중국어 소리에 격리된 채 지내는 매일의 아침을 맞이한다.
7시 반 경 부스스 눈을 뜨며, 내려다본 학교 정문으로 학생들이 들어오고, 손에 체온계를 든 선생님이 한 사람씩 맞이한다.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고 등교한다. 그러나 등교 이후, 건너편 교실 쪽에 있는 학생들은 마스크를 벗고 생활하고 있다. 그랬다. 월요일 아침 운동장에 모였던 아침 조회 때에도 대부분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이곳은 코로나 위기에서 벗어나, 정상 활동이 가능한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9시경이면, 아침 도시락이 문 앞에 놓인다. 지금까지는 ‘죽’ 또는 ‘볶음면’ 등 간단한 음식과 과일 몇 조각이 일회용 그릇에 담겨서 온다. 점점 그 맛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려고 의도적으로 시도한다. 중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의 혀로부터 전해오는 미각을 단련시키는 중이다. 점심, 저녁으로 제공되는 도시락에는 밥과 3가지 정도의 반찬이 있다. 지금까지 제공된 반찬은 대부분 다른 종류와 맛이다. 활동량이 적은 탓인지, 현재까지는 1/3 가량을 남기는 편이다. 도시락에 담긴 밥과 반찬의 량도 적은 편은 아니다. 얼추 정해진 시간에 제공되는 식사를 때를 놓치지 않고, 7일간을 먹고 있다. 끼니를 거르지 않고, 제시간에 맞춰 식사를 했으니 집 떠난 남편을 향한 아내의 걱정 어린 잔소리에는 잘 따른 셈이다. 해외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한 지인은 매 끼니를 하나씩 지워가며 14일간의 격리를 버텼다고 했다. 끼니가 그에겐 시간의 흐름을 일러준 이정표였던 셈이다.
격리된 채 생활하는 하루는 마음먹기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관련 부처에서 제공한 격리기간 중 참고할 안내 소책자 제1장에 기록된 내용을 소개하면, 대략 아래와 같다.
-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식사, 규칙적인 수면, 운동 등 적절한 휴식과 활동을 병행한다.
- 읽기, 습작 및 기타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시간 활용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한다.
- 핸드폰, 동영상, 위챗, 메일 등을 통해 대외 연락을 유지한다.
- 감정 문제를 담배, 술, 기타 약물로 해결하는 것은 피한다.
외부로부터의 전화를 제외하고, 나름의 큰 흐름은 정하고 생활하고 있다. 오전 시간은 관심분야에 대하여 서칭 하거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유튜브 방송을 시청하고, 점심식사 후 30분은 힘들게 가져온 테니스 라켓으로 이미지 스윙을 땀이 날 정도로 한다. 사실 아침 식사 후 두, 세 시간은 금방 간다. 운동 후 샤워로 기분을 깨운 다음, 생존 중국어 공부 모드로 돌입한다. 저녁 도시락이 제공되는 오후 6시까지는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공부 모드라서 그런가 보다. 때론 옆길로 새다가 다시 돌아온다.
눈 앞에 보이는 모습들은 거의 변화가 없다. 놓인 물건은 내가 손을 대지 않는 한 그 모습 그대로 그곳에 머물고 있다. 전혀 변화하지 않는다
문 앞에 놓인 구두는 첫날 그 모습 그대로 있고, 자그마한 공간의 옷장에 걸어놓은 슈트 주머니 덮게가 격리 첫날부터 삐쭉 고개를 내밀고 있다. 바로 잡아 놓을까 생각하다가 그냥 놓아둔다. 변하는 것은 줄어가는 생수병의 숫자, 햇반 등 부식류의 개수이다.
눈을 돌려 시선을 둘만한 곳은 이미 너무 친숙해져 있고, 잠잘 때를 제하고는 내 눈의 90% 이상이 아이패드 화면에 꽂혀 있다. 가끔씩 내부 공기를 환기시키려고 다가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단조로운 일상의 모습들로 그나마 바깥세상의 기운을 채운다.
밤이 찾아왔다. 오늘은 넷플릭스 영화가 재미없다. 혼자 소리 내어 중국어 공부를 해보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참 길다.
7일 차 아침에 일어나 거울 속에 비친 얼굴에 변화를 주려고 그간 일부러 길러본 수염을 과감하게 밀어 버렸다. 이제부턴 내리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