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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미 Jun 11. 2020

세잔, 집념의 사과

사과를 통해 만물의 근원을 보다



두루미, 세 번째 실타래



'세잔'의 사과


ⓒRutilo




언제까지 사과만 만지작거릴 텐가.
 자네도 다른 화가들처럼 가난한 농부들이나 노동자들을 좀 그려 보게


사과만 평생 그린 한 작가가 있었다.

미술계의 최상류층이 되기 위해 필사적이었으나 끝내 자신이 실패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던 작가, 바로 세잔이다.


그가 거듭된 살롱 낙선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졌을 때 그는 문득 예술의 근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과연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진정한 예술일까?

예술가라면 대상이 숨기고 있는 영혼까지 나타내는 것이 의무가 아닐까?


세잔은 세상의 모든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때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움직이지 않고, 오래 보아도 문제가 없는 ‘사과’였다.


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 1895~1900년경, 오르세 미술관

그런데 수많은 관찰과 집념으로 완성된 사과는 무언가 이상하다.

두루뭉실하게 뭉게진 색채와 투박하게 얹힌 명암, 그리고 주변의 다른 정물들 간의 시점도 어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평생 사과만 그렸다는데 별로 잘 그려 보이지도 않는다. 도대체 이 사과과 왜 유명한 것일까?






혼란스러운 시점, 혼란스러운 사과


폴 세잔, 《바구니가 있는 정물》, 1888년/1890년경, 오르세 미술관


먼저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자. 전체적인 부조화가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시점이다.

놀랍게도 이 그림 속 정물들은 저 마다 다른 시점을 지녔다. 마치 피카소의 작품이 여러 면에서 보여지는 모습을 꼴라주 한 것처럼 말이다.


과일바구니는 위에서 바라본 시점이지만 바구니의 몸통은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이다. 옆의 회색 단지도 위에서 바라본 시점이지만 하얀 단지와 주전자는 회색 단지보다 약간 아래에서 바라보았다. 그런데 사과나 배들은 옆에서 바라본 시점을 하고 있다.

무슨 이런 총체적 문제란 말인가?


세잔은 이를 두고 사람의 시점은 하나가 아니라고 얘기한다.


“사람의 눈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쉴 새 없이 사물들 간의 초점을 옮기며 변화한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여러 시점의 결합이라고 여겼다.  이런 그의 생각이 사과에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근대회화의 아버지' 가 되다


그의 이런 대담한 시도와 근본에 대한 의문은 이후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입체파 화가 피카소는 그의 유일한 스승은 오직 세잔이라고 말할 만큼 세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추상 미술의 대표 작가 몬드리안 또한 영향을 받았다.


세잔이 많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는 그의 남다른 시각때문에 아니었을까?

남들은 아무도 하지 않았을 생각을 했으며, 남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정물을 가지고 그 누구보다 노력했다.

결국 세잔의 노력은 미술계에 새로운 시작을 알렸으며 그 시초로서 진정한 ‘근대회화의 아버지’ 로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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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거북이와 두루미' 이었습니다.



본 글은 미술을 전공하는 6명의 친구들이 함께하는 미술비평 동아리 '두루미'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매주 각자의 이야기가 담긴, 취향이 담긴 글로 찾아옵니다.




《 참고자료 및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67438&cid=44533&categoryId=44533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74127&cid=46720&categoryId=46851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430817&cid=58436&categoryId=58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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