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기업에서 마케터는 고객의 직접적인 피드백을 굉장히 듣기 어렵다. 사실 고객과 직접적인 접점 자체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오프라인 전시회가 고객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큰 기회 중 하나였는데, 그것마저 어려워졌다. 설상가상으로 지금은 대면 영업도 어렵다. 이 시점에서 우리 팀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다. 그 결과가 '메타버스 만들기'다. 일단 셀프로 도전한다.
1. 메타버스로 뭐 하지? 왜 해야 하지?
메타버스~~~ 메타버스 ~~~ 해도 아직까지 이걸로 뭔가 시도하는 기업들은 거의 없다. 이럴 때는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 번째, 결국 이 세상이 올 지도 모르니 일단 먼저 해보자.
두 번째,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굳이 사서 고생을..?
소올직히 두 번째 생각이 크긴 했다. 그래도 첫 번째를 선택했다. 선택한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재밌어 보였다. 마케터로서는 실제 고객과 인터렉션이 얼마나 일어날 수 있을지 데이터를 쌓고 싶었다. 거기에 정체되고 보수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진 기업 이미지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딱인 것 같았다.
2. 제페토? 우리가 셀프로 할 수 있을까?
메타버스를 하기로 결심하고 일단 플랫폼 조사를 해봤다. 주로 조사한 플랫폼은 유명하거나, 국내 기업 어디든 한 번이라도 쓰여본 적 있는 곳을 우선으로 했다. 2021년 초에 기획한 프로젝트라 레퍼런스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고객이 쉽게 들어오려면 그나마 친숙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사한 플랫폼은 이렇다.
사실 메타버스를 구축하려는 초기단계에 제페토 쪽에 컨텍해봤다. 결과는 무참히 씹혔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셀프로 도전하려다가 제페토는 정말 엄청난 시간을 쏟아서 스터디하거나 전문가가 아니면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여실히 깨닫고 최근 많이 쓰이는 게더타운으로 눈을 돌렸다.
3. 게더타운으로 공간설계를 어떻게 할까
메타버스는 설계 방향과 목적을 정하고 정말 구체적으로 공간을 기획해야 한다. '하다 보면 되겠지'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시작했다간 수정을 여러 번 해야 한다.내가 그랬던 것처럼
기획안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가면 좋다.
목적 - 메타버스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왜 이 걸해야만 하는지(방향성이 흐트러지지 않게 해 주니 반드시 고민하자)
공간 콘셉트 - 사무실, 공원, 놀이동산, 해변 등등 회사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이 잘 표현되는 공간의 콘셉트를 정하기
공간 구성+동선 - 어떤 공간으로 나눌 것인지, 사용자의 동선은 어떻게 흘러가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정하기
들어갈 콘텐츠 - 공간 안에 어떤 콘텐츠를 넣을 건지 리스팅, 어떻게 어디에 넣을지도 고민하기
고객 참여 이벤트 - 메타버스 공간 안에서 고객과 인터렉션 할 수 있는 재미요소 넣기 (없으면 금세 식상해진다), 고객 DB와 피드백 획득까지 고려해야 함
기획이 마무리되면 구현해보자. 기본적으로 포토샵을 할 수 있어야 의도한 방향으로 오브젝트와 공간을 설계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게더타운에서는 깃허브를 통해 꾸밀 수 있는 오브젝트를 제공해준다. 여기서 많은 소스를 얻어 수정해나가면 된다.
4. 게더타운 제작 시 주의할 점
게더타운 만들기를 검색하면 어떻게 만드는지 많이 나온다. 그래서 만드는 법보다는 만들다 보면 간과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설명하겠다. 사실 이 내용은 게더타운 구축하면서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걸 했던 내용들을 모아 놓은 'Lesson Learned'라고 해도 무방하다.
포토샵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왕이면 잘.
포토샵은 잘하면 잘할수록 좋다. 픽셀 단위로 공간과 오브젝트를 만들어나가야 해서 시간이 꽤나 소요됐다. 사실 게더 타운 자체 편집기(Map maker)로도 할 수 있지만 사실상 기본 제공되는 공간과 오브젝트만 사용할 수 있어 표현에 한계가 있다.
포토샵으로 게더타운의 백그라운드와 오브젝트 등을 만들 때는 가로 32px 세로 32px의 그리드를 깔아놓고 작업해야 한다.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 잡고 해도 정작 게더타운에 입히면 약간 어긋나는 오류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작업을 완료하고 난 후 편집기로 올려 수정하는 것보다는 미리 한번씩 올려서 테스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오브젝트 형태를 통일하자
만들다 보니 느낀 건데, 오브젝트의 형태도 유사한 톤이여야 한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2D로 실컷 의자를 만들어놓고 책상은 3D로 만들면 안 된다. 이 부분은 매우 기본적이지만, 당연히 지켜낼 것 같지만 사실 디자이너가 아니면 이런 실수가 꽤 나올 것이다.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유사한 톤 앤 매너로 오브젝트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예뻐도 기존에 사용한 오브젝트와 거리가 있는 형태의 오브젝트는 사용하면 안 된다.
동선을 고려하자
아바타가 로비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로비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강당이 나오게 표시되어있었는데 강당으로 들어가는 포털에 섰더니 생뚱맞게 강당 중간에서 뿅 튀어나온다든지, 왼쪽 끄트머리에서 나온다든지 하면 어색하다. 이정표가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고,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왼쪽 대각선에서 떨어지게 되면 당황스러운 느낌이 드는데 게더 타운도 그렇다. 그러니 움직임이 어색하지 않도록 아바타가 이동하는 동선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위치표시를 잘해주자
아바타가 돌아다니는 공간은 생각보다 넓다. 그래서 자칫 길을 잃기 쉽다. 그러니까 어디가 어디인지 표시해주자. 우리 팀 같은 경우는 바닥에다 표시했다. 사용자가 길을 잃지 않고 우리 제품을 구경하고, 강연장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메타버스 플랫폼을 기획하고 구축해보는 작업은 쉬운 작업은 아니었으나 개인적으로는 큰 즐거움이었고, 보수적인 업계에서 잘하지 않은 도전을 했다는 점에서 주변 마케터들의 문의도 많이 받았다.
물론 수많은 마케터가 메타버스를 활용한 마케팅에 눈독을 들이고 있거나 이미 진행하고 있을 거다. 누군가 나처럼 예산과 인력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도전하려고 한다면 게더타운을 추천한다. 그리고 직접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만들면서 당연하게도(?) 많은 고뇌와 후회가 스쳐 지나가지만 그럼에도 흥미로운 마케팅 채널을 누구보다 앞서 운영해볼 수 있다는 점, 거기다 회사의 이미지를 빠르게 쇄신할 수 있다는 점은 기업에게도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