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이 휘몰아칠 때 꺼내보기 좋은 영화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 아닐까. 극 중 마담 프루스트가 말하는 나쁜 기억은 행복의 홍수 밑으로 보내 버려. 수도꼭지를 트는 일은 네 몫이란다. 는 아픈 기억을 붙잡고 사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대사이다. 아름다운 미장센 사이로 빼놓을 수 없는 서사와 깊이 있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명작이다.
그중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담 프루스트가 나무 한 그루를 악착같이 지켜내는 모습이다.
공무원: 이 나무는 병들었어요. 베어내고 새로 심을 겁니다. 그런 게 생명의 순리죠
마담프루스트: 공무원 양반이 나한테 순리를 가르쳐요?
공무원: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 제 일을 할 뿐이죠.
마담프루스트: 나쁜 놈들은 다 그런 겁니다.
공무원: 보세요, 같은 나무를 심을 겁니다.
마담프루스트: 애들한테 잘도 그늘을 만들어주겠네요. 피부 암은 몇 대에 걸쳐 유전된다는데 나도 참 멍청하긴 아이들 미래에 걱정이 있을 리가. 대홍수 나면 구름 타고 천국에 갈 양반들인데. 난 당신네 천국 안 믿어요. 난 불교 신자니까. 불교신자로서 한마디 하죠. 천국은 바로 여깄는데 당신들이 망쳐요.
나무 한 그루일 수도 있지만 지구를 생각하는 그녀의 큰마음을 보면 결코 작은 나무가 아니다.
20대 초반에 연세대에서 특강하러 오신 교수님 한 분이 계셨다. 영문학과 이경원 교수님이셨는데 굉장히 인자하시고 고즈넉하시고 차분한 모습과 더불어 따뜻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때 처음 아 나도 연세대 영문학과 가서 수업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못 가겠지만.. ㅎ
새로운 시각과 더불어 나의 머리를 트이게 해줬던 특강은 아직도 머리에 남는다. 특강을 듣고 그 교수님을 찾아봤다. 살아오신 행적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 공사에서 유일하게 남은 은행나무 한 그루를 지키던 기사였다. 신촌캠퍼스 중앙도서관 앞에 있는 은행나무 앞에서 천막과 순번을 정해 철야근무도 하셨다.
그래서 그 나무는 어떻게 되었을까. 막대한 공사지연금을 핑계로 새벽에 공사를 강행해 나무를 잘랐다. 그리고 주차장을 만들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추억과 자연이 아닌 수익성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재개발하는 모습들이 폭력적이다. 더 이상 대학이 학문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전락해버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부자는 존경하지 않지만 이런 분들을 존경한다. 환경오염된다고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시던 교수님, 낡은 가방과 지하철을 이용하던 교수님, 한 옷만 입지만 깊은 지식을 전달해 주시던 교수님. 아파하는 사람을 지나칠 수 없어서 같이 아파하는 사람들과 시위자들.
도저히 변화할 수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왜 이런 노력을 하는 걸까. 유시민은 이에 대한 대답으로 이런 말을 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걸 한다고요. 내가 존엄하게 살기 위해서. 내 삶의 방식에 비천함과 비겁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차마 나 자신의 비겁함을 외면하고 싶지 않아서, 존엄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간혹 무모해 보이는 일을 한다. 성공이냐 실패냐는 그 뒤의 일이다. 그가 살아온 행적을 보면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타인의 고통과 환경에 민감한 사람들을 존경한다.
굉장히 시선이 간 독일 교육. 어려서부터 성교육,정치교육,환경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문구와 시위 방향을 정한다고 한다. 화면 속 아이들은 초등학생들이다. 불법적인 인간은 없다와 지구를 보호해야지. 돈을 보호하면 안 된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독일 교육을 보고 현타가 왔다.
교육이 바뀌어야 사회가 바뀐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교육은 바뀌기나 할까.
이쯤 돼서 나는 뭘 보호하고 있을까. 물신인가,다른 사람에게 지기 싫어하는 내 모습인가, 초라한 내 모습인가.허무주의에 빠져 하루하루 연명하고마는 일상인가
그럼에도 남들이 말하는 보잘것없는 것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