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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Sep 02. 2020

겨울나비. 52 쨍하니 해 뜬 날

이름을 기억해주는 이가 있던 날

하루에 책 세 권 보던 탄탄한 시력이

이제는

가까운 곳도 먼 곳도 아물 대고

그 시력과 함께

절반의 절망과 절반의 희망을 품고

거리에 나섰다.

"은행 이자보다

더 낫게

매월 채무자가 안 주면

내가 대신 꼬박꼬박

주겠소."

말하던 사람은 20년을 알았던 관계.

그 말 믿고 퇴직금을 몽땅 맡겼다.

석 달 이자를 받고,

이제

이자도 원금도 차일피일

설마

내게 그런 일이 했으나

이게 내게는 현실이 되었다.

"경매를 겁시다.

내일 꼭요."

내가 믿던 이의 사무실에서

그의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휴대전화를 걸어 그에게

다시 강조를 하면서

삶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교차로 같구나.

비가 뚝뚝 떨어지는

거리에서

어디선가 울리는

전화벨 소리

늘 혼란스러운

내 전화인가?

아니면 누구?

텅 빈 거리엔

은행나무 가로수와 나 혼자.

"형님, 접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ISO를 하신다며 요.

근처에 마침 계시군요.

제 사무실에 오셔요."

하는 목소리는

내가 대리 때 사원이었으나 지금은 작은 건설회사 사장.

그는 ISO 인증을 받아야겠다며

남이 받는 만큼 받으시고 일을 해달라고 한다.

그가 점심으로 사는

대구 지리 찌개.

회사 돈으로 탁탁 남에게 접대하던

때가 이제

내게는

참 먼 날이 되었고

대구의 살을 조금씩

먹으면서

자꾸 목이 메었다.

이제

세 발짝

네 발짝

사무실 한 칸의 시작에

처음 들어온

일거리 탓인가?

살 속에 파고드는 빗물 탓인가?

대구탕 한 그릇 사는 인연 탓인가?

그 목멤 뒤 다시 1년이 지나고, 아는 얼굴들이 인연의 낚시를 내게 걸며 일거리를 주었다.

내가 채근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주었다.

여의도의 작은 회사 사장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형님, 이번 회사에 현장 소장들의 교육이 있습니다.

세 시간 동안 교육을 해주십시오.

강사료는 25만 원입니다.

이의 있으시면 연락해 주시고요."

일당 25만 원보다 전화 한 통화에 신바람 난다.

강사료로 처음 받아보는 일당이고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올지 안 올지. 전화번호부에서 내 이름을 삭제 않고 ‘찾아주는 사람’이 있는 세상이 내게 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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