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객을 모아야 하는 혼주를 도와준다지만....
전화 한 통화가 걸려와 내게 알바가 생겼다. 언젠가 한 번 하고서 참 오랜만이다.
하객 도우미 회사에서 연락이 하도 없기에 내 이름은 삭제되었는가 싶더니 불사조처럼 살아났는가 보다.
결혼식 하객 도우미다. 이건 내가 아주 잘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일이니 친구 아들딸이 시집 장가 가네, 친척 조카 아들딸이 가네 하면서 수시로 하객 노릇 열심히 했다. 축의금 봉투에다 배 쫄쫄 굶고 ‘속알머리’ 없이 늙고 추해도 찍사까지 하니 직업이 결혼식장 하객이 된 판에 달인의 경지에 오른 나에게 짝퉁 하객을 하라고 하니 이거야말로 떼어놓은 당상이다.
장소는 강남, 시간은 토요일 1시 반에 집합인데다 친구도 몇 명 달랑 달고 오면 더 좋단다. 말 전하는 결혼 도우미 직원에게 묻는다
일당이 얼마요?
만 오천 원에 점심으로 7만 원짜리를 대접한단다.
역할은 신랑 아버지의 친구란다.
강남에서 제법 이름 알려진 예식장이니 식장 비용이 만만치 않을 터. 짝퉁 하객 한 명당 도우미 회사에 돈 내고 오는 사람 밥 먹이자면 한 사람당 돈 10만 원씩 들어갈 테고 몇 십 명을 동원하면 몇백만 원이 뜬금없이 사라질 판이건만 신랑 아버지는 얼마나 모임이나 친구 없이 살았다면 이 지경으로 하객을 동원할 정도로 딱하단 말인가.
돈 있는 사람은 돈 쓰는 게 일이고, 나 같은 사람은 재미 삼아 소일 삼아 나가본들 어쩌리.
나는 나와 달랑 함께 갈 짝퉁 하객을 모으려고 전화를 걸었다. 하객 도우미 회사에서 정한 조건대로 나이가 적당한 근처에 사는 동서에게 건다.
밥만 먹여줘도 가겠지만 그날은 다른 데 모임이 있어 유감천만이네.
다른 이에게 전화를 건다. 실직자 훈련에서 알고서 막역해진 권형이다.
황형을 오랜만에 만나는 일인데 잘 됐소.
전날 날씨가 덥더니 결혼 당일은 비가 와서 날씨가 구질구질하다. 친구 아들딸 결혼식에 입고 나가던 쥐색 양복 정장에다가 청색과 흰색의 사선 무늬 넥타이를 하고 나섰다.
약속 장소는 역삼역 지하철 안이다.
60은 넘어 보이는 영감들이 양복을 빼입고 끼리끼리 모여 있다. 척 봐서 짝퉁 하객인 걸 알겠다. 이십여 명은 되겠다. 하객 도우미 회사 직원은 예식장 한구석에 사람을 모으고는 인원 점검을 한다. 그리고 돈 봉투 2개씩 준다. 한 사람 앞에 왜 두 사람분 축의금 봉투를 주는지. 기기다가 방명록에 추가로 2사람 이름을 더 적으란다.
뭐 땜에 더 적는답니까?
나는 당연히 궁금하다.
방명록에 사람이 많을수록 좋답니다.
하객 회사 직원의 말은 들을수록 아리송하다.
이건 좀 수상하다. 오지도 않은 짝퉁 숫자를 늘려서 신랑 아버지에게 삥땅을 칠 것 같은 느낌이다. 나중에 식이 끝나고 나서 하객 도우미 직원은 오늘 동원 인력이 100명이었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정작 결혼식장에 미리 모였던 인원은 30여 명 밖에 안 되었으니 나머지 70명은 어디 다른데 숨겨놓았단 말인가. 직원의 말투도 이상하고 야릇하다.
같은 필체로 글씨를 쓰면 티가 날까 봐 하는 수작인가.
2시에 시작하는 줄 알았더니 식은 2시 반에 시작됐다. 신랑은 잘 났고 색시는 곱다. 신랑은 천하가 알아주는 대학을 나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직장에 다니고 신부는 그래도 중간쯤 하는 대학을 나와 제법 알아주는 직장에 다닌다. 신랑 아버지는 풍채도 좋고 돈도 있어 보인다. 부인도 참하다. 친구 많고 이웃이 많아 보이는 부부다.
그런데 하객당 10만 원을 들여서 100명에 1000만 원을 쓰면서 대접인지 적선인지 신부 측에게 으싯댈 일이 무엇인가.
내가 먼젓번에 갔던 결혼식은 신부 측 친척 노릇이었다. 강원도에서 서울에 와 홀로 일어선 신부에겐 친척들이 서울까지 올 힘이 없는가 보다. 우리 짝퉁 도우미 10여 명은 가족사진까지 찍었다. 그때는 먹을거리가 부족하다며 짝퉁들은 밥도 못 먹고 2만 원 받고 할 일만 했다. 결혼식 가족사진에 그 시간 이후로 단 한 번도 만날 일이 없는 친척 사진을 보면서 그 젊은 부부는 그 사진을 가리키면서 만날 수 없는 삼촌과 육촌 언니라고 하겠지.
그때 생각을 하면 그런대로 짝퉁 하객은 필요할 수도 있다며 억지라도 쓸 수는 있겠다.
내가 앉은 자리는 아줌마 세상이었다. 남자라곤 나와 내 친구뿐. 눈치를 보니 짝퉁 하객은 아니고 신부 어머니 친구들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와 부모님이 하객들에게 인사를 할 때 신부 어머니와 자기들끼리만 아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보면.
결혼식은 축하를 받는 자리다. 마땅히 축하를 하는 하객들만 모여야 한다.
남 보란 듯이 사람을 모으려면 차라리 서울 광장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국수 한 사발을 먹여 주는 게 낫다.
사람 사는 게 처지가 저마다 물론 다르다.
나 역시 때가 되어 아들딸이 갑자기 눈에 콩깍지가 씌워 장가 가네 시집가네 할지 모른다. 그때 나는 친척과 진짜로 축하해 줄 10명 안팎만 돼도 그 얼굴만으로 반가울 것이다.
결혼식을 으레 그렇듯 밥만 먹으면 판을 거둘 때다.
신랑 아버지 밥 잘 먹고 갑니다.
애를 쓰셨으니 아들 며느리 행복하게 지내라고 빕니다.
오늘 오는 비가 궂다고 서운해 마세요.
인생사도 이렇게 비 오다 개는 거지요.
내게 4번이나 다른 이름을 쓰게 시키던 하객 회사 직원은 만 오천 원을 내게 준다.
나머지 세 명분은 어디로 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