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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Oct 13. 2020

겨울나비. 55 '어머니 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

출판 기념회를 주선 해준 회사 동료

여기에 어느 음식점 이름이 실명이 나오고 내 책의 제목이 광고하듯 나온다. 거친 뉴스와 상처를 주는 기사에 신물 나는 세상에 기쁨을 주는 이가 있다면 마땅히  이들을 밝히는 일도 기쁨이다.

(지금 이 시점 2020년 10월 13일에는 음식점은 폐업했고, 사장 부부는 미국 이민갔다)

서울 등나무 집 강남점은 극동건설에서 근무할 때 동료였던 박재하 사장이 운영하고 있다. 며칠 전에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데 박 사장의 부인이

 "책을 내셨으면 출판 기념회를 하셨나요?"

 하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내 책이 막 나오던 날에 책을 펴낸 흥부네 박의 박영발 사장과 인현동 스카라 극장 뒤의 복집에서 복 찌개를 함께 먹던 참이었다. 


 시간이 있으면 밥을 볶아 먹고 싶었으나 박 사장은 전화로 책 주문을 받고 시간에 쫓겨서 건성으로 급하게 점심을 때웠다. 두 사람만의 쓸쓸한 점심이 출판 기념회라면 출판기념회였다.


"출판기념회라는 것이 뭔가요. 책을 하나 만들었으니 충분하지요" 

부인은

 "우리 집에서 하세요."

대개 음식점을 하는 사람들이 손님 끄는 방법으로 무슨 행사가 있으면 여기서 모이세요 하는 말은 친한 사이에 있는 일이었다. 내 형편으로서는 사람을 모으고 밥값 치르고 할 여유가 없었다.


박 사장은 자기 아내의 말에 이어 

"황형, 우리 집에서 해요. 우리가 다 할게. 황형을 전혀 부담 갖지 말고. 우리 함께 근무했던 극동 오비 들을 다 부르자고요."

"말만 들어도 고맙습니다. "

"아니. 황형. 말만 들을 게 아녜요. 농담이 절대 아닙니다. 꼭요."

"꼭, 그렇게 하지요" 

나는 그 마음만으로 고마웠다.


그 뒤  며칠을 지났다.

여의도에서 빌딩 관리하는 회사 이범렬 사장이 내게 전화 걸었다.

 "형님, 이야기 들으셨지요. 출판 기념회를 한다는 말. 날짜가 정해졌으니 꼭 나오세요." 

등나무 집 박 사장이 이 사장에게 말을 전해서 이 사장이 연락책을 맡아 극동에서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에게 파발을 돌린 모양이었다.


극동 OB는 매년 연말에 모인다. 극동건설에 있을 때부터 이 사장이 주관해서 모였다. 그 식구들을 이번에 내 일로 모이자 했던 것이다.


나는 내 책을 만들어준 흥부네 박, 박 영발 사장에게 연락했다.  박 사장은

"제가 가도 되겠습니까?"

긴장하는 듯해서 꼭 나와 달라고 당부했다.


등나무 집 입구에는 '어머니. 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 출판기념회라는 대자보가 붙었다. 등나무 집에서 칼라 프린터로 출력을 한 것이다.

쑥스럽고 낯설고 등나무 집 수고가 콧등이 찡하다.


사람들이 모였다.

아직도 극동 건설에 근무하는 사람, 작은 건설회사의 전무, 또는 상무, 원예원의 사장, 아파트 관리 사무소의 소장, 재개발 관리처분 대행사의 사장, 작은 종합건설회사의 사장 등등으로 세월이 바뀐 만큼 바뀐 직장을 가지고 모였다. 이 자리에는 신문사의 문화부 기자가 올 리 없었고, 문단의 중진이 와서 자리를 잡을 일없다.


등나무 집에서 아르바이트생 하나가 와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대단한 작가가 아닌 줄 알면서 나와 사진을 찍으며 기뻐하는 모습은 나를 쑥스럽게 했다.


등나무 집 사장은 축하 케이크를 장만해서는

 "미안해요. 2단짜리로 해야 되는데 못 구했습니다."

누가 미안하여야 할 것인가.

등나무 집을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대자보를 보는 30대 이상인 사람들은 무슨 일이냐고 음식점의 종업원들에게 묻고 그들의 눈빛이 우리 쪽으로 쏟아질 때 나는 수줍은 기분이 들었다.


어느 30대 손님이 우리 쪽으로 와서 작가의 서명이 있는 책을 사겠다고 했을 때 나는 아주 무안했다. 나는 그냥 글 쓰는 사람이라면 적당하지 무게가 실린 작가라는 말에는 너무 낯 뜨겁다. 

책에다 서명을 해주니 

"책 제목이 제게 너무 와 닿습니다. 감사합니다. 악수 한 번 해도 될까요." 

 그 말이 참 황송하였다.


전화가 와서 온다던 이가 못 온다고 했고 못 온다는 이가 오기도 해서 열네 명이 모였다. 잠깐 보이지 않던 흥부네 박 사장이 꽃바구니를 들고 왔다. 바구니에는 '작가 황종원 출판기념회 흥부네 박'이라고 리본이 매달려 있다. 글 몇 줄 썼다고 작가라는 말은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나 마음은 고마웠다.


등나무 집 박 사장의 부인은 우리가 나름대로 행사를 진행하려 하자

"잠깐만요. 샴페인을 사러 보냈어요. 잠깐만요." 

 샴페인의 코르크 마개가 펑 소리 요란하게 천장을 치며 우리 일행은 기분 좋게 일을 진행했다. 여의도에 있는 작은 회사의 이 사장이 사회를 본다.

"이 모임은 함께 근무했던 황 형이 책을 한 권 썼습니다. 그 일을 하게 해 준 흥부네 박 사장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모임을 지원해 주신 등나무 집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흥부네 박 사장이 거든다.

"직장을 그만둔 뒤 긴 세월이 흘러도 이렇게 모일 수 있으시다니 부럽습니다. 저는 열심히 책을 만들었고 열심히 팔려고 노력을 하고 있으나 아주 힘들군요. 요즘 테러 때문에 국내에서 나오는 책들은 많이 힘이 듭니다. 좋은 글에 제가 흥미를 갖고 좋은 책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모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흥부네 박 사장에게 궁금한 것이 있다.

"황 형이 책을 썼다기에 건설 현장의 시공 방법이거나 재건축이나 재개발 추진방법인 줄 알았는데 대체 무슨 내용입니까?"


"기획 의도는 이랬습니다. 추석에 맞추어 책을 펴내면서 이런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 넉넉함으로 예로부터 더도 말고 덜도 말라는 추석이 내일모레, 다들 고향 생각에 가슴 설렙니다. 늘 이맘때면 생각합니다만 고향에 추석이나 설 명절 말고도 아이들 데리고 한 번쯤 찾아갔을 법 하지만 그동안 먹고 사느라 바빠서, 그리고 좀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주말마다 무슨 할 일이 그리 많았는지 한 번도 찾아가 보지 못했습니다. ‘한번 가봐야지, 이번에는 꼭 가야지’ 하면서도 이제껏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고향, 생각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기 때문일까요, 그러기에 늘 뒷전으로 밀려나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한결같이 그 자리에 보름달같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우리 사정 다 알고 이해한다는 표정입니다. 늙은 당신들 걱정하지 말고 우리나 행복하게 잘 살라는 어머니 마음입니다. 어머니, 왜 꼭 무슨 날- 생신, 어버이날 -이나 명절이 되어야 이리 절실해집니까? 얼마나 벼르고 별러 오신 걸음인데, 그저 편한 맛에 외식으로 때우고, 어디 한번 제대로 따뜻한 밥 한번 차려 모시지 못했습니다. 당신 몸 주체하시기도 어려운 데 또 봉지 봉지마다 넣어 한 보따리를 챙겨 주시니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귀찮기도 했습니다. 고백하건대 몇몇은 썩혀버리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걸 다 아십니다. 그리고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하시고, 오히려 ‘밖에서 사 먹는 것들은 부실할 텐데, 그나마도 제대로 챙겨 나 먹는지’ 하고 걱정하십니다.


지금 어머니는 또 이것저것 알곡들만 골라 따로 챙기고 계십니다. 추석에 내려올 자식들 차에 실어 보낼 것들입니다. 자식들이 서른, 마흔 살이 넘어도 어머니에겐 여전히 당신 등에 업힌 아기입니다.

겨울이 멀지 않은 가을, 그동안 너무나 마음 편하게 대했던 부모님께 어리광을 피우던 나이로 돌아가 어머니 등을 주물러 드리며 마음을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선물 보따리보다 자식들과 함께 하는 그 시간이 정말로 큰 선물입니다. 늘 말로는 ‘괜찮다, 괜찮다.’ 하시나 조금도 괜찮지 않으시니, 시간은 늘 그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시간은 늘 그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는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


물어보던 사람의 시선이 진지하고 말하는 사람도 길게 이야기하고 싶어 진다.

"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머니, 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가족 이야기입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 반쪽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 아내와는 아직 ‘여보, 당신’ 소리도 수줍어 못하는 신혼생활 23년째이고, 걸어 5분 거리에 어머니는 혼자 살게 하고, 대신 장모님을 23년이나 모시고 사는 우리 이웃 이야기입니다.


병마와 싸우는 남편을 붙잡고 애통해하는 젊은 아내의 눈물이 있고,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직장 생활의 애환이 있고, 전화로나마 서로 안부를 주고받던 친구와의 우정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를 40년이나 계속 쓰고 있는 황 선생님이 자신과 가족은 물론 이웃들의 삶에서 찾아낸 절실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제1부 영혼이 있는 사랑, 제2부 행복한 가족, 제3부 그래도 아름다운 세상’으로 나누어 담아낸 60여 이야기가 모두 우리네 팍팍하고 힘든 삶을 적셔주기 위해 방금 두레박으로 건져 올린 샘물 맛입니다."


듣고 있던 빌딩 관리 회사의 이사장은

"형님이 책을 미리 보내 주셔서 난 앞에 부분을 읽다 말고 눈물 나서 책을 덮어 버리고 캐나다에 가있는 후배에게 보냈어요"하고 "불효자들의 가슴을 찍는 사모곡입디다."

누가 또 물었다.

"몇 부나 찍었습니까? 많이 팔릴 것 같습니까?"

"2천 부를 찍었습니다. 어려울수록 책을 보는 것은 선진 외국의 성향입니다. 현재의 처지를 벗어나려는 방법을 찾아보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어려울수록 책을 안 봅니다. 책에도 운명이 있습니다. 좋은 책이 그냥 사라지는 수가 있고, 별것도 아닌 책이 화장하고 가꾸고 매스컴 타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지요."


"만약 적자를 보면 어떻게 합니까?"

"이것도 장사지요. 하다 보면 잘 되는 수도 있고 안 되는 수도 있으니까요"

흥부네 박의 박영발 사장은 말했다.


"광고해야 책이 팔리지 않겠습니까?" 

 누가 또 물었다.

"광고를 하여야 하지만 입으로 입으로 전달되는 것이 제일입니다. 신문에 기사화가 된다거나 방송을 탄다거나……."

박 사장 말에 나는 내심 뜨끔했다.


책이 나오기 전에 MBC FM 여성 시대에 내 글이 가끔 방송을 타면서 알게 된 실무자에게 2 년 전에도 어느 출판사의 담당이 내 책을 기획한다기에 내 책이 나오면 방송에서 언급하여 주마하던 말을 들었던 일을 나는 흥부네 박 사장에게 말을 했었다.


작가도 아닌 이가 신춘문예에 나온 일도 없는 이가 내일모레 60의 나이를 바라다보며 인터넷 신문에 열심히 글을 올리고 무엇인가 자기 의견을 말한다는 사실이 뉴스감은 되리라 생각을 했었다.


방송국에 책을 보내고 편지를 보냈어도 아직 반응이 없다.

나는 책 한 권을 얻었으니 손해를 볼 일이 없다. 반대로 내 말에 작은 희망에 찼던 흥부네 박의 박 사장에게는 절실한 현실이다.

아무리 그래도 흥부네 사장은

"책은 책대로 운명이 있으니까요. 열심히 해보아야지요. 다른 인터넷 매체에서도 서평에 언급이 없군요. “

지푸라기를 잡은 심정을 보인다.

"책을 보냈지만 아직 반응이 없네요."

나는 숨은 기분이었다.


흥부네 박 사장은 내 글을 책으로 만들고 여기저기 일간 신문이나 월간지에 출판사의 출판 기획의도를 보냈으나 아직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책은 광고한다고 다 팔리는 것이 아니다.

신문에서 서평에 무게가 실려 몇 줄 내주는 효과는 대단하지만 내 글이 아주 우습게 보였거나 미국의 테러 사태가 너무 큰 탓이거나. 기자들의 시선이 다른 곳을 달려가는지도 모른다. 그는 무슨 운명으로 인터넷에서 내 글을 보고서 이렇게 혼쭐이 나서 가슴을 앓고 있는가?


내가 등나무 집의 사장에게 20여 년을 친하면서 도와준 것이라고는 없다. 극동건설의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던 다란 미사일 기지 현장에서 주임이었던 나는 캠프와 자동차 관리를 맡고 있었고 대리였던 박 사장이 내게 차량 지원을 바랐을 때 남에게 해주는 만큼만 해주었을 뿐 나는 융통성이 없었다. 내가 먼저 귀국하고 나서 뒤에 귀국했던 박 사장은 내 아내에게 주라고 은목걸이를 귀국 선물로 주었다.

나는 그의 부인에게 해 준 것이 없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의 나날을 보낼 때 함께 일하자고 권하던 이가 박 사장이었고, 그 일을 하지 않고 나는 ISO에 빠져 심사원 되는 공부를 했고, 그 중간에 자기 회사에서 일거리를 내게 일거리를 만들어 주었던 이가 박 사장이었다.

그가 내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함께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할 뿐이다.


내가 그에게 해 준 일은 무엇인가.

등나무 집을 개업했을 때 내가 좋아는 쉴 실버스타인의 그림을 모사한 그림을 여러 장 그려서 음식점 벽의 공간에 붙여주었던 일뿐이며 그의 이야기에 말동무를 하여준 일뿐이었다.


혼불 작가 최명희를 찾다 보니 박 사장마저 나와 동감을 해서 등나무 집 한쪽에다가 작가 최명희를 기리는 자리를 만들어서 그 자리에 앉는 손님들에게는 먹은 음식값의 10퍼센트를 깎아 주고 있다. 나는 박 사장에게 애물단지 노릇을 하고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내리사랑을 받아 본 일이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해득실의 잣대를 가지고 살아왔었다.

나는 등나무 집의 박 사장에게

"박형, 정말 고맙습니다."

"재미있잖아요. 이렇게 모이는 것이……."

 그의 마음은 투명하도록 고왔다.


미움마저도 그리움으로 새겨지던 때, 그의 따스함은 먼 훗날에도 추억의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인사말이 끝났다.

"어머니를 위하여"

샴페인이 돌고 소주잔이 돌았다. 세상은 때로 가슴이 시릴 만큼 살맛이 난다.


2001.10.17


여기 나오는 등나무 집 주인댁 부부는 미국을 이미 떠났다.


네이버에서 이 책을 2008년 가정의 달에 꼭 봐야 할 18권  중 하나로 선정했다.


http://book.interpark.com/blog/dksxodhr57/123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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