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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Nov 12. 2024

16kg 뺐는데 왜 행복하지 않죠?

위고비 신드롬과 마주한 임상심리학자의 기록

"16킬로그램을 뺐어요. 하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여전히 뚱뚱해 보여서... 이제는 위고비라도 써야 할 것 같아요."

상담실에서 마주한 20대 후반의 직장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불안해지는지, SNS를 열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날씬한 몸매에 얼마나 자존감이 낮아지는지를 이야기하는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이미 저체중인 그녀가 마지막 희망처럼 붙잡고 있는 것, 바로 '위고비'였습니다.


20년간 임상심리학자로, 그리고 서울시 교육청 섭식장애 교육 프로그램 자문위원으로서 수많은 내담자들을 만나왔지만, 최근 이런 사례들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보면 정말 깊은 우려를 느낍니다. 특히 '위고비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이 약물을 향한 맹목적인 추구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엊그제 만난 한 고등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들 단톡방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위고비 구매 문의가 올라와요. 연예인들도 다 한다면서... 저도 궁금해요. 그냥 한 번만 써보면 안 될까요?" 한 대학생은 이미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위고비를 구매하기 위해 판매자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고, 30대 주부는 육아와 일 때문에 운동할 시간이 없어 '빠른 해결책'으로 위고비를 고려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위고비가 마치 모든 체중 고민의 해결책인 것처럼 여겨지는 현상은 사실 매우 위험합니다. 위고비는 단순한 다이어트 약이 아닙니다. 노보 노디스크에서 개발한 세마글루타이드 기반 비만치료제로, 본래는 당뇨병 치료제입니다. 체내 호르몬계에 작용하여 위장에서 음식물이 소장으로 넘어가는 속도를 늦추고, 포만감을 증가시키며, 식욕을 조절하는 뇌의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하는 이 약물은, 임상시험에서 15%에 달하는 놀라운 체중감량 효과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약물의 사용 대상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BMI 30 이상인 비만 환자나, BMI 27~30 미만이면서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동반질환이 있는 환자들을 위한 전문의약품입니다. 의사의 철저한 관리 하에 0.25mg부터 시작해서 약 4주 간격으로 단계적으로 증량하며, 최대 2.4mg까지 조절해야 하는 주사제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SNS에서는 연예인들의 위고비 사용 소문이 무분별하게 퍼지고, 암암리에 처방전 없이도 구할 수 있는 '신약'처럼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정상 체중이나 심지어 저체중인 사람들까지 이 약물을 구하려 합니다. 마치 '살 빼는 마법의 약'처럼 이야기되는 위고비는, 이제 우리 사회의 왜곡된 신체 이미지와 극단적 다이어트 문화를 상징하는 새로운 기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저와 같은 심리학자가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 약물이 섭식장애의 새로운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어요. SNS에서 본 후기들이 너무 완벽해 보였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제는 하루라도 주사를 맞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밥을 먹을 때마다 죄책감이 들고, 체중계에 오르는 게 공포스러워요." 이런 말만 보아도 위고비가 단순한 체중감량 도구를 넘어, 심각한 심리적 의존성을 일으키는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섭식장애는 결코 단순한 식습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복잡한 심리적 문제의 표현이며, 현대 사회의 왜곡된 미의 기준에서 발생됩니다. 완벽주의 성향, 낮은 자존감, 통제에 대한 강박적 욕구, 그리고 왜곡된 신체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지요. 왜냐? 인간의 뇌는 종종 자신의 모습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현대 사회의 과도한 외모 지상주의와 SNS의 영향은 이러한 왜곡을 더욱 강화시킵니다. 우리의 자아상은 마치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압박과 개인의 심리상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인 것입니다.



"살을 빼면 행복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체중계 숫자가 줄어도 제 마음속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더 심해졌어요. 이제는 조금이라도 체중이 늘면 패닉에 빠질 것 같아요. 매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가는 게 하루의 시작이 되었고, 그 숫자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좌우돼요." 이런 상황에서 위고비의 무분별한 사용은 매우 심각한 신체적, 심리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심각한 저혈당 현상, 급격한 혈압 저하, 심장 기능 이상, 극심한 구토와 메스꺼움은 물론이고, 영양 불균형, 면역력 저하, 호르몬 체계 교란까지 다양한 신체적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 심각한 것은 심리적 부작용입니다. 약물 의존성, 섭식장애의 악화, 신체 이형 장애의 심화, 불안과 우울의 증가, 자존감 저하, 강박적 체중 조절 행동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성장기 청소년이나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의 경우, 이러한 부작용은 더욱 치명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이해입니다. 우리의 몸은 단순한 외형이 아닌,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소중한 동반자입니다. 건강한 신체상은 하룻밤 사이에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긴 여정의 결과물입니다. 이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수용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날씬해야만 가치 있다"는 왜곡된 믿음에서 벗어나, 자신의 다양한 가치와 장점을 발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위험한 약물에 의지하지 마세요. 얼마 전 상담실에서 만난 한 내담자는 1년간의 투쟁 끝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드디어 깨달았어요. 제가 정말 원했던 건 마른 몸이 아니었다는 걸요. 제가 진짜 원했던 건 인정과 사랑이었어요. 살을 빼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믿었는데... 지금은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알아요. 거울을 볼 때마다 자책하고, 체중계 숫자에 하루의 기분이 좌우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거울이 아닌 창밖을 봐요. 그리고 생각해요. '오늘은 또 어떤 좋은 일이 생길까?' 하고요."

그녀의 이야기처럼,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어쩌면 체중 감량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가치는 체중계 위의 숫자나 거울 속 실루엣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가진 따뜻한 마음, 빛나는 재능,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 이 모든 것이 당신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께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체중과 외모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보세요. 대신 당신이 누군가에게 보여준 친절, 당신이 이뤄낸 작은 성취, 당신이 가진 특별한 재능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손을 내밀어 주세요. 전문가와의 상담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더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용기 있는 첫걸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그렇습니다. 


오늘도 어디선가 거울 앞에서 한숨 쉬고 있을 누군가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있는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당신의 여정에 따뜻한 봄날의 햇살 같은 희망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례 및 예시는 내담자의 동의를 구하고 쓴 사례입니다. 비밀 보장을 위해 신상정보는 각색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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