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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Nov 28. 2024

답이 없다는 게 답일 때

심리학자의 사유노트

여섯 살 아이가 왜 하늘이 파란지 묻는다. 열두 살 소녀는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고민한다. 서른 살의 직장인은 이 길이 맞는지 밤새 생각한다. 나이와 상황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답'을 찾아 헤맨다.


이런 모습은 우연이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체계적으로 '답 찾기'를 훈련받아왔다. 유치원에서 색칠공부를 하며 선 밖을 넘지 않는 법을, 초등학교에서 구구단을 외우며 정확한 답을 찾는 법을, 중고등학교에서 수많은 시험을 치르며 정답을 고르는 법을 배웠다. 대학에서는 더 복잡한 문제들을 다뤘지만, 여전히 우리는 '옳은 답'을 찾아야 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이 습관은 계속된다. 회사에서는 매출 목표 달성을 위한 해답을 요구받고, 연인과는 관계의 매뉴얼을 찾으려 하며, 부모가 되어서는 완벽한 육아 방법을 갈구한다. 심지어 취미생활에서조차 우리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 헤맨다. 등산을 가도 가장 효율적인 코스를, 요리를 해도 완벽한 레시피를 추구한다.


이렇게 수십 년간 훈련받은 '답 찾기'는 우리의 DNA에 깊이 새겨진다. 마치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인생의 모든 순간에 정답이 있을 거라 믿게 된다. "이 회사를 그만둬야 할까?", "이 동네로 이사를 가야 할까?", "이 시점에 결혼하는 게 맞을까?" 모든 고민에 흑백논리로 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퍼즐은 지금까지 풀어온 문제들과 전혀 다른 종류라는 점이다. 시험지의 답안은 채점 기준이 명확하지만, 인생의 선택에는 그런 절대적 기준이 없다. "좋은 직업"이란 무엇일까? 연봉일까, 적성일까, 안정성일까? "성공한 삶"의 기준은 또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마치 만화경처럼 보는 각도에 따라 계속 변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토록 답을 찾으려 할까? 심리학자들은 이것이 불안을 통제하려는 본능적 시도라고 설명한다. 마치 어둠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이불속에 숨는 것처럼, 불확실한 현실을 피해 생각이라는 안전한 동굴로 도망친다. 또는 복잡한 현실의 문제들을 피해,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고민으로 도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강박적인 답 찾기는 종종 역효과를 낳는다.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할수록 불안은 커지고,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더욱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현실에서 멀어진다. 마치 모래성을 쌓는 것처럼, 더 높이 쌓으려 할수록 무너질 위험은 커진다. 결국 이는 더 큰 답답함과 초조함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


이는 마치 미로 속에서 필사적으로 출구를 찾는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다. 더 열심히 찾으려 할수록 더 깊이 길을 잃는다. 때로는 잠시 멈춰 서서, 지도 없이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이것이 단순히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깊이 있는 성찰과 고민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때로는 완벽한 답을 찾으려는 강박을 내려놓고, 삶이 가진 본질적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질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답을 찾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지혜다.


삶은 어쩌면 정답이 있는 수학 문제가 아니라, 끝없이 변주되는 재즈 연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완벽한 악보 없이도, 즉흥적으로 흘러가는 선율 속에서도 우리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 불확실함 속에서 예상치 못한 기쁨과 깨달음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더 나은 질문들을 하게 되며, 때로는 답 없음이 답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적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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