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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l 05. 2022

탄수화물 러버는 그렇게 좆밥이 되었다

점심시간 구내식당 안은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과 혼자 밥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편한 동료와 먹는 그룹도 있지만 상사와 먹는 그룹도 있었다. 그중 상사와 먹는 그룹 중 테이블 위에 냅킨과 수저 젓가락을 챙겨주고 있는 여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좋아서 하는 행동일까? 아니면 누군가 하길래 자연스럽게 하게 된 걸까? 눈치 보고 머리 쓰는 인간관계에 골치 아픈 것보다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현재 크라우드워커다. 출근하면 일을 시작하고 내가 맡은 업무만 하면 된다. 동료들과 소통하고 상사에게 아부를 떨며 정답이 정해진 도돌이표 회의를 하는 일은 없다. 물론 꼰대들의 대환장 파티인 회식도 없다. 그래서 이 일을 선택했다. 사람으로부터 자유롭고 일만 집중하고 싶어서. 계약이 끝나면 다시 일을 구하고 면접을 봐야 하는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그나저나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준 게 언제였더라?


회사에 다니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름이 불린다. 상대방이 이름을 부를 때의 목소리 톤과 억양, 미세한 끝 음 처리, 그 후 길게 내쉬는 깊은 한숨. 다음에 올 말을 예고해준다. 이름이 한 번 불릴 때마다 아름다움은 빛나지 못한 채 괴괴히 저물어 간다. 그리고 속으로 목놓아 외친다. 제발 부르지 마라. 날 부르지 마. 하지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난 그에게로 가서 좆밥이 되었다.      


누구인가? 누가 감히 신성한 밥 앞에 좆을 붙였어? 무엄하구나. 밥이라는 고귀한 것에 상스러운 말을 붙이다니. 세종대왕님이 아니 여주 임금님이 아시면 크게 성을 낼 것이다. 그렇다. 나는 회사 생활 내내 누군가의 좆밥이었다. 그 슬픈 연대기를 모두 적어볼까 하다가 화딱지가 나서 안 되겠다.

굳이 안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술 땡기는 저녁을 만들 수는 없다.      


수많은 빌런들이 날 좆밥 취급했지만, 그중 생각나는 일화를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슬픈 일이 있으면 참는 나를 불편해하며 못된 말을 하면서 울리려고 애쓴 인간. 고약했다.    

  

-남들에겐 친절한 척하지만, 실상은 불만 덩어리다. 커피 한 잔 사러 갔는데 잠시 자리 비웠다며 아르바이트 학생 앞에서 소리치며 면박 준 인간. 너 때문에 폭식 왔다. 나쁜 년.     


-휴가도 일 년에 몇 번 주지 않았으면서 그마저도 본인이 정하는 날에 가라고 협박한 인간. 정말 가관이다. 내가 5년을 넘게 버틴 게 용하다.     


-가족 같은 회사? 가 좆같은 회사! 이봐! 최씨 넌 모든 날 모든 순간 날 좆밥 취급했어. 두고봐 내가 너보다 잘살 테니까.     



이제는 누군가 날 좆밥 취급한다면 그 좆을 크게 걷어찰 거다. 좆이나 먹으라 하는 심정으로. 좆이 사라진 맛있는 밥을 먹으며 남은 날을 살아야지.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배달의 민족이라고요?

에헴! 한국인은 역시 밥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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