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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l 07. 2022

동굴에 숨어든 동물 한 마리

5월입니다. 바야흐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봄입니다. 초원에는 푸른 풀들이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해가 솟았네요. 또 날이 밝았습니다. 여기 동굴에 숨어든 특별하고 고귀한 토리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어두웠던 동굴에 햇살이 스며듭니다. 눈을 껌뻑이며 잠시 주위를 살핍니다. 그리고 무거운 몸을 일으킵니다. 누웠던 자리를 부지런하게 정리하고 있네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습니다. 오늘은 단백질 섭취를 위해 육식을 택했습니다. 초식보단 주로 육식을 하는 편입니다. 자신의 동굴 한쪽에 보관한 먹이를 꺼냅니다. 발걸음이 가벼운 게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먹이는 며칠 전 동굴 밖에서 사냥에 성공한 것입니다. 토리는 그것을 배불리 먹습니다. 허기가 졌는지 꽤 방대한 양의 먹이가 뱃속에 저장됩니다. 토리는 식성이 좋기로 소문난 동물입니다. 식사가 만족스러운지 동굴이 울리게 그르렁댑니다.      


토리는 동굴 옆 물가에 가서 몸단장합니다. 동굴 밖에 나가지 않는 날에도 몸단장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결코 짝짓기를 위한 몸단장은 아닙니다. 나른해진 몸을 이끌고 햇살이 들어오는 자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군요. 눈꺼풀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것을 보니 잠이 오나 봅니다. 토리는 부지런하지만 게으른 동물이라는 소문이 진짜인 것 같네요. 그러나 이내 다시 눈을 뜨고 생각에 잠깁니다. 동굴 밖 동물들의 무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토리는 먹고 먹히는 야생에서 살아남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치열했던 초원에서의 공포를 뒤로하고 자신의 동굴에서 잠시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이곳은 토리에게는 안전한 쉼터이자 놀이터입니다. 청년기가 지나자 홀로 세상에 던져졌습니다. 몸집이 어른 동물만큼 커져서 독립한 것입니다. 자신을 노리는 포식자들 틈에서 몸을 낮추고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 먹힐지 모릅니다.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며 목숨을 겨우 지켜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 밤이 지나면 다시 동굴 밖으로 나가 야생으로 가야 합니다. 먹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동굴 밖은 빠르게 변해가고 그곳은 위험합니다. 경계를 늦춰선 안 됩니다. 토리는 야생의 무리로 들어갈 때 굉장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두렵다고 동굴에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먹이를 찾아야 합니다. 사냥해야만 합니다. 자연의 약자로 태어난 동물은 다른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을 스스로 알아가야 합니다. 강해져야 합니다. 토리는 오늘도 무리에 속하지 못한 채 혼자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가 편해 보입니다.     


추운 지방에서 태어난 동물이라 더위에 약합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동굴 안 온도가 빠르게 올라갑니다. 토리가 힘겨운 듯 연신 혓바닥을 내밀며 괴로워합니다. 앞으로 더위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입니다. 곧 우기가 찾아옵니다. 우기가 지나면 끔찍한 폭염이 닥칠 것입니다. 지구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서 사라져가는 것들이 늘어납니다. 그 생각을 하면 토리는 털이 곤두설 만큼 두렵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몇 해 전부터 동굴 밖 상황이 심각합니다. 극심한 병이 퍼져서 동물들의 개체 수가 빠르게 줄어가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고 힘없는 약한 동물들이 가장 많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토리는 동굴에서 초원을 향해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동물들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땅거미가 내려앉았습니다. 토리는 내일을 준비합니다. 발톱을 다듬고 사냥을 생각합니다. 이빨을 숨기고 때를 기다립니다. 지금은 힘을 기르는 중입니다. 동굴 밖을 당당하게 나가서 초원을 힘차게 달릴 날을 기다립니다. 토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동물인지 말입니다. 언젠가 안전한 무리 속에 합류하여 그들과 함께 살 수 있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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