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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l 11. 2022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새벽에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지 마세요!!!

CCTV 녹화됩니다.

자꾸 그러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여기는 일반 가정집입니다.


내가 사는 옆옆옆집의 문 앞에 경고문이 붙었다. 흰색 종이 위에 써 내려간 빨간 글씨가 주인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침입자가 시도 때도 없이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을 갔나 보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방 안에서 홀로 두려웠을 누군가가 걱정되었다. 이곳은 지하철역과 가까운 도시형 주택으로 2층부터 14층까지 총 190세대가 살고 있다. 모두 원룸이다.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작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으며 많은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그런 곳이다. 안전하지만 안전하지 않다.


경고문을 붙인 사람처럼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이사 온 지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그때는 무서워서 배달 음식도 시켜 먹지 않았다. 잠이 막 들던 새벽에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새벽에도 배달 기사가 오는 경우가 많아서 공동현관 호수를 잘못 호출한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심장은 백 미터 달리기를 막 마친 사람처럼 뛰었다. 조심스럽게 인터폰을 확인했는데 공동현관이 아니라 우리 집 문 앞 초인종이었다. 화면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 무섭고 겁이 났다. 그날 난 인터폰 전원을 꺼버렸다. 밤새 잠을 설치다 겨우 잠이 들었다. 기억이 희미해질 때쯤 이번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다.


‘똑똑똑’

두 번째 노크가 들리자 난 인터폰 전원을 켜고 밖의 상황을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두꺼운 철문이 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고 있다. 문을 열고 밖을 나서면 또 다른 세상이다. 안전하지도 불안전하지도 않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안전고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실천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불안함을 껴안은 채 삼 년이 흘렀다. 작년 어느 날 생각에만 그쳤던 것이 실행으로 이어졌다. 철문에 이중으로 된 안전고리를 단 것이다. 철문과 함께 나를 지켜줄 안정한 장치가 필요했다.


기사님은 크고 무거운 공구 상자를 든 채 방문했다. 그는 보기에도 꽤 묵직한 전동드릴을 손에 들고서 숙련된 솜씨를 과감하게 드러냈다. 안전고리는 십 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철문에 고정되었다. 이토록 간단한 작업을 왜 이렇게 미뤘을까 후회가 되었다. 굳게 닫힌 철문을 바라보며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꼈다. 안전고리도 부족해서 스마트 문 열림 센서도 주문했다. 안전고리가 설치된 날 센서도 센스있게 도착했다. 누군가 허락도 없이 내 문안으로 들어오려 할 때 경보음이 울리고 알림이 휴대전화로 전송된다. 의지할 것이 한꺼번에 두 개가 생긴 셈이다.


문안에서는 안전해졌다. 이젠 문밖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안전장치를 찾아봐야겠다.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해칠 수 없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과연 그런 안전장치가 있기는 한 걸까? 셀 수 없이 늘어난 상처 자국 앞에서 결국 맘속에 두꺼운 문 하나를 만들었다. 문고리를 두 손으로 붙잡고서 생각한다. 얼굴 하나 겨우 보일 정도로 문을 열고서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눈알을 힘차게 굴려댄다. 이대로 닫아야 하나? 아님 좀 더 열어도 되나? 문밖을 나섰지만, 또 다른 문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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