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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l 20. 2022

어설픈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별 다른 것 없는 하루였다. 배가 고파서 눈이 떠졌다. 이불을 정리하고 샤워했다. 냉장고를 털어 아침을 먹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보낸 일을 처리했다. 무선 청소기의 먼지 통을 비웠고 두 개의 봉지를 버렸다. 버려진 봉지 사이에는 밤사이 점들이 더 늘어나 있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방금 그친 비로 거리는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며칠 동안 더웠던 걸 생각하면 오늘은 딱 좋은 날씨라고 생각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땀이 나질 않았다. 바람은 살짝 쌀쌀했고 스칠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먹구름 사이로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보였다. 설레는 풍경을 눈으로 쫒으면서 걸었다.


날이 좋다는 핑계로 집 앞 마트가 아닌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마트로 갔다. 입구에서 장바구니를 챙기고 생각했다. 내일 아침에 뭘 먹지? 메뉴를 정하지 못한 채 마트를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빠르고 쉽게 먹을 수 있는 냉동식품 코너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냉동 볶음밥 7개 13,400원이라는 라벨이 보였다. 잠시 고민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장바구니에 냉동 볶음밥을 하나씩 담기 시작했다. 일주일의 아침이 해결되었다. 오랜만에 온 마트에는 셀프 계산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셀프 계산대로 인해 직원의 수가 줄었다. 소량을 구매하는 사람으로서 셀프 계산대는 편하다. 기다려도 되지 않고 혼자서 할 수 있으니까. 이젠 어디를 가도 키오스크로 주문해야 한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늘어났다.


잠깐의 외출로 울적한 마음이 누그러졌다. 대단한 추억 하나 생기지 않은 그런 하루다. 평범한 나날의 연속이다. 요즘의 난 이렇게 지낸다. 머리는 시끄러울지 몰라도 일상은 적막했다. 크게 웃을 일도 울 일도 화낼 일도 없다. 지루하지만 편안하다. 혼잣말이 늘었다가 줄었다. 외롭지만 혼자가 편하다. 다그치다 다독여준다. 놀라운 일이 벌어지길 꿈꾸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빠르게 깨닫는다. 상상하다가 현실로 돌아온다. 달콤한 꿈 하나 꿨다며 실없이 웃는다. 그저 더 나빠지지 않기를 살며시 바라본다.


오늘도 별일 없이 살았다. 꼭 해야 할 일을 했고 덥지 않은 날씨에 덤으로 예쁜 하늘을 봤다. 어젯밤 먹고 싶었던 프렌치 토스트를 만들어 먹었다. 인센스 스틱을 피워놓고 오늘을 기록했다. 집 안에 퍼진 향을 맡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어설픈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평범한 하루가 모여 다정한 나를 만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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