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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은 Oct 09. 2020

피'해(海)

<대유행병의 시대>  서평


세상에 종말이 찾아온다는 예언은 늘 반복됐지만, 중요한 건 '정말로' 종말이 오는지 여부가 아니라 '언제' 오는가이다.


마크 호닉스바움, <대유행병의 시대> 중




책의 주요 구성과 내용은 이러하다.


한 챕터당 다루는 유행병이 하나 있고 그것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시기에 어떤 곳에서 발병되었고 어느 가족이 어떤 증상을 보이며 어떤 경로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이 원인을 알아내고 백신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방역당국과 공무원들의 행동 명령과 주민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모습, 바이러스가 사라지고, 생기며 구체적인 예시까지. 그 안에서 어떤 연구자가 어떤 희생을 했고 어떤 일까지 했기 때문에 해결된 일, 바이러스와 다투는 와중에서도 일어난 비리들. 어떤 경로로 어떤 사람들이, 어떤 공통점을, 누구와 접촉하여. 그렇게, 그리 되었는지까지도.


숱한 역사에서 유행병은 우리와 멀지 않다. 우리의 조상은 우리보다 많은 유행병을 겪으며 살아냈다. "원래 전쟁은 질병이 발생하는 근원이 된 것도 사실이다."힘 빼기 식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은 건, 칼에 찔리거나 총알과 활에 맞은 사람과 동물들만은 아니었다. 전쟁으로 깨우지 않아도 되는 바이러스를 일으키고 전 지역의 생태계에 위협을 가했다. 책은 유행병의 시작과 기록, 인플루엔자균 발견, 스페인 독감, 페스트, 앵무병, 재항군인병, 에이즈, 사스, 에볼라, 지카 바이러스, COVID-19에 이르기까지의 바이러스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말로 전해 들은 얘기는 이 책 앞에서 이제 쓰레기통으로 둥글게 만들어 던지기를 바란다.





'알려진 지식'과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지식'




다른 바이러스가 침투한 시대이다. 앞전 시대와는 다른 바이러스를.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생각의 길을 따라가 보자면 바이러스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과 혼란, 대책, 백신이 나오기까지의 방역 대책과 사람들의 태도와 협조, 이 고통을 지혜롭게 해결해가는 장면을 익히기 위해서이다.


다른 시대를 살아도 처음 보는 바이러스와 원인균 때문에 공통점은 사람들은 분명 피해자이고 가짜 뉴스는 팽배하고 보건당국, 국가는 정확한 원인을 밝히기 전 퍼진 사태에 대해 '공포 조장'을 우려하며 언론과 싸운다. 이 안에서도 비리는 일어나고 누군가는 득을 보며 1%도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 99%는 모든 행동이 제한되고 감정과 생각과 마음과 말까지도 일상처럼 기능을 해낼 수 없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죽어서 희생되는 의료계 사람들과 공무원들은 마지막 힘을 짜내 남은 사람들을 살리려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며 우울과 고통을 반복하며 모두를 지켜낸다. 이때다 싶어 나오는 비릿한 인간들과 파렴치한 사건을 터뜨리는 말종들. 가짜 뉴스로 많은 사람이 죽고 서로를 미워하고 나서야 많은 확진자들의 협조로 백신을 개발하고 역학조사로 가족을 지킨다.





감염질환은 오래전부터 소문과 혼란의 원천이었다. 원인균이 밝혀지지 않거나 불확실할 때 병에 관한 정보가 감춰지면 소문과 그에 뒤따르는 공포는 삽시간에 제멋대로 퍼질 수 있다.



코로나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추측과 개소리들이 난무했고 때문에 지구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물론 중국에서 일찌감치 감추는 게 많은 건 확실했다. 자신의 나라에 대해 사실이든 아니든 퍼져나가거나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책임감은 강하지 않은 편이니 말이다. 잘못은 중국에만 있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이나 일본을 보자면 코로나 19의 확산속도와 증가율을 전 세계인이 똑바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 수를 숨기거나 은폐하며 "우리나라는 확진자 수가 적으니 안심하십시오!"라는 참신한 소리를 한 결과 무참히 다른 나라들에게 욕을 먹었고 수많은 시민과, 의사, 병원 관계자, 공무원들이 희생되었다. 덕분에 감추는 것아 덕이 아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은 밝히는 나라에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전염병'이라는 말이 처음 입 밖으로 나왔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박쥐 술, 말벌 술, 중국의 대공황적 지구멸망설, 미국의 중국 경제 의식적 위협 바이러스 증후설 등등. 숱한 뉴스에서 많은 의혹과 가짜 뉴스들을 체크해 주기 위해 감염 내과 교수들을 데리고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교수들은 다급하면서도 침착하고 때로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김치를 먹는다고 코로나 19가 낫는다는 것은 명확하게 가짜 뉴스이지만 아직 그 원인을 알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때문에 저희는 이 원인 군을 해결하기 위한 백신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여러분들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마스크를 쓰는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해주시고 불가피한 외출 외에는 바깥 활동을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많은 의료인들이 밤낮없이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두렵지만 저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짜 뉴스에 현혹되지 마시고 안전한 곳에서 있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침착한 목소리. 안정적이면서도 호소하는 교수들은 가벼운 말로 시작했다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가짜 뉴스를 똑바로 짚어주었다. 왜냐하면 잘못된 정보가 얼마나 큰 공포를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을 학살시키는 것인지 바이러스와의 전쟁 최근단에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오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은 평범함이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대유행병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피해자이다. 바이러스 하나로 공포와 질겁을 반복하며 평안함을 유지할 수 없는 것, 내 감정과 움직임을 온전히 내 것으로 행동할 수 없는 자유의 제한, 인생에서 가장 큰 암흑기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생겼다.

더불어 이 말은 블랙이 되고

색깔을 감정으로 읽는 또 다름이 시작되었다.

의심한다. 걸렸을까? 콜록콜록. 어? 코비드 19? 상상 코로나다.

나는 최근 코비드 19 최극단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진자가 다수 나온 곳에서 일한 적이 있다. 페이스 실드와 비닐장갑, kf94까지. 완전무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존의 대상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던 물건과 낯선 타인들로 나를 보호한다. 그리고 또 의심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국가에 나의 생명권을 보존해달라 요청하였다. 우울증에 걸렸을 때는 나를 내버려 두길 바랐으나 더는 그러지 않으므로 바이러스 따위로 죽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더 싫은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옆을 피하는 것, 더불어 그들의 얼굴이 보이고 자가격리를 하며 불과 50cm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 하나 사이에 두고 마스크를 끼고 장갑을 끼고 영상통화를 할 수밖에 없는, 그마저도 화장실을 가면 다들 나를 보며 입과 코를 급히 막는, 내가 같은 공간 안에 있다는 게 이토록 미안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게. 끔찍했다. 단대 학장님은 불안한 발열체크자(직원)들을 위해 검사를 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학교와 중본의 회의는 길어졌고 마침내 우리는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코로나 19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확진에 대한 공포는 없었다. 오히려 우리를 찍으러 오는 방송국 카메라에 어린아이처럼 휴대폰을 들었고 하루를 자가 격리하였다. 그나마도 자취를 하는 직원들은 휴가였으나 가족과 함께 사는 직원들은 이전 나와 같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유쾌했던 우리 집은 '죄수번호 000 배식받아라."에서 그쳤지만, 다른 집들은 어떤 반응으로 각자 서로를 걱정하며 며칠을 보냈을까. 빠르게 나온 결과로 모든 직원은 '음성'이 나왔다. 코로 들어오는 면봉 하나, 목구멍을 건드는 면봉 또 하나, 독감 검사와 상대적으로 기분이 나쁘다 혹은 아프다 등을 비교하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능동감시 대상자가 되었다. 음성이기는 해도 검사를 받는다면 능동감시 대상자가 되는 것이다. 일상에서 생활을 하다가 혹 발열 증상 혹은 코로나 증상이 있으면 연락을 하는 것인데, 생활 반경에 제한을 받지 않으며 일터에서 근무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자가격리 대상자 외 사람들 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 추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저번에 겪었던 그 공포가 너무 급작스럽고 스스로를 바이러스 취급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과 바이러스의 기능이 반반 섞여있어 괴로운. 다시는 겪어보고 싶지 않은 소중한 사람들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



가짜 뉴스를 체크하고 친구들을 멀리하고, 친구들이 멀리하고, 가족이 소중하다는 걸 인식하게 되고, 나의 젊음이, 그 활동이 얼마나 반경이 넓고 자유로운지, 장난스럽고 아무렇지도 않은 마음이 얼마나 철이 없는지를,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의 걱정과 떨리는 목소리를 느끼게 되는지. 고작이라 말할 수 없지만 이 짧은 기간 안에 친구와 그냥 사람과 가족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명확히 나누게 되는.




전염병은 세상에 다시 나타날 수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왜 그런지 우리는 파란 하늘에서 뭔가가 뚝 떨어질 수 있다고는 잘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지난 역사에서 전염병은 전쟁만큼이나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전염병과 전쟁은 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이 책을 읽어보려는 사람들이 이 리뷰를 읽을 수도 있으니 말한다. 코로나 19를 겪고 있는 우리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한 번쯤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마 책을 읽으며 비슷한 패턴의 모습이 꽤 구체적으로 형상이 남을 것이다. 우리는 바이러스의 생성과 해결까지의 단계 중 어느 과정을 겪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더불어 바이러스로 인한 사람들의 피폐한 모습과 지금 느끼는 이 불편함과 공포에 공감을 하고 감정적인 해결책을 찾고 싶다면 알베르토 카뮈의 <페스트>까지 읽어보기를 권한다. <대유행병의 시대>는 사실을 기반으로 모든 기록을 글로 전한다. 감정이나 교훈은 없다. 뉴스를 읽듯 정보의 나열이다. 두 권을 다 읽는다면 <대유행병의 시대>를 읽고 지금 세계는 어떤 단계에 있는지 확인하고 <페스트>를 읽으며 나약한 우리가 강인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대유행병의 시대>가 재미없고 <페스트>가 재밌는 것도 한몫한다) 아무쪼록 우리는 피의 2020년을 보내고 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들이 우리를 덮쳤고 그 파도는 쉽게 마르지 않고 퍼져나가 우리를 적시려고 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파도에서 어느 곳으로 가 스스로를 지키며 당신의 사랑을 지켜낼지는 이제 당신의 손과 마스크에 달려있다.









피'해(海): <대유행병의 시대>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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