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 로즈 캐버너, <패거리 심리학> 서평
“사람들은(......) 확실한 것을 간절히 원한다. 사람들은 확실한 것을 갈구하고, 원대하고 감동적인 진실을 원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진실하고 확실한 것들을 갖춘 조직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반항자와 이단자가 생기더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바람이 깊이 내재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가 훨씬 더 만족스럽다.”(47%)
“정서도 대면 접촉과 온라인, 모두를 통해 확산된다. 사회적 타자와 정서를 공유하면 당신만이 아니라 그 타자도 감정적 반응이 더 뚜렷해질 수 있다.”(12%)
“우리 자아는 허구”(15%)
우리가 서로 협력하기 시작하며 점점 더 큰 집단을 형성해가자 문화가 잉태되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가장 먼저 구축한 것은 ‘공종의 상호작용(sheared intention)”
(18%)
“사회적 테크놀로지의 두 번째 장점은 우리에게 일상의 삶에서 접촉할 수 없는 공동체들을 온라인으로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공동체는 많은 이유로 공백을 메워준다.(30%)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그렇지 않다. 온라인에서는 멀리 떨어져서도 컴퓨터 자판을 몇 번 두드리면 모욕을 가할 수 있다. 게다가 표적이 컴퓨터에서는 아바타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욕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다. 이런 변화로 분노가 분노를 낳고 사람들이 더욱 방종할 거라고 염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트위터에는 ”그런데 오늘은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거지?“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기지 않았는가.”(33%)
“우리는 내집단보다 외집단에 속한 사람을 비난하며 그를 희생양으로 삼을 가능성이 더 크다. 많은 연구에서 밝혔듯이, 일시적으로 좌절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헐뜯게 되고, 죽음의 공포가 심화되면 내집단의 결속력(예: 애국심)이 강화되고 외집단에 대한 적대감(예: 외국인 혐오증)이 격화된다.”(38%)
“왜 어떤 사람은 형언할 수 없는 시련을 견뎌내고 상대적으로 빨리 회복되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악몽의 숲에서 방향을 잃고 위협에 과민하게 반응하면 그 후에도 끝없이 트라우마에 시달릴까?(54%)
“진정으로 깨어있는 사람, 진정으로 중요한 예술가와 사상가는 소수에 불과하고, 집단의 의견을 전달하는 중계인들만 무수하다는 의견에 내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의견에는 몰상식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편견이 담겨있는 듯하다. 또 진지한 에술가는 사회규범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고, 개인적인 충실성, 성교 전 동의 등 사솔한 것이란 이유로 모든 관심을 무시한 체불 꽃처럼 앞장서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우리가 개인의 행복을 삶의 목적으로 추구한다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내 생각이다.”(71%)
“요즘 젊은이들을 눈여겨보면, 부당한 순응을 거부하면서도 함께 공존하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듯하다.”(83%)
“해독제를 복용하라: 감정을 조절하라. 첫째로 두려움을 멀리하라.(..) 둘째로는 희망의 꽃의 활짝 펴라(..) 셋째로는 분노를 이용하되 분노에 사로잡히지는 마라.”(83-84%)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메워가며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키워가지 못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의 삶을 방식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훨씬 더 각박하게 살았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과 교류하라. 진영에서 빠져나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보라.”(83%)
“구역질 나는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그의 견해도 어둡고 축축하며 숨겨진 곳에서만 자라고 번창합니다. 따라서 그의 견해가 환한 곳에 나와, 더 나은 견해와 경쟁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햇살이 최고의 살균제이니까요. 세상에 노출되고 보여서, 분석되고 조롱거리가 되면 그런 견해가 자연스레 힘을 잃지 않습니까?” 하지만 정말 그럴까?(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