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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지금 내 나이에 나를 낳았다. 엄마의 어릴 적 꿈 얘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어서 지금 되고 싶은 게 뭔지 묻지 않는다.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아니 분명 중요한데 묻지 않는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냐고.
며칠 전 옷장을 갔다 버렸다. 닦을수록 곰팡이는 모습을 숨기고 물티슈를 타서 옆으로 옮겨갔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니 나무가 썩기 시작했다. 냄새가 나고 물이 고이고 개미보다 작은 벌레가 떼 지어 다녔다. 원인 모를 간지러움에 등을 긁어보려고 해도 어릴 적만큼 유연하지 못하다. 내 등을 긁어주던 언니는 옷을 들추더니 '울긋불긋 많이도 간지럽겠다'며 옷장을 버리자고 했다. 인테리어를 업으로 하고 있는 집주인 아저씨께서는 그렇게 한참을 옷장을 분해하고서 집을 나섰다. 그리고 새로운 옷장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행거를 샀다. 아무 말하지 않았는데 아빠와 언니가 3일을 골라 샀다. 하지만 나는 똥손이다. 뭐든 부러트리고 망가트릴 수 있는 마이너스의 손. 더군다나 꽤 큰 행거를 시켰는데 아주 작은 행거가 왔다. 업체에 전화하니 잘못 보낸 거 같다고 했다.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다시 온 행거, 그리고 내게 내민 착불비 영수증, 다시 업체에 전화를 했다. 직원은 죄송하다고 했다. 사과를 받고 싶었는데도 아니라고 괜찮다고, 사과를 받았음에도 괜찮지 않았다.
설명서와 여러 봉, 할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나도 어려운 가구를 조립할 수 있는 금손이라는 걸 보여줄 계기가 왔다고 확신했다. 작은 책자에 적히고 그려진 대로 부품을 체크하고 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순서대로 조립을 하는데, 선반 구석이 찍혀있고 봉을 끼울수록 쇳가루가 나왔다. 안 나온다고 국산이라고 자부하며 고른 제품이었다. 머리가 아팠다. '그래. 선반이야 뒤집으면 안 보여. 행거는 뭐, '
조립하고 끼우고 돌리고 퉁탕거리며 2시간이 지났다. 지름은 있는데 길이는 없는 설명서에 그림을 보고는 도저히 완성본이 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선반의 봉이 천장을 뚫고 윗집 이웃을 만나야 했다. 가로 봉이랑 여겼던 봉을 세로에 넣고 가로에 세로 봉이라 여긴 걸 넣으니 그림 같은 모습이 나타났다. 고정형 행거라고 적혀있는데 자꾸만 흔들리고 기둥은 넘어갔다. 그 시각 밤 11시 50분이었다. 페이스톡을 했다. 언니가 받았고 나는 안 된다고 하다가 소리 내 울었다. 초등학생 이후로 이렇게 울어본 건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였다.
좋았다. 온다고 했다. 그 말만 듣는데도 좋았다. 눈물이 뜨겁다는 건 안구에서 느껴지는 게 아니라 식도를 타고 내려올 때 알게 되니까. 토요일 저녁, 아빠와 언니가 한달음에 부산에 왔다. 그날따라 차가 막혀 4시에 출발한 차가 7시가 지나서야 도착했지만 10시에 올 줄 알았는데 그 정도쯤이야. 아빠는 집에 오자마자 어깨를 으쓱대며 꽤 긴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며 강의를 진행했고 혼자서는 도저히 이 행거를 완성할 수 없다는 교훈을 보여줬다. 그리고 저혈압에 체중까지 준 나에게 DIY는 DIE를 맛볼 뻔했다는 결론까지도. 아끼고 아껴 모은 돈으로 저녁을 사고 투정도 부리고 아픈 곳을 말한다. 아빠와 심야토론을 보며 정세를 살피고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며 내 건강검진 결과와 아빠의 축농증 수술 후를 공유한다. 옛날 치킨과 어릴 적 먹던 똥집 튀김을 먹으며 추운 밤에 먹지도 않을 아이스크림을 사고 언니의 투정과 코골이 소리를 들으며. 새벽이 되도록 피곤하지 않은 게 얼마만인지. 떠나는 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다퉜던 언니와 같은 자세로 몸을 누이고. 아침에서야 아빠의 낮은 목소리에 잠을 깨고 언니의 장난으로 정신을 버쩍 차린다. 이상한데 포근하다. 시끄러운데 졸린다. 언니가 건넨 달고나를 받는다. "우린 깐부잖아." 이 한마디. 뚠뚠한 차를 보낸다. 아침 7시에. 사연 있는 새깔개에 눕고 새이불에 안겨서.
화장실 불이 나갔다. 케이스를 고정시키는 나사가 녹이 슬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추측은 가지고 있었지만 다이소에 뺀지를 팔지 않아 그 사실을 더 확고히 증명했다. 집주인 아저씨께 문자를 넣어야지.
된다고 생각했던 건 근래에 된 적이 없어서 화가 났다. 내가 나한테 기대하면 안 되는 걸까? 이런 난데? 기대하면 안 돼?
사람들은 내게 운이 좋다고 했다. sns나 라디오 등에서 하는 이벤트에서 여럿 당첨되었고 요즘도 그러니까. 근데 사실 나는 운이 좋은 게 아니라 몇천 분의 일의 확률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4천개 중 하나 나온다는 불량 보온밥솥을 받는 것 또한. 그래서 나는 이제 그 운이 필요하지 않다. 내게 운이라는 게 있다면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운이 내 꿈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얼마나 가혹한지 작은 사탕 하나 주지를 않는다. 꿈은 철저히 내 실력으로 이뤄내라는 것인지. 그게 무슨 뜻인지.
그래서 25의 나는 엄마의 25에 꿈을 묻지 않는다. 대신 엄마는 내게 말한다. 고생했다고. 내가 뭘 고생했냐고 반박하면 그럼 이제부터라도 노력하면 된다고 그럼 된다고 하루를 이틀을 말한다.
오늘은 엄마의 생일이다. 독도의 날이자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에 내가 엄마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다. 엄마는 내게 "사람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없어. 다만, 그걸 지켜서 언젠가 꺼내. 그 꿈을 이뤄. 그런 사람도 많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울라고 말하고 있다. 농담 섞인 목소리로 말해도 엄마는 어쩜 그렇게 내 얼굴을 읽는지 엄마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들키고 만다. 그런데 어떻게 안 울 수가 있겠어.
처음을 되돌아본다. 나는 이 꿈을 행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다고 했다. 그런데 당선되지 않았다고 내 노력과 작품을 의심하고 꼬집고 처박아뒀다. 뭐 얼마나 떨어졌다고? 뭐 거기서 얼마나 뽑히고 싶었다고.
이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나는 이 꿈을 지키고 소중하게 여기기로 했다. 이제껏 쌓은 작은 움직임을 묵히거나 무시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노력해왔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라 고생하지 않은 게 아니라 끊임없이 쓰고 겪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아직 쓰고 있어. 그거면 되는 게 아니라 계속 쓸 거야. 그러니까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어. 나는 쓰고 있어.
엄마, 생일 축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