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종합병원, 대학병원에서 수술실 간호사로서 9년을 일했지만 지금은 아이 셋을 둔 주부입니다. 아직도 수술실 관련 꿈을 꿀 정도로 애착이 있고 다시 일하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10년 가까이 일을 놓았었고 나이또 한 40대에 접어들었기에 결국 그 욕심은 생각만으로 만 끝이 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9년 동안의 수술실 간호사로서 경험하고 느낀 소중한 이야기들을 더 잊히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합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첫 출근날 지하철 첫차를 탔다. 집과 정 반대방향의 먼 거리였지만 곧 병원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출퇴근의 힘든 일주일을 견디게 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 또한 낯선 이곳이 처음이었기에 너무나 긴장이 되었다. 나에게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있었는데 어김없이 이 날도 그 증상이 나타났다. 다른 곳도 아닌 수술실에서 말이다.
출근 후 간단한 자기소개 후 일반 회사로 치면 직원 조회 같은 것을 하는데 20여 명의 간호사들이 모여 그 날 수술에 관련된 것들과 간호부 전반적인 내용들을 서로 인계하는 자리다.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할 선배 간호사들이 말하고 있는 와중에 나는 슬그머니 옆 간호사에게만 말하고 화장실에 다녀와야 했다. 인계 시간에 누구 하나 잠깐 화장실에 간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처음 온 신규 간호사가 자꾸 화장실을 들락거리니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이후로도 두 달여간 이래야만 했다.
수술 시작하기 전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내가스크럽 간호사(scrub nurse, 집도의 옆에서 수술에 필요한 기구들을 주며 수술에 직접 참여하는 간호사)로 수술 필드(operation field)에 있을 때는 너무나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다급하게 써큐 간호사(circurating nurse, 수술 필드 밖에서 수술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간호사)를 불러 손바꿈을 하고 화장실에 다녀오면 재빨리 다시 스크럽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 이후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는 장에 좋다는 유산균이며 온갖 좋은 영양제들을 챙겨 먹는 계기가 되었다. 수술실이 너무 좋아서 왔지만 장이 예민해서 이 일을 끝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한 적도 있다.
운이 따랐을까? 첫 직장 수술실에 입사했을 때 나의 대학 선배가 직속 간호사로 있었는데 그것은 나에게 있어 큰 행운이었고 9년간 수술실 간호사로 무사히 일할 수 있게 해 준 밑바탕이 되었다. 더군다나 매년 신규 간호사가 입사하는 게 보통인데 어찌 된 일인지 2년 동안 신규 간호사가 없다가 내가 신규 간호사로 입사하면서 귀한 신규 간호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모르는 게 있으면 선배 간호사들이 앞다투어 서로 알려주려 했고 그러고 나면 2차로 나의 학교 선배가 또 알려주곤 했다. 선배 입장에서는 내가 잘해야 학교 욕도 안 먹고 자기 또한 같이 인정받을 수 있었기에 더욱 열정으로 나를 가르쳤던 것 같다.
하지만 어딜 가나 한 두 명은 꼭 적이 있지 않은가. 이런 나를 안 좋게 생각하고 사사건건 지적질하고 톡톡 쏘며 말하는 간호사도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꼭 그 간호사 앞에서만 더 실수를 하는지. 그 간호사만 아니면 이 병원을 평생 다닐 수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간호사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간호사들에게도 그런 행동을 했고 결국은 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선배 간호사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걸 알고 나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한발 짝 뒤로 물러나 생각하니 그게 그렇게 크게 죽고 살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훨씬 많다는 것을 24살 어린 나이에 나는 이미 알아버린 것이다.
귀한 신규 간호사에 든든한 학연의 백그라운드까지 나의 사회 첫 시작은 남들보다 조금은 순탄했다. 학연, 지연 등 사람들이 왜 이렇게 이런 것에 집착하나 했는데 막상 내가 겪어보니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병원에 어렵게 취직해서 몇 달 일하고 그만두는 간호사가 제법 있는 편인데 나는 그만 둘 생각을 져버리고 큰 자부심까지 가지며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학교 선배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된다.
수술실 간호사는 수술 중에 계속 서 있게 되는데 크게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계속 서있으면 다리도 허리도 너무나 아프다. 종아리는 터져나갈 것 같고 발은 퉁퉁 붓고 첫 출근 후 일주일은 거기에 적응이 안되어서 밤마다 통증 때문에 울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엄마는 슬그머니 내게 와서 다리를 주물러주곤 했다. 엄마 속으로는 혹시나 내가 힘들어서 그만둔다고 말할까 봐 내심 걱정도 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다리 통증을 견디며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선배 간호사가 압박스타킹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신어야 수술실 간호사를 계속할 수 있다며 추천해주었다. '왜 이제야 말해주는 거야.' 정말 자세히 다시 보니 하나같이 그 압박스타킹들을 다 신고 있는 게 아닌가?
간호사들은 오래 서서 일하니 정맥류라는 병에 걸리기 쉬운데 특히나 수술실 간호사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장시간 서 있어야 하니 정맥류가 더 잘 생긴다. 나는 그렇게 9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탄력 압박스타킹을 신었음에도 정맥류가 생기고 말았다. 겨울보다 날이 더운 여름에 다리가 터질 것 같은 통증이 더 심한데 아마도 언젠가는 정맥류를 없애는 시술이나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다.
남들 모두 서울에 있는 빅(Big) 5 병원(서울대병원, 아산병원, 삼성병원, 신촌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에 입사원서 쓰고 면접 준비하며 전전긍긍하는 동안 나는 여유롭게 8급 간호직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수술실에 반해서 많이 힘들지 않은 종합병원을 택했고 1차 원서접수에서 합격하더니 2차 면접, 필기시험 등 순탄하게 모두 패스해서 동기들 중 두 번째로 입사하는 행운까지 얻었다. 나에게 기회는 그렇게 물 흐르듯 찾아왔고 나의 사회 첫 시작은 고맙게도 핑크빛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