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솔직히 나보다 손맛이 좋은 것 같다. 대충 뚝딱뚝딱하는데도 맛이 제법 훌륭하다. 그래서 나는 늘 아낌없는 칭찬을 해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남편 또한 나의 그런 칭찬이 힘이 되는지 가끔 요리를 해달라고 주문을 하면 바로 해주는 편이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주방은 나의 공간인데 떡하니 남편이 자리 잡고 있으니 나의 잔소리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기분 좋게 시작한 남편의 요리도 나의 잔소리로 인하여 마무리도 못하고 서로 싸우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기를 여러 번. 남편이 요리할 때면 나는 주방에는 한 명의 요리사만 있으면 족하다고 말하며 입은 꾹 다문 채 보조역할만 했다. 정말이지 잔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그런 순간들을 꾹꾹 참은 채 말이다. 결국 나의 그런 인내심이 지금의 남편을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정말 맛있는 경우가 많지만 맛이 없는 것 같은 경우에도 너무 맛있다고 호들갑을 해준다.
오늘은 둘 다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각자의 일을 하느라 저녁 7시가 되니 너무 배가 고파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나는 큰 아이 학원에 픽업을 가야 하는 상황. 다른 때 같으면 둘째, 셋째까지 다 데리고 가야 하지만 오늘은 남편이 일찍 퇴근한 탓에 맡겨두고 혼자서 홀가분하게 나갔다. 나가면서 남편에게
"여보! 오늘 떡볶이 하려고 재료 사다 놨는데 당신이 좀 요리해주면 안 될까? 나 배가 너무 고파. 당신이 해준 떡볶이 맛있는데."
역시나 남편은 자기가 요리하겠다며 나보고 걱정 말고 다녀오란다.
너무 배가 고픈 나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오자마자 떡볶이를 찾았다. 맛있는 떡볶이를 먹을 생각하니 너무나 행복했다. 내 입속으로 어묵이 하나 들어가는 순간 '어?'
속이 타들어가는 이 느낌.
"여보! 너무 매워!"
앗! 순간 나는 남편의 눈치를 봤다. 가끔 나도 열심히 요리를 해서 내놨는데 남편이 맛있다는 소리는 안 하고 싱겁다느니 짜다느니 이런 말을 할 때면 너무나 얄미웠는데 혹시라도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봐 남편 표정부터 살핀 것이다. 나는 이 상황을 수습하고자
"맵긴 한데 맛있어. 정말이야. 조금만 덜 매웠으면 더 좋았겠다."고 말했다.
싱크대 위를 보니 <화성인도 울고 갈매운 고추장>이라고 쓰여있는 통이 떡하니 있는 게 아닌가. 전에도 그 고추장으로 요리해서 자기도 매워서 못 먹겠다고 해놓고서는 오늘 그걸 깜빡하고 매운 고추장을 듬뿍 넣은 것이다. 안 그래도 나는 위와 장이 예민한데. 너무나 배고파서 떡볶이를 정말 많이 듬뿍듬뿍 먹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음에 속으로는 조금 짜증이 났다. 너무 배고프면 사소한 것에 너무 예민하지 않은가.
<문제의 고추장>
남편은 본인도 매웠는지
"고추장 조금 넣는다고 넣은 게 너무 많이 들어갔나? 맵네. 내가 다시 물 많이 넣고 덜 맵게 해 줄게."
급하게 나의 그릇을 가져다가 떡볶이를 냄비에 부었다. 물을 듬뿍 넣고 국물을 희석하고 있었다.
[ 남편이 요리한 떡볶이 ]
그래도 그렇게라도 수습한 덕에 나는 떡볶이를 조금 더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국물 덕에 양이 늘어난 떡볶이를 결국 우리는 남기고 말았다. 사실 국물을 희석하는 과정에 퉁퉁 불고 맛이 없어진 것도 남긴 이유 중 하나다. 남편도 오늘 일하느라 수고했을 텐데 나의 부탁으로 요리를 한 것에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다음에는 안 맵게 부탁해요.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