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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맘 Mar 05. 2021

엄마가 아프면

허리 디스크로 힘들었던 날

 



  2주 전쯤부터 허리 통증이 있었다. 워낙 근육이라고는 눈곱만큼 붙어있는 몸이었기에 자주 통증이 있어서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오른쪽 허벅지와 발바닥까지 너무 아픈 것이다.


  거의 모든 결혼한 여자들이 그러하겠지만 남편 자식 아픈 것에는 조마조마하며 호들갑이지만 자기 몸 아픈 것에는 관대하다. 나 또한 일반적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평범한 엄마이자 아내이기에 이러다 말겠지 하며 버텼다.


  이게 화근이었을까? 그동안 허리 통증이 종종 있긴 했지만 오늘 아침에는 꿈쩍도 못하게 허리가 너무 아팠다. 애들 기상시켜서 밥 먹여 유치원도 보내야 하고 당장 나도 씻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남편은 일찌감치 출근한 뒤였다. 몸은 90대 할머니처럼 슬로 모션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고개조차 숙일 수 없는 난감한 상황. 그렇다고 주변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도움을 청할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의 입만 앵무새처럼 떠들고 있었다.

  "일어나! 늦었어! 얼른 세수하고 양치해야지!"

열 번은 넘게 말해야 조금 행동에 옮길까 말까 하는 맏이. 나는 울화통이 터져 폭발 직전이었다. 매일 지각한다고 눈치 주는 유치원 큰 아이 담임선생님 때문이라도 지각은 그토록 하기 싫은데. 셋 다 겨우 일어나 씻고 옷을 입었다. 아침식사는 주먹밥으로 각자 비닐장갑 끼고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윗옷은 어찌어찌 갈아입었는데 바지와 양말을.. 아! 8살 딸에게 도움 요청을 했다. 입고 있던 나의 바지를 양쪽에서 8살과 7살 난 남매가 낑낑대며 벗기고 있었다. 어찌나 이 상황이 웃기면서도 기특하던지 미묘한 감정이 내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옆에서 보던 6살 막내가 자기가 엄마 양말을 신겨주겠다고 양 손에 내 양말을 들고 있었다. 늘 내가 보살피기만 했던 아이들이 반대로 나를 챙겨주며 외출 준비를 한 것이다. 5분 정도 걸리는 유치원까지의 거리를 15분 정도 걸려 느릿느릿 거북이걸음으로 데려다주었다.


  병원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어 기본요금 거리를 택시 탔더니 아저씨가 기분이 나빴는지 투덜투덜. 보란 듯이 나는 가는 내내 일부러  끙끙 앓는 소리를 더 냈다. 병원 문 앞에만 갔는데도 구세주처럼 반갑게 느껴지다니. 뭔가 병원에만 들어가면 허리 통증이 말끔히 사라질 것만 같았다.


  허리를 부여잡고 들어오는 나를 보며 간호사는

 "교통사고로 오셨어요?"

  의사는 원인을 알아야 한다며 X-Ray와 CT를 찍자고 했다. CT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찍어보는데 괜찮겠지? 검색해서 가장 가까운 정형외과를 찾아갔더니 요즘 시대에 흔하지 않게 X-Ray도 전산으로 연결되어있는 게 아닌 필름 그대로를 붙여놓고 설명하는 곳이었다. 촬영기사가 내 또래 정도 되는 아저씨였는데 쪽팔림이고 뭐고 계속 앓는 소리를 내결국

  "저기요. 저 손좀 잡아주시면 안 돼요? 일어날 수가 없어요."

  어찌나 남의 남자 손이지만 그 순간이 고맙던지.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환자가 뜸한 동네 병원이어서인지 의사는 앉아있기도 너무나 힘든 나를 앉혀놓고 설명을 10분 넘게 자세히도 해준다. 요추 5번과 천추 1번 사이의 디스크가 탈출되어 신경을 누르고 있다고 했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아! 아!"

이 세상 모든 통증은 내가 다 짊어진 것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애 셋 낳을 때도 이렇게 아프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물리치료실로 이동하며 먼 거리에 계신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꿈쩍도 할 수 없으니 며칠만 도와달라고. 웬 만해선 부탁도 잘 안 하는 큰 딸이 전화를 했건만 돌아온 대답은 지금 당장은 못 가고 이 틀 뒤나 오실 수 있다는 것이다. 내심 서운하기도 했지만 엄마도 일을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동생 또한 하는 일이 있어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도움 줄 사람이 없었나?


  울며 겨자 먹기로 남편에게 도움 요청을 했다. 최대한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 하원도 시키고 학원도 데려다주겠다는 것이다. 항상 남편이 육아에 무관심하다고 투덜대기만 했는데 오늘따라 남편이 달라 보이는 건 왜일까?

  

  그토록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던 부부도 병들고 늙어서 수발 들어줄 때 그토록 고마워하다는데 이게 그런 마음일까? 너무 앞서간 생각일지 모르지만 내 몸이 아프다 보니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몸의 중심인 허리가 파서 몸을 꿈쩍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든 생각은 일단 아이들 밥 먹이는 것, 씻기는 것, 집안일 등이었다. 내가 장기간 집을 비워야 한다면 누군가는 와서 나의 역할을 하겠지만 그 사람이 내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엄마가 아픈 것은 개인작은 문제가 아니라 한 가정의  큰 문제인 것 같다. 내가 건강해야 할 유는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엄마로서 아이들이 나의 부재로 갈 곳을 잃어 이리저리 찬밥신세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2021년 1월에 기록했던 글을 작가의 서랍 속에 저장해두었다가 이제야 세상에 내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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