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도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가 되었다. 아이보다 내가 더 설레는 건 왜일까? 내가 국민학교 입학할 때가 생각나서 그런 것 같다. 난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세대인데 지금 그 말을 들으니 초등학교란 말에 익숙해져서인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입학할 때만 해도 왼쪽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고이 접어 안전핀으로 고정시킨 아이들이 가득했는데 오늘날은 그런 아이들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정말 그때는 코흘리개 아이들이 많았다. 나 또한 코를 훌쩍대며 옷소매 끝에 쓰윽 콧물을 닦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옷소매 자락이 반들반들 거리는데 어휴 생각만 해도. 하하하!
교장선생님들은 왜 이리 훈화를 길게 하는지 그 자그마한 아이들을 운동장에 세워놓고 말이다. 운동장 한가운데는 아이들이, 그 주변으로는 학부모와 온갖 친척들까지도 둘러 서 있었다. 나 또한 엄마, 아빠를 비롯 고모와 할머니까지 온 가족이 총출동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 큰아이의 입학식은 사뭇 달랐다. 엄마, 아빠 손을 부여잡고 부잣집 도련님이나 공주님처럼 새것으로 모두 치장한 채 나타난 것이다. 예전처럼 코흘리개도 없었고 온 가족이 총출동한 집도 거의 없었다. 코로나 19로 부모와 함께하는 입학식 또한 생략되었다.입학식 기념행사는 조촐하게 각 반에서 한 시간 가량 진행하고 부모들은 아이들이 끝날 무렵 밖에서 기다리다가 기념촬영을 하라고 했다. 입학식을 진행하는 내내 우리 아이의 뒷모습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함이 조금은 씁쓸하다. 우리가 예전에 느꼈던 그런 가슴 뭉클한 감동은 느낄 수가 없었다.
유치원 가방보다 두 배 크기의 큰 가방을 메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아직도 아련하다. 반은 제대로 찾아갔을까? 제대로 자기 의사표현은 할까? 화장실은 제대로 갈까? 등등 유치원에서는 최고 높은 반이라고 뭐든지 척척 알아서 해줄 것만 같았던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제일 저학년이라 생각하니 다시 아기가 된 것 같다. 다른 부모들도 나랑 같은 생각이었을까? 아이를 들여보내 놓고서도 한참을 바라보며 서 있는 부모들이 제법 많았다.
나는 줄줄이 삼 남매를 낳은 덕에 연달아 졸업식과 입학식을 하는 행운을(?) 얻었다. 올해는 큰아이의 졸업식과 입학식이 있었고 내년에는 둘째의 졸업식과 입학식, 내 후년에는 셋째의 졸업식과 입학식이 예정되어 있다. 어쩌면 너무 빈번해서 지금 이 마음이 무뎌질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티 내지 않고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연기를 조금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