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 맘 Mar 26. 2021

회식은 꼭 필요했나

제3 화




  사람들은 의사나 간호사들이 술이 제법 셀 것 같다고 말한다.  술 센 사람들이 이 일을 하는 건지 이 일을 하다 보니 술이 세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술이 센 건 맞는 말인 것 같다. 물론 종교적인 이유나 건강상의 이유로 입에 술을 아예 안대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첫 병원에 입사하고 나는 체력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아침이면 화장실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고 퇴근 후에는 무슨 회식이 그렇게 매일 있는지. 결국은 회식하면서 앉아서 조는 일까지 발생했다. 친구들과의 자리라면 대충 둘러대고 빠질 수도 있었겠지만 병원 선배 간호사들과의 회식.  때로는 각 과들의 의사들과 수술실 간호사들함께하는 회식까지 포함해 일주일에 서너 번은 거의 회식이었다. 그들은 수술실 간호사들과 한 번씩이겠지만 우리는 각 과들마다 한 번씩만 회식을 해도 대체 몇 번인가!


  난 신규 간호사로서 져나갈 구멍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모 회식에 참해야 했다. 아니 다들 술고래들인 것처럼 우끼리 회식인데도 밥값보다 술값이 훨씬 많이 나올 만큼 마셔댔다. 그 가게를 전세 낸 것처럼 끊임없이 마시며 떠들어댔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꼴불견이 따로 없었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직장 내 회식문화도 많이 바뀌었겠지만 그때는 그런 분위기였다. 술을 못 마신다 해도 막 권하고 남자 과장들한테 술까지 따르라는 선배 간호사들의 명령 아닌 명령까지. 꼭 그렇게 해야 되는 줄만 알았던 참 바보 같던 사회 초년생 시절이 있었다.


  하루는 1차로 식당에서 술과 함께 곁들여 밥을 먹고 2차로 다름 아닌 나이트를 간 것이다.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이트라는 데를 가봤는데 내 정서상 오래는 못 있을 곳으로 여겨졌다. 물 흐린다며 다 늙은 과장들은 퇴짜를 맞기도 했지만 어떻게 구슬렸는지 안으로 들어오더니 결국 같은 테이블 자리에 앉게 되었다. 술이 얼큰하게들 취더니 갑자기 선임 간호사가 나테 와서 한마디 던졌다.

  "과장님이랑 부르스라도 춰야지. 뭐해."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법도 아닌데 법인 양 그렇게 다 늙은 배 나온 남자를 부둥켜안고 결국 부르스를 췄다. 옆에서는 큰 환호와 박수를... 나의 이 타들어가는 마음도 모르면서 말이다. 눈물까지는 흘리지 았지만 내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 이후로 수술실에서 괜히 그 과장과 마주칠 때면 어디론가 숨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하루는 회식 초에 어떤 과장이 대뜸

  "다들 소백산맥 알아요?"

모두 어리둥절해하자

  "내가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 줄게요. 소주, 백세주, 산사춘, 맥주  이 네 가지를 섞은 게 소백산맥입니다. 자아~ 한 작씩들 쭈욱!"

그것도 뭔가 속을 보호해줄 음식들이 들어가기도 전에 말이다. 아! 한 잔 들이켜니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고 곧 필름이 끊길 것 같은 이 느낌. 그렇게 두 잔을 연거푸  마시고는 난 그날 결국 기어 들어가고 말았다. 내 인생에서 지금까지 먹은 술을 그때 다 마신 것 같은 이 느낌.


  지금은 맥주 한 캔을  뜯으면 두세 모금 마시면 거부반응을 보이지만 나 또한 20대 때는 혈기왕성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대학병원으로 옮기고 경력이 쌓이다 보니 회식자리도 적어지고 싫으면 다른 핑계를 대고서라도 빠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병원보다 종합병원에 근무했을 때 더 잦은 회식을 했던 것 같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내세우며 단합을 핑계로 말이다. 그동안 느낀 건 못 간다고 이야기하는 그 순간만 잘 넘기면 그 뒤는 그 사람이 참석했는지 안 했는지도 관심 없어한다는 것이다. 부득이하게 참석할 자리는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가기 싫은 자리에 굳이 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내가 신규 간호사를 교육하는 프리셉터 간호사가 되었을 때도 후배들에게 회식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신규 간호사 시절 반 강제로 회식에 참석했을 때 기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고 선배 간호사들이 의사들 옆에서 하하! 호호! 거리며 비위 맞추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회식문화가 사회문제로 대두된지도 제법 되었다. 특히나 우리 앞 세대 사람들이 꼰대처럼 말하는 게 싫어서일 수도 있고, 회식자리가 불편해서일 수도 있고, 일을 마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데 그런 시간을 뺏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싫을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미투(me too) 운동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회식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지만 불과 내가 전성기로 일하던 15년 전만 해도 회식은 꼭 참석해야만 하는 업무의 연장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회가 변화되고 있기에 지금은 그때 일을 웃으며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수도권의 종합병원, 대학병원에서 수술실 간호사로서 9년을 일했지만 지금은 아이 셋을 둔 주부입니다. 아직도 수술실 관련 꿈을 꿀 정도로 애착이 있고  다시 일하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10년 가까이 일을 놓았었고 나이또 한 40대에 접어들었기에 결국 그 욕심은 생각만으로 만 끝이 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9년 동안의 수술실 간호사로서 경험하고 느낀 소중한 이야기들을 더 잊히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폐색 환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