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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맘 Jan 05. 2024

당신의 20대는 불탔다

새로운 이직생활



 

 10여 년 전 어느덧 나는 주니 간호사 2명과 짝을 이뤄 나이트번을 책임지는 시니어 간호사가 되어 있었다. 영원히 근무할 것 같았던 첫 병원은 130만 원 월급으로는 도저히 다닐 수 없어 두 번의 연속 지원으로 더 큰 대학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3년 동안의 꿈만 같던 막내생활은 하나의 추억거리로 남았, 나는 그 사이 인생 목표를 돈 버는 것에 두고 그 어떤 무엇도 다 이겨내리라 마음먹고 다시 한번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전 병원에서 받았던 돈보다 2배 이상의 돈이 들어오는 통장을 보며 모든 고통을 감내했다. 그렇게 나는 다짐했다. 여기서 모든 것을 걸고 다시 시작하자고.


 보통 각 수술실은 시니어, 주니어 이렇게 2명씩 짝을 이뤄 일을 하게 되는데 오전 8시 첫 수술이 시작되었다. 정식 출근 시간은 7시 20분지만  주니어들은 보통 6시 50분까지 시니어들은 7시 10분 정도까지 출근했다. 나는 잠을 줄이고 남들보다 한 시간 정도 빠른 6시까지 출근했다. 나이트 번 간호사들이 일찍 출근하는 나를 보며 깜짝 놀란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 다했다.


  그날 있을 수술 스케줄을 미리 전날 공부하고 소모품도 미리 챙겨 놓고 수술실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청소도 엄청 꼼꼼히 했다. 다른 무엇보다 수술실은 먼지나 오염에 굉장히 민감해서 청소를 중요시하고 수술 시작 전 청소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어느 순간은 내가 청소하려고 수술실 간호사가 되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난 누구보다 내가 택한 선택에 후회 없게 열심히 일 하려고 노력했다. 일 끝나면 피곤해서 닭처럼 꾸벅꾸벅 졸기도 했지만 이렇게 몇 달 몇 년이 지나면 분명 인정받고 내가 선택한 일이 잘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시간이란 건 따로 정해진 게 없고 수술상황을 보고 돌아가며 밥을 먹는데 주어지는 시간은 30분이다. 하지만 난 그 30분도 모두 사용하지 않고 10여분 남기고 시니어 연차와 교대하곤 했다. 그 정도로 옮긴 병원에서 난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일에만 전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련하기도 하지만 그때는 옮긴 대학병원에 얼른 적응하고 인정받기를 간절히 원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40여 년 인생을 살면서 고3 때보다 더 열심히 살았던 때가 대학병원 수술실로 이직을 하고나서부터 1년이 아닌가 싶다.


  경력간호사를 뽑을 때 보통 2,3년 차를 많이 뽑는다. 3년이 넘어가면 경력직에 지원하는데 조금 무리수가 있다. 기존 간호사들과의 조화도 생각하기에 너무 연차 있는 간호사들은 안 뽑는다.

지금은 생각하기도 싫지만 수술실 송년회 때 걸그룹 춤도 췄다. 신규간호사들은 무조건 해야 하는 분위기니 피할 수도 없었다. 경력직이건 신입이건 이 병원에 처음 들어왔으니 꼭 해야 했다. 소주 한 잔 쭈욱 들이켜고 눈 질끈 감고 춤췄던 그때를 생각하니 참 애잔하기도 하다.



 경력직으로 이직을 하고 나서 또 하나의 문제는 동료들이나 선배 간호사들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것이다. '어디 얼마나 잘하나 한 번 보자' 이런 생각을 가지고 눈빛도 보내 일도 그렇게 시켰다. 돈을 벌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돈을 많이 주는 병원으로 이직을 했고 거기서 살아남으려고 악착같이 버티며 일했다. 나의 20대참 치열했다. 간호학을 전공하며 4년 내내 쪽지시험과 싸워야 했고, 간호사 국가고시를 준비하며 몇 달을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고, 병원에 취직해서 수술실이라는 낯선 공간에 적응해야 했고, 병원 이직을 하며 나라는 사람을 내려놓고 인정받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던 나의 20대. 나보다 더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던 아니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겠지만 20대의 그런 치열함은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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