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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맘 Mar 17. 2023

우리는 수많은 소리와 동거 중이다.

층간소음




 우리는 오늘도 수많은 소리와 동거를 하고 있다. 뜻하지 않은 동거이기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의 부부싸움 소리나 화장실 볼일 보는 소리, 변기 물 내리는 소리 등 듣지 않아도 될 소리들을 듣고 산다.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소리만으로 상상할 뿐이다. 불필요한 소리로 인해 나의 귀는 점점 예민해지기도 둔해지기도 한다. 단연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만 들리는 소리는 아니다. 빌라, 원룸, 단독주택 등 우리는 늘 소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살고 있다.


 아파트는 특히나 한 동에 몇십 가구가 모여 살기에 닭장에 많이 비유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그토록 찾아다니며 연구하고, 고심하는 땅의 기운과 풍수지리 같은 것을 거스르는 고층은 아이러니하게도 로열층으로 가장 비싸게 거래되기도 한다. 층간소음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의 비싼 값을 치를만한 값어치가 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어릴 적 시골의 우리 집만 딸랑한 채 있는 외딴집에 살았다. 그래서 늘 자연과 함께 층간소음과는 거리가 멀고 이웃의 잡다한 소음과 거리가 멀게 살았다. 맘껏 소리를 질러도, 맘껏 뛰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는데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요즘 부각되고 있는 소음문제가 남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를 즐기며 나도 모르게 자연인으로 유년시절을 보내며 살았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도시로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자동차 소리, 사람들 소리 등 수없이 많은 소음들과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은 참으로 적응을 잘하는 존재인 것 같다. 그렇게 조용하게만 살던 내가 어느덧 도시의 소음에 익숙해져 있었다.


 요즘 층간소음 기사들을 많이 접한다. 그런데 기사 내보다 댓글들을 보며 더 공감하게 되었다. 설거지 소리, 변기 물 내리는 소리, 볼일 보는 소리, 청소기 소리, 드라이기 소리, 쿵쿵거리는 소리 등 아랫집, 옆집에서 항의하는 내용들이란다.


 4개월 전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왔는데 아랫집 중년 여성이 어찌나 예민한지 온 집에 매트시공까지 하며 안방화장실은 거의 사용 안 하고 있다. 주로 안방에서 생활하시는지 이야기소리도 다 들린다며, 남편과 이야기도 소곤소곤하고 아이들이 웬만하면 안방도 못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저녁 8시면 우리 집은 취침모드로 변한다. 저녁시간엔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것도 더 크게 느껴지니 그냥 빨리 재운다. 항상 뛰지 마라! 시끄럽게 하지 마라! 소리는 나도 지치고 스트레스받으니 빨리 재우는 게 아이들 성장발달에도, 나의 정신건강에도, 아랫집에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 선택한 최상의 방법이다.


 밤에 화장실 가서 작은 볼일을 보면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릴까 봐 아침에 내리고, 드라이기 소리 들릴까 봐 머리 감는 것도 하루 건너뛴다. 설거지도 최대한 조심조심. 내 집인데도 이렇게 조심조심 살아야 한다는 것에 가끔 짜증 아닌 짜증도 나지만 여럿이 살아가는 아파트에 사니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낮에는 맘 편히 이것저것 하려고 해도 아랫집 중년 여성은 하루종일 집에만 계시는 분이기에 정말 조심조심. 청소기도 3일에 한 번쯤 돌린다.


 전에 살았던 집들은 아랫집과 사이가 웬만큼 나쁘지 않게 지냈는데 이번 집은 아니다. 인터폰 울릴까 봐 조마조마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까 두렵기까지 하다. 윗집이라는 이유만으로 만나면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나다. 아이들은 점점 더 자라기에 그래도 이제 말귀를 알아듣는 초등 1,2, 3학년이 되었기에 세 달, 두 달, 한 달 전보다는 지금 훨씬 나아졌다. 언제쯤 층간소음에서 자유로운 날이 올까?


 갑자기 이사오던 날 아랫집에서 올라오셔서 "애가 몇이에요?" "세명이요. 7,8,9살이요." 말하자 그분 표정이 잊히지가 않는다. 한숨을 쉬셨다. 오죽하면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하루는 "애를 셋이나 낳아서 죄송합니다." 이랬다. 멎쩍으셨는지 아랫집 중년 여성은 "셋이면 애국자죠."라며 웃으셨다. 나는 요즘 아랫집에 죄인 아닌 죄인처럼 지낸다.


  아랫집 소음이 위로 올라올 때도 있다. 문 쾅 닫는 소리, 식탁 의자 끄는 소리, 세면대 물 트는 소리. 이 정도면 아파트를 지은 시공사를 탓해야 하나? 층간소음만 뺀다면 아파트는 정말 편리하고 살기 좋은 곳인데 말이다. 소음을 감내하면서도 이렇게 아파트에 산다는 건 그만큼 장점이 더 많기 때문이겠지.



 

* 커버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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