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연습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넓은 집에 살 때는 모든 것이 필요할 것만 같아 제자리에 있던 물건들이 10평이나 줄여 온 지금 집에는 왜 그렇게 눈에 가시처럼 되었는지 눈만 뜨면 그 물건들을 째려보기만 했던 지난 1년을 허송세월 날려버린 기분이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될 것을 아이 셋을 핑계 삼아 늘 피해 다니기만 했다. 간호사로 일할 적에는 한 빠름 했던 나인데 어느덧 결혼생활 10년 차에 접어든 나는 만사가 귀찮은 여자가 되고 말았다.
이 집에 이사 오고 나서 꽉꽉 들어찬 짐들을 보고 있을 때면 짜증과 뭔가 모를 답답함이 나를 힘들게 했다. 무슨 정신병처럼 말이다. 예전 집에 있던 짐들을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사를 하고 보니 빈 공간이 너무 없었다. 문득 남편한테 다시 넓은 집으로 이사 가자고 투정만 부리는 나를 발견하고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계약에 어쩔 수 없이 꾹 참고 살아야 한다면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이제는 눈만 뜨면 무엇을 버릴까, 무엇을 중고로 팔까라는 생각만 하고 있다. 2년 정도 안 입은 옷들도 과감히 헌 옷 수거함으로 직행하고 언젠간 집에 손님들 오면 덮겠지 했던 이불도 버렸다. 안 쓰는 가방, 모자, 인형, 장난감, 책, 그릇. 유통기한 지난 화장품 등 찾아보니 버릴 물건이 넘쳐났다. 왜 이렇게 불필요한 물건들을 끌어안고 살았을까. 쓸데없는 광고에 혹해서 산 물건들이 상자째 쌓여있는 것을 보면서 또 다짐을 한다. 제발 과소비하지 말자고! 버릴 때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 절대 버릴 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 과감히 쓰레기봉투에 담아 눈앞에서 안 보이게 했다. 50리터 쓰레기봉투 7장과 75리터 쓰레기봉투 4장을 가득 채운 우리 집 잡동사니들을 버리고 나니 너무 후련했다. 그런데 이 정도 버렸으면 빈 공간이 많아져 많이 넓어 보일 줄 알았는데 생가보다 많이 티가 나진 않았다. 아주 조금 뭔가 좀 깨끗해졌구나 하는 느낌 정도였다. 아니 얼마나 더 버려야 집이 넓어 보일까?
얼마 전 TV에서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한 적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집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집안 정리와 꾸미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시기에 이 프로그램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같이 보면서 공감도 하고 달라진 집안 모습에 대리 만족하기도 했다. 그런데 연예인들이사는 집이라 그런지 작은 평수는 거의 없는 듯해서 서민들이 사는 작은 평수도 방송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 덕분인지 정리수납 전문가들도 많이 생겨나 업체들이 많이 생겼다. 나도 정리수납 업체를 알아보았는데 생각보다 비싸서 의뢰하기가 조금 꺼려졌다. 일 잘한다고 소문난 리뷰가 많은 업체들은 인당 하루 8시간 17만 원이었다. 평수에 따라 보통 4명에서 10명이 투입되는데 작은집(투룸 정도)은 68만 원 큰집(32평 이상)은 150만 원 이상 한다고 했다. 업체 측에서는 비싸지만 서비스 이후 고객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다고 설명했다. 상담을 하고 나서 고민도 해봤지만 결국은 가격 부담이 커서 내가 스스로 하기로 결정했다. 정리 팁 정보를 얻기 위해 유튜브도 봐가며 했지만 역시나 혼자 하기엔 조금 벅찬감이 있었다. 혼자 하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끝이 없다는 단점이 큰 것 같다.누군가에게는 정리가 큰 스트레스이고 하기 싫지만, 누군가는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거기에서 오는 만족감으로 행복을 얻고, 누군가는 정리라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 돈도 벌 수 있다.
어떻게든 최소한의 물건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보고 작은 집이지만 우리 다섯 식구가 오손도손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는 오늘도 뭔가를 비워내고 있는 중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이고 아이들 없는 집에 비해 치워 놓으면 다시 어질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지금의 집에 만족하며 살려고 하는 중이다.신박한 정리에 나왔던 썬더이대표가 청소나 정리가 큰맘 먹고 해야 되는 숙제가 아니라 늘 일상처럼 루틴이 되어버리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했다. 살면서 스트레스받을 일들도 많은데 청소나 집안정리 스트레스는 덜 받으며 살았으면 좋겠다.